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교실에 앉아 하루종일 있다 보면 날이 추운지 더운지도 모르고 지내는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아이들이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뭔 사건 사고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아이들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지고 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업무들과 또 2차 전쟁을 시작하는 게 우리의 일상이 아니겠냐마는, 화장실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하는 현실이 웃프기도 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서 그럴까요? 이런저런 크고 작은 행사들을 치르고 나니 어느새 5월의 끝, 벌써 여름이 다가오고 있네요.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을 잠시 멈추고여유를 조금이나마 찾기 위해 오늘도동시집 한권 꺼내봅니다.
위동시 어땠어요? 송골 할매의 푸념이 마치 우리 모습 같지 않나요? 세상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때 하늘을 원망하게 되잖아요. 송골송골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할머니의 "아이구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라는 푸념이 그래서 더 와닿나 봐요.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해봐도 이뤄지지 않는 일들로부터, 내 앞을 가로막는 벽들로 인해 답답할 땐 나도 모르게 원망의 감정에 휩싸이게 되니까요.
할머니의 간절한 부름에 답하듯 "비를 듬뿍듬뿍 많이 내려주"는 하늘을 향해 할머니는 또 "아이구 참, 이제 비 좀 그만 내려 주시지."라며 부탁을 합니다. 4연을 읽다 그만 웃음이 났어요. 부끄럽기도 하고요. 송골 할매의 모습이 꼭 저 같았거든요. 무엇을 주어도 절대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 맑고 더 높아지는 하늘을 몰라보는 할머니는 "너무 바빠서 하늘엔 눈길 한 번 못" 주는 것 또한 바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다를 바 없네요. 교실에 갇혀 버린 우리, 언제쯤 밖으로 나와 아이들과 함께 하늘을 보며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요?
고양이 식사
밥그릇 하나 앞에 두고
둘이 밥 먹는다.
코점이가 조금 먹고
고개 들어 앞산 보는 사이
앞산 바라보던 노랑이
고개 숙여 밥 먹는다.
앞산도 나눠 보며
고양이 둘이 밥 먹는다.
26쪽.
밥그릇하나 두고 밥 먹는 두 고양이의 모습이 상상되나요? 이 둘 사이에 '밥그릇 싸움' 같은 건 절대 볼 수 없죠. "코점이가 조금 먹고/ 고개 들어 앞산 보는 사이// 앞산 바라보던 노랑이/ 고개 숙여 밥 먹는" 사랑스러운 모습이라니요. 두 고양이가 시간차로 앞산을 보고 밥을 먹는 모습이 슬로 모션처럼 눈앞에 그려집니다.
최근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다정함을 덜어내고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죠. 조금이라도 한눈팔다간 언제 모를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늘 긴장하며 사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함께 산다는 건, "앞산도 나눠 보"는 고양이 둘처럼, 내가 조금 늦더라도 내 것이 남아 있으리라는, 혹은 내 것도 챙겨주리라는 믿음에서 시작되는 건 아닐까요.
아이들은 어떨까요? 많은 아이들이 입시와 경쟁이라는 교육 시스템 속에서 힘겨운 일상을 살고 있어요. 학교가 끝나면 학원, 학원이 끝나면 숙제.... 정해진 일정 속에서 쳇바퀴 돌듯 살아가다 보면 친구와 함께 '앞산'을 볼 여유 같은 건 생길 리 없죠.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어느 순간 같이 볼 '앞산'이 존재하긴 하는 건지, 앞산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사라져 버린 건지도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제빵사 하느님의 딴청
하느님은 이른 아침부터 넓고 파란 하늘에다 밀가루만 한두 줌 흩뿌려 두고는 딴청이다.
이런 날이면 산 너머에서 잘 숙성된 구름 반죽들이 이미 한없이 부풀고 있을 게 틀림없는데,
이제 곧 부푼 반죽들이 넓고 파란 하늘까지 올라가 제멋대로 두둥실 떠다닐 게 분명한데,
오늘도 딴청 부리는 하느님은 아무래도
빵 만들기보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 반죽들 바라보기를 나만큼이나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60쪽.
가끔 내가 나에게 더 가혹하게 군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쓴다고 느낄 때면 나 스스로에게 게으르다고 다그칠 때가 있거든요.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살라고 말이죠.
위 동시를 읽다 잠시 하늘을 쳐다봅니다.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잘 숙성된 구름 반죽들이 한없이 부풀고 있는 파란 하늘이 제 눈에 들어옵니다. 다시 동시를 들여다봅니다. 빵 만들기를 미뤄둔 채 구름반죽을 쳐다보기만 하는 하나님이라니요. 하느님도 "구름 반죽들/ 바라보기를나만큼이나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라고 단언하는 화자의 시선이 퍽 귀엽습니다. 멀고 두렵기만 한 존재의 하느님이 아니라 가끔은 자신이 할 일을 잠시 제쳐두고 딴청 부리는 하나님이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쫒기 듯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배움이나 경험들로 채워야 하는 강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요. 선생님은 숨 한번 크게 쉬고 나와 나를 둘러싼 것들을 찬찬히 볼 수 있는 시간을 내어주고 있으신가요?
장동이 시인은 자신의 고향인 경북 문경으로 귀향 후 동시를 쓰며 살고 있는 시인이에요. 그의 첫 동시집《엄마 몰래》는 경북 문경 사투리 입말이 살아있는 '할머니 동시'를 통해 '사라진, 사라져 가는 것들을 향한 애도와 기록'이라는 등단의 평가를 받았답니다. 시인은 특히 시골 할머니들의 진실된 모습을 리얼리즘의 시각으로 그려내는능력을 지니고 있다고해요.
두 번째 나온 동시집 《파란 밥그릇》도 시골의 정취와 자연, 우리네 할머니의 삶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냈답니다. 그래서일까요. 신기하게도이 동시집을 읽기만 했는데 조금씩마음이 차분해지더라고요. 특히나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던지라... 담백하게 풀어쓴 시인의 언어가 그 시절 값없이 맘껏 누렸던 시간으로 저를 초대하는듯했어요.그 덕에숨 가쁘게 돌아가던 내 마음 시계의 초점이 다시금 천천히 제 속도를 찾아가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어요.
《파란 밥그릇》은 동시를 통해 그동안 바빠잊고 있었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천천히 느끼며 편히 흘려보내는 방법을 보여줍니다.그래서일까요. 동시집을 다 읽고 나니 "지루해"라는 말을 끝내 발명하지 못해 지루함을 결코 느끼지 못하는 감나무들처럼, 한자리에서 "하늘과 산과 꽃들/ 바라만 보며" 오래도록 살 <할배 감나무>처럼, 가만히 바라만 봐도 넉넉한 마음을 가지며 살기를 꿈꾸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의 시간은 자기를 천천히 바라봐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