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생흔

김현우의 『건너오다』를 읽고

by 여온

지난 달에 사직서를 냈다. 7월 책처방 상담에선 사직서를 내기까지의 상황, 심정을 주제로 대표님과 대화를 나눴다. 지키고 싶은 것이 없어진 상태에서 회사 생활에 느끼는 무망감, 거기에서 나아가 내 사람이 아니라 간주된 사람들에게 가졌던, 나도 놀랄 만큼의 적대감과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대해 말씀드렸다. 이전까지와 달리 되돌릴 여지 없는 결정이었고, 독후감을 쓰는 지금은 퇴사한 지 1주일이 지난 상황이다. 대표님께서는 PD인 저자가 여러 출장/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이 에세이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과거와 현명하게 작별하고 새로운 태도를 가다듬어 볼 것을 제안하셨다. 책 곳곳에 저자에게 닥친 상황에 대처하거나 그것을 해석하며 삶에 대한 통찰을 얻는 부분이 있는데 그 통찰을 거울 삼아 나의 상황에 비춰볼 수 있었고, 그러는 동안 ‘전 직장’이 되어버린 곳에서의 시간을 잘 돌아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의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어떤 모습을 노력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한 방법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13쪽


나는 그냥 하루 빨리 유능해지고 싶었다. 눈앞에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쳐내가다 보면 큰바위얼굴을 동경하던 사람처럼 유능한 기획자가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야망은 없었다. 그냥 동료들에게 빨리 인정받고 싶었고 사수이자 회사 대표님께 기획서를 낼 때마다 자존감이 꺾이는 말을 듣는 시간들을 빨리 극복하고 싶었다. 장거리 달리기 보다는 단거리 달리기를 여러번 하는 감각으로 일했다. 그러다 보니 7년의 시간이 흘렀고, 몸을 돌보지 않고 기록에만 치중한 달리기를 하듯 얻고자 한 것을 얻었으되 원치않게 잃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것만 있으면 된다’라고 말할 무언가를 지닌, 무엇보다 그렇게 말할 용기가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부럽다. 30쪽


취향, 취미, 여가를 잃은 채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고 필요 이상의 시간을 일에 쏟은 것을 후회하냐 하면 아니었다. 분명히 원한 것이 있었고, 그것을 얻었다.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다른 방식이 있었는지 몰라도 요령이 없는 나에겐 최선이었다. 그런 내가 특별한 것도 아닐 것이다. 지금도 성장을 위해선 고통의 역치를 올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고,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믿는다. 다만 잃은 것들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었고, 회사에서의 성취도 과정일 뿐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결핍에 휘청거리던 시간이었다.


어떤 일들은 잊으면 안 된다는 것, 그것을 잃어버리는 건 나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것임을 상징하는 불. 삶이 그렇게 물과 불의 뒤섞임이라면, 균형 잡힌 삶을 위해서는 무엇을 잊고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35쪽


나름대로는 독하게 경력을 쌓았다고 생각하지만 이직을 준비하는 지금은 내 경험, 경력이 얼마나 통할 만한 것이었을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우물 안 개구리였을까봐, 넓은 관점에서 보면 내가 한 노력들이 내 또래 누구나 하고 있는 범상한 것이었을까봐. 그래서 다음 직장은 내 시야를 넓힐 수 있는, 다시 도전자로 돌아가야 하는 곳이길 바라면서도 주니어의 치기로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을 다시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두 개의 마음이 공존한다. 어딜 가든 처음엔 도전자의 입장일 것이다. 있던 곳을 나와 새로운 곳을 찾는 이상 무슨 일을 하게 되더라도 처음엔 낯설고 어려울 것이란 걸 알지만 그렇게 될 거란 걱정으로 내 발목을 스스로 잡았던 적이 여러번이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지나치게 안정지향적인 내 기질을 잘 다독여 기왕 내딛는 새로운 발걸음의 보폭을 넓히는 일이다.


