매거진 소생흔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를 읽고

by 여온

이 책은 50~60년대 태어난, 내 어머니 세대의 여성노동에 대한 생생한 인터뷰와 통계 분석을 엮은 책이다. 공동생활가정에서 요양 보호사로 일하시는 엄마가 생각이 나서 사적인서점에서 7월 책처방 상담을 받은 뒤 데려왔다. 상담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꽂혀있는 책들을 살펴보다 발견했는데, 원래 그 날 하현 작가의 『어쩌다 마트에서 일하게 됐어요?』를 살 예정이었기 때문에 함께 읽으면 좋을 책 같아 눈으로 찜해뒀었다. 표지와 편집 디자인이 상당히 힙해서 더 눈에 띄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나서 교회 어른의 소개로 공동생활가정에서 요양보호사일을 하셨는데 그 뒤로 휴직없이 계속 일하신 지금은 직장의 최고참으로 일하고 계신다. 첫 출근한 다음날 집에 들어오셔서는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가 물을 세게 틀어놓고 서럽게 우시는 소리를 부엌에서 들었는데 화장실과 가까운 내 방으로 들어가는 동안 엄마의 우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릴 것이 무서워 식탁 앞에 앉은 채로 최대한 못들은 척을 했던 게 기억난다.


일을 하시면서도 가정주부가 아니었던 적은 없었으니 엄마가 가장 오래 영위한 직업은 ‘전업주부’지만 그걸 제외해도 엄마의 사회생활 경력은 내 2배가 넘는다. 어르신들이 잠이 짧아 피곤하다는 정도의 일상 얘기만 하다가도 마음먹고 물어보면 ‘자고 일어나니 위태롭던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새벽에 응급차를 부른 경험담’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나온다. 말하자면 엄마는 ‘베테랑’인 것이다. 그만 두고 싶으면 언제든 말씀하시라고 해도 돈 벌 수 있을 때까지는 벌고 싶다고, 자식들 눈치보지 않게 사고 싶은 거 내 돈으로 사고 싶다고 말씀하곤 하셨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어머니’들이 계속 돈을 버는 이유로 같은 대답을 하시는 걸 보고 엄마가 많이 생각났다.


나는 여성인 적도, 부모인 적도, 가정에서 내 입장으로 차별을 받아본 적도 없으니 책 속 주인공들을 그저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만이 가능할 것 같다. 집안일뿐만 아니라 바깥일까지 도맡고 자녀의 성장과 시부모의 부양까지 담당해야 했으면서 집안의 주인은 되지 못했던 분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가 누나와 나에게 제일 먼저 선언하신 것은 집 명의를 당신으로 돌리시겠다는 거였다. 사실 그 마저도 ‘그래도 되겠냐’는 말투셨다. 엄마에게도 아버지의 죽음이 무언가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했을까.


일을 주제로 이야기하자고 했을 때 처음엔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싶었어요. 우리 때는 여성이 하는 일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았고, 밖에서 사냥을 해와야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일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그래도 내가 집에 있음으로써 가족들이 다 편한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나 그냥 노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아들이 출장 갔다 집에 와서 내가 지어준 밥 먹으면서 “와, 이거지. 이거야. 몸이 녹는다” 그래요. 91쪽


인터뷰 지면이 개별 주인공들의 개인사를 통해 그분들이 어떤 책임과 의무를 당연하게 져왔는지를 구술한다면 챕터별로 첨부되어 있는 ‘Insight’ 지면에선 그분들이 감당해야 했던 책임과 의무, 차별이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사회적인 차원에서 당시 여성들에게 부여되어 왔음을 논술한다. 필수노동자 4명 중 1명이 60세 이상 여성 노동자라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세상에서 60세 이상 여성들이 사라진다면 가사 및 육아 도우미와 청소원, 환경미화원의 절반이, 돌봄 및 보건 서비스 종사자 10명 중 4명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성별, 연령별 노동 직종 분포 통계를 통해 설명하는 부분이 새로웠다. 생각해보면 내 초등학교 동창 어머니 모임이 우리끼리는 소원해진 지금에도 꾸준히 유지되는데 엄마를 통해 전해듣는 어머니들의 근황도 베이비시터나 병원 식당 보조 직원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거였다.


엄마가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게 됐을 때에 엄마가 아무런 걱정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돈을 벌고 싶다. 엄마가 언제 노동에서 은퇴를 할지는 모르지만 머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고, 나는 우리 가족 중 누구보다 돈을 오래, 많이 벌 수 있는 30대 남성이다. 퇴사 후 예상보다 휴식이 길어졌다. 9월부터는 제대로 이직을 준비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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