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3번 읽었다. 그런데 3번째 읽는 지금에서야 이 소설의 디테일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독서에서는 큰 사건 위주로만 이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땐 다 읽어냈는데 지금 기억이 안 난 것일수도 있겠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인데 이야기의 층위가 여러 겹이어서 다채롭게 읽어낼 수 있었다. 세 개 층위의 서사를 읽을 수 있었는데, 하나는 장애인이 사회에서 느끼는 다름과 남다름, 다른 하나는 사랑을 배우는 청소년기의 풋풋한 감정, 마지막 하나는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 의례로서의 상실이다.
나는 내 장애를 혐오하는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내가 남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아도 혐오했다. 그 혐오감은 두려움에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무엇이 두려운 걸까? 나를 볼 때마다 자신의 귀도 똑같이 안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그렇게 공감 능력이 강한가? 소리가 안 들리는 것은 전염병이 아닌데? 다른 존재에 대해 본질적으로 느끼는 두려움과 혐오에 대해서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노력은 양쪽에서 거들 때 가벼워지는 법이다. 나는 혼자 지쳤다. 44쪽
주인공인 수지는 선천적인 청각 장애인으로, 들리지 않는 것을 불편이 아닌 고요로 여기는 소녀다. 유년시절엔 자기를 예쁘게 봐주는 하숙생들과 가족의 돌봄 덕분에 장애에 대한 결핍을 느끼지 않았지만 수지는 점점 집 바깥에서 자신을 비표준으로 대하는 세상을 만난다. 성장할수록 자기를 장애 공동체가 아닌 비장애인들의 사회로 내보내려는 엄마의 행동도 수지에게 잊히지 않을 상처를 남긴다.
수지는 인공와우 수술을 받지만 수술 후 얻은 소리의 세계는 “이래서는 살아갈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시끄러운 세계였다. 개인적인 기억이 떠올랐는데, 예전 회사에서 오해로 인한 매도의 말을 듣고 나서 퇴근 후 근처 벤치에 앉아 귀를 식히던 날이 있었다. 속에서 너무 시끄러운 말들이 들려서 귀가 닫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런 점에서 수지가 완벽한 고요를 아는 것이 장애이기만 한 것은 아니겠다 생각했다.
인공 와우가 꺼진 세계는 아늑하고 편안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세계로 돌아왔다. 그 세계가 얼마나 고요하고 평화로운지 새삼스럽게 발견했다. 물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느리게 느리게. 보이지도 않고 촉각만 있는 세계에 사는 것 같았다. 심해어처럼. 80쪽
수지는 18살에 전색맹을 가진, 반려견 마르첼로와 함께 다니는 한민을 만나 처음으로 이성적 설렘을 느낀다. 한민에게 가진 마음이 사랑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이란 걸 한다면 그 대상은 한민뿐이”라 생각한다. 그런 수지에게 사랑을 알려주는 존재는 할머니다. 수지의 할머니는 “밤에는 헤어롤에 머리를 말고 잠들었고, 아침에는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서 풀 메이크업을 하고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단정히 앉아 아침 드라마를 보”는 인물이다. 집 뿐만 아니라 췌장암을 발견하고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에도 할머니의 공간엔 이성친구들이 끊이지 않는다.
한민과의 관계를 사랑이라 정확히 명명하진 않지만 수지는 한민을 궁금해하고, 한민이 자기르 궁금해하길 바라며 삶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눈다. 집 앞에서 헤어지기 싫어 집에 들어와 좀 더 라면을 먹고 가라는 당돌한 말까지 스스럼 없이 하며 말이다. (솔직히 이 대목은 둘은 아무렇지 않은데 독자만 당황하라고 작가님이 우리에게 윙크를 날린 대목이라 생각한다.) 마르첼로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한민이기에, 수지는 한민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마르첼로에 대한 애착으로 은유하며 한민을 점점 더 의지하게 된다.
처음에는 내가 보는 것과 한민이 보는 것이 다르고, 한민이 듣는 소리를 나는 못 듣는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르첼로를 보면 걱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마르첼로가 듣고 보고 냄새 맡는 세상을 나는 상상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세상을 느끼는 방식이 이토록 다른 마르첼로와 나는 사랑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마찬가지로 설령 한민과 내가 아주 다른 존재라거나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뛰어 넘는 감정이 존재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60쪽
한민은 이후 할머니와 엄마, 고모 모두를 떠나 보내고 천애고아와 같은 신세가 된 수지의 옆을 지키며 성인이 된 수지의 자립을 돕는다. 할머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시자 엄마는 편지 한 장을 남기고 가출을 하고, 고모는 혼자 긴 여행을 떠나며 수지에게 더 이상 볼 일이 없을 것이라 태연하게 말했다. 연이은 영이별이 수지에게 순식간에 벌어지며 수지는 강제로 어른이 된다.
이 극적인 사건들이 수지의 성장을 위해 필연적인 일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로 인해 수지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어른이 되는 법을 모르는 채 어른이 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어른이 되는 법을 모르는 채로 어른이 된다. 집을 팔고 남은 돈을 입금하려 은행을 찾아온 수지에게 은행직원이 건낸 위로처럼.
”친구가 데리러 올 거예요. 어떤 사정인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울고 싶으면 더 울어요. 나도 오늘 점심시간에 점심 안 먹고 화장실에서 울었어요. 우는 게 더 급해서.”
이 소설에 세 가지 테마가 있다고 했지만 결국 한 가지 주제다. 소년 소녀가 어른이 되기 위해선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둔 채 밖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하고, 떠올리고 미소지을 수 있는 사랑을 해야 하며 세계를 감싸고 있던 더 큰 세계의 상실을 애도하고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어른이 되어 아이였을 때 이해하지 못했던 어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세계를 감쌀 수 있는 또 한 명의 어른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비로소 슬픔을 배웠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야 엄마에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숨을 방이 있고 필요할 때 숨을 줄 아는 사람은 아마도 건강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이제서야 엄마가 블랙홀처럼 마음을 닫고 있던 시절에 행복했을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174쪽
나는 먼저 나 자신과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던 할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나를 존중하고 내 선택을 존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존중할 것이다. 그 시간을 존중할 거라고 다짐하면서 나는 산책을 계속했다. 1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