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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Aug 13. 2018

케이시의 자퇴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되자 동기들 가운데서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이 아쉽게도 지난 학기 나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케이시(Casey)였다. 보통은 학업이 버거워서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케이시는 전공이 본인의 적성과 맞지 않는 케이스였다. 그리고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있는 본인이 학교를 그만두면 장학금을 못 받은 동기가 대신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케이시가 학교를 그만두게 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평소 성격이 까칠하기로 유명한 케이시였기에, 다들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지난 학기 케이시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나는 그의 선택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샌디에이고 출신인 케이시는 학부 전공이 물리학이었고, 학교에 오기 전 공군에서 복무한 경험도 있었다. 본인의 본심을 잘 표현하지 않는 미국의 보통 아이들과는 달리 케이시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직설적으로 하는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도 본인이 생각하기에 아니다 싶으면 바로 교수님에게 손을 들고 바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확실하게 본인의 의견을 표출하고는 했다.


그런 케이시와 친해지게 된 것은 좀 의외였다. 첫 학기가 시작된 뒤, 우연히 케이시와 점심을 함께 먹을 일이 생겼다. 우리는 샌드위치 가게로 들어가 줄을 서서 한참 뭘 먹을지를 고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케이시가 가방을 뒤지더니 지갑을 오피스에 두고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다시 오피스에 갔다 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케이시에게 오늘은 내가 사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한국에는 서로 한 번씩 번갈아가면서 밥을 사는 문화가 있으니, 이번에는 내가 사고 다음에는 네가 사는 게 어떻냐고 물었고, 케이시는 거기에 흔쾌히 동의를 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매주 한 번은 식사를 같이 하는 사이가 되었다. 목요일 오후 수업과 대학원 레시테이션(recitation) 사이의 공강 시간에는 동기들이 서로 친한 아이들끼리 어울려 저녁을 먹곤 했는데, 이때 나는 항상 케이시와 둘이서 저녁을 먹었다. (만약 케이시가 없었다면 혼자서 저녁을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우리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 케이시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의 숙제 답안을 비교해보며, 안 풀리는 문제를 함께 풀었던 기억도 난다.


케이시가 칠판에 적었던 낙서


그런 케이시였기에 처음 그가 박사과정을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많이 아쉬웠다. 가장 친한 동기 한 명을 잃어버린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한 학기만 더 다녀보라고 권하고 싶었지만, 장학금 문제도 있고 해서 이미 학과에 본인의 결정을 이야기한 상황이었다. 사실 지난 학기에 케이시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가 지금의 전공에 약간의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긴 했었다. 모든 전공이 학문적으로 저마다의 약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학부 전공이 물리학이라서 그런지 케이시는 유독 학문의 완전성에 대한 기준이 높았던 것 같다. 그 결과, 수업 시간에 배운 이론들을 스스로가 온전히 납득을 할 수 없었고, 결국에는 다시 물리학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결정을 한 것이었다.


몇 개월 뒤, 우연히 캠퍼스에서 케이시와 마주치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악수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는데, 공교롭게도 바로 수업을 들어가 봐야 해서 오래 동안 대화를 하지는 못하고 바로 헤어졌다. 강의실로 들어와 수업을 듣다 보니, 케이시가 보낸 문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토마스, 괜찮으면 수업 끝나고 점심 같이 먹지 않을래?


당연히 오케이였다. 수업이 끝나고 약속 장소로 이동해 우리는 오랜만에 점심을 함께 먹으며 오래 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박사 과정을 그만두긴 했지만, 케이시는 여전히 캠퍼스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생활비는 학부 학생들에게 물리학 과외를 하며 충당하고 있었고, 조만간 물리학 박사과정에 지원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여름에는 동생이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는 일본에 여행을 한 달 동안 다녀올 것이라는 계획도 들려주었다.


박사 과정 첫 학기에, 이국땅에서 모든 것이 낯설었던 외국인인 나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던 케이시. 지금은 비록 연락이 끊겼지만, 분명 어딘가에서 그의 번뜩이는 두뇌와 직설적인 화법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케이시가 학교를 떠나면서 생긴 빈자리는 다행히도 또 다른 동기인 제프(Jeff)가 채워주었고, 이후 제프와 나는 서로의 '베스트 프랜드'가 되었다. 제프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별도의 글을 통해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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