삶이란, 그런 순간들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경계는 끊임없이 넓어질 것이고, 매번 그 경계를 넘는 일이 쉽지는 않을 테다. 경계의 물살이 너무 세서 카메라를 잃어버릴 수도 있고, 처음 겪어보는 그 세상의 기류가 어지러워 구토가 나올 수도 있다. 경계 너머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래서 두렵기도 하고 매우 자주 지치기도 하지만, 경계를 넘어가는 동안의 현기증을 견디는 수밖에 없다. 고맙게도 함께 건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의 손을 꼭 쥔 채 그렇게…… 65쪽


7월 책처방 상담에서 대표님께서는 목표주도적인 내 가치관에 대해 조언하시며 강지영 아나운서가 할리우드 배우 저스틴 민과 진행했던 인터뷰를 소개해 주셨다. 예능을 통해 한국에서 이제 주목받은 그는 지금의 삶이 본인 목표의 끝이라는 뜻밖의 말을 하며 “물론 훨씬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순간들이 있지만 그럴 때마다 ‘이게 내가 원했던 전부’였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킨다”고 말한다. 인상적이지만, 글쎄. 아직도 그 말에 동의하는 것이 무섭다. 지금 내 모습이 10년 전 내가 바랐던 그 모습이라는 생각이 성장의 필요성을 더이상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지만, 그런 태도에서 흘러나오는 여유가 지금까지 내 동력이였던 ‘독기’를 약하게 만들 것만 같았다. 그 ‘독기’ 때문에 그렇게 피폐해졌으면서도. 내가 다른 무기를 찾을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모든 시간들, 아니 순간들에 이유를 붙이고 싶은 것은 내가 어떤 ‘의미’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야 나의 과거와 미래가 ‘일관되게’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란 그래야 한다고, 적어도 삼십대까지의 나는 생각했던 것 같다. 비어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든 그 시간들에 이유를 붙이려 했다. 그렇게 피곤했다. 111쪽


새로 무기 삼을 수 있는, 지금까지와 다른 가치관을 모색한다고 할 때 내가 강하게 갖고 있는 가치관은 공동체주의다. 전 직장에 입사한 날, 직원들에게 인사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직 ‘우리 회사’라는 말이 어색하지만 그 말이 어색해지지 않도록 빠르게 적응하겠습니다.” 소속감, 동료의식, 전우애 같은 동기로 힘을 내왔다. 내가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하면 내 뒤로 업무를 넘겨받을 사람들이 편해진다. 내가 조금만 더 디테일하게 기획서를 작성하면 내 문서를 참고하는 작업자들의 물음표를 하나라도 더 줄일 수 있다는 생각. 하지만 이번에 퇴사하는 과정에서 나에 대해 새로 발견한 것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동료들에게 한없이 호의적일 수 있었던 것은 첫 번째로 내 헌신의 대상 범위가 꽤 폭넓었고, 두 번째로 지금까지 함께 한 동료들이 내 호의를 당연하지 않게 여겨주고 호의로서 받아들여 주는 선한 인성의 소유자들이었기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내가 동료, 또는 ‘내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섭게만치 차갑고 거리를 두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기획팀이 공중분해됐고 나는 히스토리가 끊기지 않도록 후임자에게 1주일 동안이나 인수인계를 해야했다. 내가 동료들에게 인정받도록 노력할 수 있는 동기였던 공동체주의는 내가 동료라 여기지 않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배척하게 만드는 양날의 검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단체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예외로 하고, 홀로, 혹은 단둘이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분명 더 너그러운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그곳이 ‘나의 영역’이 아님을 인정하고 하는 행동은 그렇게 조심스럽게 마련이다. 단체 여행객들이 개인 여행객들보다 덜 친절하고 더 무례한 것도 그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147쪽


퇴사를 하고 일주일이나 지났지만, 퇴사 당일까지 조직에 강한 적의에 가득 찬 상태였다보니 감정적으로 지쳤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이직을 준비하는 동안 몸과 마음을 돌봐야겠다는 계획이 있었지만 우울감이 많은 사람이 그렇듯 집에 있는 시간만큼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되어 할 일이 없어도 동네 카페에 출근하듯 나오고 있다. 무기력하게 만드는 집을 나와 카페에서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일을 해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못 봤던 지인들도 만나고, 일을 핑계로 뒤로 미뤄뒀던 취미 생활에 시간을 좀 더 투자하며,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진된 감정을 회복하고 있다.


