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결코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단단히 마음먹어야 하는 이유

by 김볕

장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리스본 공항. 15시간을 앉은 채로 있다 보니 다리가 붓고 정신이 멍한 상태였다. 공항을 밝히는 노란 불빛을 보며 유럽에 도착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리스본에 도착하긴 했다"


설렘보다는 안도감이 컸다. 공항에서 리스본 시내로 가기 위해 공항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우버나 볼트 이용이라는 세 가지 방법을 미리 알아둔 터. 도착하자 하자 우리가 가야 할 숙소의 주소를 확인했다. 우리가 선택한 숙소는 3성급 유스호스텔이었는데, 6시 이후면 리셉션에 사람이 없어서 셀프체크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제부터는 실전.

구글 맵에 숙소 주소를 찍고 지하철을 타기로 결정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순간 나를 쳐다보는 남편과 아들의 눈을 보았다. 그때 깨달았다.

'큰일 났군.'

흑인과 백인이 섞여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가족은 동양에서 온 낯선 이방인일 뿐이었다. 차갑게만 보이는 현지인들은 그동안 여러 여행지에서 본 서양인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꾀죄죄한 몰골에 큰 가방은 매고 길을 걸어 다니는 배낭족 혹은 호텔 로비에서 여유를 즐기는 관광객과는 다른 역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얼어버렸다. 이번 여행은 내가 다 알아서 준비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점점 더 쪼그라드는 마음이란.

다행히 내리는 지하철 역과 가까운 숙소는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였고, 중간 환승 구간도 무사히 통과했다. 정말이지 구글 맵 덕에 크게 헤매지 않고 호텔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구글맵 만세!

하지만 호텔 문 안으로 보이는 리셉션은 불이 다 꺼진 채 뒤편의 작은 엘리베이터의 백열등만 환히 켜져 있었다.

"어떻게 들어가지?"

손잡이를 밀고 당겨도 꿈쩍하지 않는 문 앞에서

우리 셋은 한동안 가만히 멈춰 서 있었다.


아들과 남편이 나를 또 쳐다봤다. 이런. 왜 숙소만 잘 찾으면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체크인 이틀 전에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겠다고 했는데. 호텔 매니저로부터 안내 메시지가 왔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도 왜 그냥 지나쳤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이때부터 부정적인 사고 회로가 마구 작동되었다. 예약한 아고다 사이트에 올라온 한국인의 후기가 다 거짓말 같았다. 사기를 당한 걸까. 다시 숙소를 잡아야 하는 걸까. 호텔 바로 옆 카페 직원에게 혹시 여는 방법을 아냐고 물어봐도 모른다는 대답에 나는 이 순간이 꿈이길 바랐다.


이때 남편이 구글맵 지도를 통해 호텔 전화번호를 찾아냈다고 했다. 한번구글 맵 만세!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기인 게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리기 직전, 다행히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현관 번호를 알려주겠단다. 그렇지만 아들이 호텔 입구로 뛰어가 눌러보아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때도 내 머릿속은 온통 "사기당한 거야. 아고다도 믿을 수 없어. 너 이제 어떻게 할 거야?"라는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였던 것 같다.


그 순간,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거리 사이로 한 백인 커플이 영화처럼 등장했다. 남편과 아들은 그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 덕에 우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할렐루야. 3A 우편함에 놓인 카드키를 보고서야 비로소 나는 겨우 안심했다.


나는 평소엔 마냥 긍정적이게 생각하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한없이 작아지는 반면, 남편은 늘 미리 준비하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해결 방식을 찾는 사람이라는 것이 확실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래도 잘 해결되었음에 마음을 놓고

"참, 포르투갈이 우리를 쉽게 허락하지 않네."라는 농담을 했지만, 이 말이 씨가 될 줄이야.


4박 5일의 리스본 일정을 마무리하고 포르투로 이동했다. 두 번째 숙소에서는 이전의 실수를 만회하고자 단단히 비밀번호를 확인했다. 숙소 호스트와 Whatsapp이라는 어플로 대화까지 나누었기에 문을 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는 문 앞에서 난 또 한 번 좌절했다.

"천천히 해봐."

라는 남편의 말에도 당황한 나는 진정이 되지 않았다. 친절하다 못해 과할 정도의 아이콘을 보냈던 호스트의 태도마저 의심스러웠다.

난 다급히 메시지를 보내고 몇 분 동안 현관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이후 당황한 나를 대신한 아들과 통화한 호스트는 자신의 남편을 곧 보내겠다고 했고, 또 몇 분이 흐른 뒤 장바구니를 든 매우 착하게 생긴 남자분이 언덕길은 올라왔다. 숨이 찬 듯 헉헉 대며 미안하다는 제스처와 함께. 그는 다 된 배터리를 교체한 후 떠났고 다시 한번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오 신이시여.

세 번째 숙소에서는 아예 미리 찾아갔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이번엔 1층 현관 비밀번호를 누른 후 4층 숙소 앞에서 가상키로 문을 열어야 했다.

현관에 서자 긴장이 되었다. 역시나. 열리지 않는 문. 비밀번호와 배터리 문제도 아니었다. 아무리 비밀번호를 눌러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서니 오기가 생겼다. 이놈의 유럽 놈들이라며 욕을 한 바가지 했다. 문을 당겨서 열어보라는 호스트의 조언에 따라 이리저리 타이밍을 찾았고 찰칵! 문이 열렸다. 이때부터 문과의 밀당이 시작되었고 체크아웃하기 직전까지 열리느냐 마느냐를 놓고 문과 씨름했다.


나는 왜 그동안 모든 문이 다 잘 열린다고 착각했던 걸까. 문이 결코 잘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건,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안한 여행을 했는지에 대한 반증이겠지. 자유 여행 좀 했다고 프로 여행러가 되는 건 결단코 아니었다. 포르투갈에 묵었던 숙소 문 앞에서 나는 겸손의 자세를 배웠다.


첫 숙소에서 열지 못한 문은 미리 준비하지 못한 나로 인해 발생한 문제였다. 현관 입구 비밀번호를 챙기지 못한 건 그동안 모든 것을 챙겨 온 남편의 세심함을 당연하게 여긴 나로 인해 벌어진 것이었으니까.


두 번째 숙소에서 배터리가 다 된 문은 내 잘못이 아니더라도 생겨날 수 있는 문제였다. 살다 보면 아무리 꼼꼼히 챙기고 계획해도 언제든 예상치 못한 문제는 일어날 수 있다.


세 번째 숙소에서 가상키로도 열리지 않는 문은 문제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내내 좌절하다가도 포기의 순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반면, 다 해결되었다 생각했어도 다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정심 유지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니까.


한 번이 아닌, 세 번 연속이나! 포르투갈에서 만난 숙소의 문 앞에서 좌절과 극복을 순간을 맞이했다. "젊을 땐 사서 고생한다"는 말을 이 나이 먹서고 이뤄냈다니. 이를 자랑스럽다고 해야 하나 고민이 되지만, 참으로 혼자가 아니라 다행스럽다.


마지막 날 잡은 호텔키의 딸깍 소리가 이리 반가울 줄이야. 당연한 건 세상에 없다. 여행을 떠난다면 마음 단단히 먹고 문 앞에 서기를. 힘들긴 해도 열리지 않는 문은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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