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사적인서점 처방책이었다. 8월은 퇴사를 한 달이었기 때문에 새출발을 앞둔 사람이 읽으면 좋을 책을 부탁드렸다. 『지지 않는다는 말』은 소설가 김연수 작가의 에세이인데, 작가님의 취미인 달리기를 통해 느낀 점들이 주 내용을 이루고 있었다. 김연수 작가님의 취미가 달리기였는지는 몰랐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루틴이 달리기라는 건 들었는데, 작가에게 필요한 기질이 꾸준함이라는 점에서 달리기가 확실히 꾸준함의 기질을 기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운동이라 그럴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취미생활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삶의 태도를 기르는 은유로서 취미 생활의 에피소드를 공유하는 이야기에 흥미가 생긴다. 좋은 은유엔 원관념과 보조관념에 대한 깊이 있는 애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상을 바꿨다. 9쪽
마찬가지로 어떤 장르로든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쓰고자 하는 대상이나 글을 쓰는 시간에 몰입을 해야 한다. 그러니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삶에도 몰입할 거란 동경심이 있다. 치열하게 사유한 사람이 시를 잘 쓸 것 같고 치열하게 상상한 사람이 소설을 잘 쓸 것이라는, 그런 사람은 일상도 치열하게 살아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동경심이 있다. 반응은 자극에서 오는 것이고 글이 반응이라면 그 반응을 이끌어내는 건 결국 삶일 것이다.
더 좋은 존재여서 나를 감동시키거나, 더 나쁜 존재여서 내게 분노를 일으키게 만드는 것들로 가득한 세계가 아직은 내가 원하는 세계다. 왜냐하면 그런 세계는 나의 감각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18쪽
나도 일주일에 3~4번 근처 체육공원에 나가 5km를 달리고 있다. 회사에 다닐 땐 출근 전 6시에 나가 40분 정도를 달린 뒤 회사를 나갔고, 쉬고 있는 요즘은 꼭 새벽이 아니더라도 눈을 뜬 시간에 나가 달리고 있다. 해가 중천인 시간대엔 체육 공원 내 설치된 헬스장에서 트레드밀을 뛴다. 24년 5월부터 뛰기 시작했는데, 조금 뛸 만 해질 때마다 부상을 당했던 탓에 취미를 포기할 뻔도 했지만 빨리 뛰는 것보단 오래 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안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달리고 있다고 했는데, 사실 이런 태도가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체육인 이상 체력의 극한을 경험하고 그 역치를 올리는 연습을 통해 성장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 달리기의 묘미일 텐데, 7분~8분 페이스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부담 없을 정도로만 달리는 것은 성장보다는 루틴 유지 그 자체에 의의를 두는 달리기다. 물론 이 역시 항상성을 우선순위에 두는 내가 달리기를 즐기는 방법이지만 언젠가는 달리기에 욕심을 내서 기록 경신이나 대회 참가에 목적을 두고 성장의 재미를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를 한계로 내모는 일이 꼭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 일인 것은 아니지 않을까.
삶의 수많은 일들을 무감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순식간에 노인이 될 것이다. 기뻐하고, 슬퍼하라. 울고 웃으라. 행복해하고 괴로워하라. 21쪽
7년을 다닌 회사를 뒤로 하고 새로운 도전을 앞둔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하며 책을 읽었는데, 사실 어떤 회사에 지원해야 하나 고민이 많다. 동시에 여러 사업군의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에이전시 특유의 분주함은 충분히 겪었으니 이제는 인하우스에서 하나의 프로덕트를 깊이 있게 운영하며 고도화하는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반면, 아직은 좀 더 분주하게 여러 도전을 경험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김연수 작가는 40대의 시점에서 30대를 회상하며 “30대에는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어서 달렸다. 그런데 이제는 나 자신과 내 삶과 내가 한 일들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때까지 달린다.”라고 했다. 인하우스에 들어가는 것이 현실 안주의 은유로 느껴지는 것은 업계에 대한 내 몰이해 때문일 것이다.
퇴사한 지 2달이 넘은 지금 내 생활을 돌아보면 현실 안주는 지금 하고 있다. 새 추진력을 얻기 위한 휴식은 충분히 했고 이제 기업에 나를 정확히 소개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열심히 이직의 문을 두드려야 할 때지만 여전히 여러 핑계를 대며 소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너무 멀어서, 에이전시여서와 같은 핑계를 대며. 시간에 쫓겨 섣부르게 이직하지 말자고는 했지만 그것이 놀면서 이직하자는 의미여선 곤란하다. 이 책을 다 읽은 시점부터 독후감을 쓰기까지도 상당한 지연이 있었다. 귀찮다는 핑계로.
러너는 글리코겐을 남겨 둔 채 결승점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다. 러너는 혼신의 힘을 다해야만 얻을 수 있는 희망을 향해 달리는 사람이다. 러너의 가장 친한 친구는 피로이며 절망이다. 그것들을 끌어안을 때, 우리는 이완과 휴식과 희망의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 283쪽
항상성을 우선 순위에 두는 나는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언제나 부러웠다. 휴식도 피와 땀 범벅이 된 채로 코너에 앉아 숨을 고르며 지난 라운드를 복기하고 다음 라운드를 시뮬레이션 하는 격투기 선수의 마음으로 할 것만 같은 사람들. 갑자기 그런 마음으로 입사 지원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독후감을 쓰며 마음은 다 잡게 되었다. 요즘 비가 와서 뛰지 못했는데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가서 뛰어야겠다.
힘든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근육통과 지루함을 참아 내는 것은 오직 러너로서의 관용 덕택이다. 그렇지만 달리기는 고급 예술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절망을 좋아하는 척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고통과 슬픔을 참아 내는 것은 오직 인간으로서의 관용 덕택이다. 그렇지만 삶은 고급 예술이다. 2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