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처음입니다만
포르투갈 여행을 준비하게 된 첫 시작은 티비프로 "지구마블 세계여행'이었다. 교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기로에 서있던 순간. 여행유튜버 원지와 개그맨 김용명의 포르투 여행기를 보게 되었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 덕에 <세계테마기행>, <톡파원 24시>등 여행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우리 가족은 즐겨본다. 하지만 나는 적극적이기보다는 소극적인 태도로 시청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보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출연자 두 명이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던 그 순간, 동 루이스 다리를 배경으로 한 포루투 전경.
'아, 저기선 모든 걸 잊을 수 있겠다.'
이전까지 나는 포르투갈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스무 살 때는 오스트리아가 정말 가고 싶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좋아한 클림트 화가의 작품-그때 이 화가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게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유럽은 나에게 그런 곳이었다. 영국에 가서 빅벤을 보고, 프랑스에 가면 에펠탑을 보고, 스위스에 가면 알프스를 봐야 한다는 그런 국룰이 있는 여행지.
대학 때 배낭여행을 간다고 방학이면 짐을 꾸리던 동기들을 보면서 부러워했던가. 방학 동안 학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할 동안 친구들은 내가 버는 돈 이상을 여행 비용으로 썼다. 나와 친한 한 친구는 배낭여행을 준비하며 나에게 삼백만 원만 있으면 갈 수 있다고, 부모님께 부탁해 보라고 말했다. '삼백만 원만'이라니. 그 시절 난 그럴 돈도, 배짱도 없었다. (그 친구는 날 위해 여행지마다 엽서를 보냈고, 돌아와서는 클림트 키스의 작품으로 만든 열쇠고리를 선물로 주었다.)
학부 시절 미술교육을 전공했는데, 서양화를 가르치던 교수님이 여름 방학이 지난 후 가을 학기 때 한 말씀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얘들아, 유럽은 진짜 꼭 가봐야 해. 한 번으론 안돼. 여러 번 가야 하는 그런 곳이야."
그랬다. 나에게 유럽이란 돈 없이는 가지 못하는, 아주 먼, 아득한 꿈같은 그런 장소. 언젠간 꼭 가볼 것이라 생각한 곳.
그런 내가 마흔이 넘어 유럽을 가게 되었다. 유럽의 주요 나라들을 다 제치고 포르투갈이라니. 15시간 30분이라는 긴 비행시간도 처음이다. 하지만 진짜 처음인 건, 단지 단 하나의 풍경에 끌려서 훌쩍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19년 전, 첫 해외 여행이었던 일본 도쿄 여행이 생각난다. 자고로 해외 여행이란 미리 계획해야 후회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에 여행 책자를 사고 꼼꼼히 읽으며 한글 문서로 일정을 짰다. 시간 별로 어디를 가서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볼지, 분 단위로. 하지만 도착 첫날 밤부터 아팠다. 고열과 배탈. 유명한 라면점을 가서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하라주쿠 거리에서 화장실을 찾아다녔다. 일본어는커녕 영어도 한 마디 하지 못했다. 내가 그때 처음 익힌 일본어는 '게리', 우리나라 말로 설사라는 뜻이다.
나의 첫 해외 여행의 파트너에서 간병인의 처지로 바뀌었던 남자 친구는 지금의 남편이 되었다. 결혼 후 신혼여행을 시작으로 참 많은 곳을 다녔다. 지나고 보니 아이가 태어나고 셋이 된 덕에 좀 더 우리만의 여행 스타일이 자리잡힐 수 있었구나 싶다.
그동안 여행 중 불쑥 튀어나오는 소심하고 찌질한 내가 이번 여행에서는 조금은 대범해지기를 기대해본다. 늘 여행을 주도하는 남편 덕에, 나와 모든 것이 반대인 사람과 여행을 다니면서 나의 고정관념을 많이 버리고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이젠 조금 알 것 같다.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새로운 장소를 보는 것보다 같은 나라, 같은 도시를 여러 번 갈 때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 좋을 수도 있다는 것. 최대한 많은 곳을 봐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그 순간을 즐기는 법과 유명 관광지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것보다 남들은 모르는 작은 마을이 오히려 나에게 좋을 수 있다는 것도.
내일 우리 가족은 지금까지 간 여행 중 가장 오랜 비행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리고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한 나라에 머무른다. 9박 11일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물론 안다. 다녀오면 우리 집이 가장 편안하고 좋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도 안다. 여행의 순간, 일상을 벗어난 새로움으로 잠시라도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부디 우리 세 식구, 잘 다녀올 수 있기를.
여행의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여행에 필요한 짐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처럼,
포르투갈의 여행 가방이 이전의 어느 여행보다 가벼운 것처럼,
마음도 가볍게, 모든 것을 다 가볍게, 가볍게 그렇게 여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