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궤도를 돌며 마모를 느끼거나 잠시 궤도에서 이탈했을 때 사적인서점을 통해 위로가 되는 책을 만나곤 했는데 이 소설도 그런 책이었다. 기자를 지망하는 취준생 은미는 5년째 언론고시를 봤지만 번번이 낙방한다. 실패에 지쳐있던 은미에게 은미의 할머니가 16년 전 미국으로 떠났던 고모를 만나러 갈 것을 부탁한다. 아들 찬이를 맡긴 채 연락이 두절된 줄 알았던 고모가 사실은 꾸준히 할머니에게 근황 편지를 보내왔으며, 놀랍게도 나사의 우주비행사가 되어 있었고 조만간 긴 훈련을 떠나 다시는 편지를 보낼 수 없다고 했다는 것. 연락이 끊기기 전에 고모를 만나 안부를 확인하고 와달라는 특명을 받은 은미는 단짝친구인 민이와 함께 고모를 만나러 미국 여행길에 오른다. 책의 제목인 『달의 바다』의 어감이 예뻐서 그 의미를 생각하며 읽었다. 소설에서 달의 바다는 “바다라 생각했던 것이 실은 바다가 아니었지만 그 명칭은 정정되지 않는다”는 성질로 언급된다. 이 문장 구조가 그대로 은미의 고모를 은유한다고 느껴졌다. 단, ‘바다가 아니었다’는 데에 방점이 있지 않고 ‘그 명칭이 정정되지 않는다’는 데에 방점을 찍은 소설이라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이야기 자체엔 읽는 이에 대한 위로가 담겨 있지만 그 뒤에 삽입된 작가 인터뷰를 보면 초기작인 『달의 바다』 이후 작가의 세계관이 점점 현실적으로 변모해갔음을 알게 되어 쓴웃음 같은 감정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할머니에게 보낸 고모의 편지 속에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예찬이 가득하지만 그 편지 자체가 거짓말이었고 고모도 은미에게 그 편지의 가치를 ‘즐거움’과 ‘작은 위안’으로 설명된다. 혹시 소설에 가치란 이 정도에 불과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 대한 반발심에 좀 더 사유해 보기로 했다. 서사를 서사 그대로 이해하지 않고 이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은유라고 생각해 본다면 은미와 민이, 고모를 자아, 이드, 초자아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이 성장하며 겪는 자아, 이드, 초자아 간의 불화와 조화에 관한 이야기로 읽어보고 싶었다. 예컨대 민이는 태생적이지만 시스템의 규범에 의해 억압 받는 욕망을 가진 인물이다. 그리고 은미는 그런 민이가 자기가 알고 있는 모습에서 이탈할 것을 걱정하며 은근하게 그의 욕망을 억압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런 둘에게 고모는 그들이 실패한 것이 아니며 그 자체로 의미있다는 확신을 주는 인물이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택하는 이상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고 말해주는 고모는 은미와 민이에게 하나의 삶의 규범적인 존재가 된다. 그 규범은 세간의 불문율과는 결이 다르지만 은미와 민이가 모두 시스템과 다른 결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고모의 존재는 둘에게 충분한 본이 되어 준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자유의지와 실존적인 삶의 형태를 긍정하는 고모에게 감화된 은미와 민이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게된 성장서사로 읽히지만 어쩐지 은미가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뼈 아픈 인정, 혹은 상실에 마음이 쓰였다. 청춘을 바쳐 준비한 기자는 결국 되지 못했고 그것에 내가 진정으로 원한 것이 아니었음에 대한 인정, 분신처럼 가까이 여겼던 친구가 은미의 세계를 이탈할 수 있음에 대한 인정, 롤모델이자 본인의 미래로 여겼던 고모의 삶 마저도 사실은 지금의 자신만큼이나 찬란하지 않음에 대한 인정 말이다. 성장의 재료로 치부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엔 그 인정에 필요한 상실감의 쓴맛이 진하게 남았다.
하지만 사유의 계기였던 질문엔 나름의 답을 갖게 됐다. 소설에겐 시스템과 다른 결을 가진 자아를 조명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그가 몰랐거나 외면하던 자아와 직면하게 하고, 이를 통 해 좀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선한 착각을 선사하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렇다면 독자는 일시적일 수 있는 그 착각이 정정되지 않기를 바라며 기꺼이 불편하고 따가운 인정과 상실을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것이 딸인 적도, 어머니인 적도 없는 내가 이 책을 깊이 읽을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