삶도 마찬가지다. 나의 상태가 폐허라면, 한 번에 그 폐허를 흔적도 없이 말끔히 날려줄 일, 혹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 지금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밖에 없다…… 그렇게 ‘지금 할 수 있는 것들’만 생각하기로 하고, 돌아가서 연락할 사람들을 떠올리며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그들에게 전해줄 카스텔라를 샀다. 198쪽


두 분 대표님 중 한 분과 퇴사 면담을 할 때 나가면 더 고생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저주 받듯 들은 말은 아니었고 지금까지 회사에서 쌓은 영향력으로 분명 편하게 일할 수 있던 부분이 있었을 텐데 새롭게 커리어를 시작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고 이직한 곳이 여기보다 좋은 곳일거란 보장이 없다는, 그러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취지의 만류였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었기에 유의미하게 새겨 듣지 않았다. 그곳에서의 생활 방식이 언젠가부터 ‘견디는 것’이 됐고, 연료가 소진됐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상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기보다 좋은 곳”을 최대한 찾는 것이 당면한 목표다.


갖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그것들을 얻기 위해, 혹은 그렇게 되기 위해 애를 쓰는 시기가 청춘이라면, 나의 청춘은 아마 지나간 것이리라. 언제부턴가 나의 모습에 어떤 새로운 면모를 더하려는 노력을 멈춘 것 같다. 대신 내게 있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더 많이 한다. 나를 지키는 노력이라고 해서 가만히 있는다는 뜻은 아니다. 거기에도 결단은 필요하다. 환경이 변하고, 그렇게 변하는 환경에서 계속 나로 남을 수 없다면 그 환경을 떠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 결단을 고민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 역시 나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211쪽


책을 읽으며 신기하리만치 나의 상황에 적용해 볼 수 있는 문장들을 많이 만나 감정을 정리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의 상황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문장들만 인용했지만 내 기록장엔 훨씬 많은 문장들이 옮겨져 있다. 확실히 정신적 지평이 넓어지는 데에 여행이 효과적인 걸까, 사실 이 말도 ‘여행으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는 산책과 사색으로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내향형인 내 지론이지만 이번엔 여행자인 저자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마지막 인용문으로 지금 가진 불안과 기대를 설명하는 것을 대신한다.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이젠 나도 그렇게 말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존 버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그림 앞에서 ‘나의 몸이 떠올린 내적 기억’들이 그 말로 이어졌다. 구구절절 그 사연들을 말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환한 빛’만 생각하며 지내던 시절이 있었고, 그 빛이 꺼진 후 어둠 속에서 지내던 시절도 있었으며, 이제는 그렇게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는 상태를 인정하고, 그림자에 가린, 그 어두운 부분까지 알아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빛과 그림자는 늘 함께 있는 것임을, 어느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없음을 알고 그 둘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을 수 있게 되고 나면, 렘브란트의 자화상 속 표정이 그저 체념의 표정만은 아님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는 온통 과거만을 향한 문장은 아닌 것이다. 그 마음도 여전히, 늘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미래를 향하고 있다. 사람은 ‘기대’가 없이도 다가올 날들을, 혹은 남은 날들을 그려볼 수밖에 없다. 그건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음을, 그렇게 환하기도 했고 어둡기도 했던 자신과 비로소 화해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마음일 것이다. 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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