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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Aug 15. 2018

카를로스 교수님

두 번째 학기에 수강한 세 과목 가운데, 역시 하이라이트는 카를로스 교수님이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지난해에 이 수업을 수강했던 2년 차들이 다 같이 입을 모아 지옥을 맛볼 것이라고 미리 경고했던 바로 그 과목이었다. 2년 차들 중에 이 수업에서 A학점을 받은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B-. 바로 아래의 재수강 학점인 C+를 받은 학생들도 있다고 했다.


우리 동기들 전부 잔뜩 겁을 먹고 들어간 첫 수업 시간.

왠 걸. 우리의 걱정과 달리 카를로스 교수님은 수업 내내 굉장히 젠틀하셨고, 수업도 아주 열정적으로 진행하셨다. 내용 자체는 어려웠지만, 매 수업마다 75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재미있는 수업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숙제가 나오자 우리는 2년 차들이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숙제로 내준 문제들의 난이도가 정말 극강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수업 시간에 배운 것들로는 절대 풀 수 없는 문제였고, 인터넷으로 관련 논문들을 이것저것 찾아봐야 겨우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다가온 중간시험날.

긴장한 채 시험지를 받아 들었는데, 역시나 단 한 문제도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우리는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주어진 시간을 꽉 채워서 답안을 작성했다. 시험 시간이 끝나고 답안을 제출하는 동기들 표정이 전부 어두웠다.


다음 시간, 카를로스 교수님이 채점된 답안을 들고 강의실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가 처음으로 꺼낸 한 마디,

이번 시험 문제들이 좀 재미있었지? 시험 평균이 100점 만점에 22점이네.


카를로스 교수님은 답안에서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셨다. 아무리 많이 써도 조금이라도 틀리면 그냥 그 문제는 0점이었다. 그리고 교수님은 "재미있었던" 이번 시험 문제를 그냥 버리지 않으셨다. 1주일 간의 봄 방학 동안 시험 문제를 다시 풀어서 제출하라는 숙제를 우리에게 내 준 것이다.


그 결과, 나는 봄 방학 동안 카를로스 교수님 아래에서 논문을 쓰고 있는 한국인 선배의 도움을 받아 시험 문제를 하나씩 다시 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문제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지난 학기 쟈코모 교수님의 수업에 이어,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마냥 몇 시간이고 붙잡고 있는 밤이 이어졌다.


한 번은 몸살 때문에 집에 오자마자 약을 먹고 바로 뻗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카를로스 교수님의 숙제 제출일이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번 숙제는 그냥 포기할까,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새벽녘에 천근만근인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꾸역꾸역 숙제를 어떻게든 끝낸 뒤, 숙제를 제출하러 학교로 갔던 기억도 난다.


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그렇게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서든 풀어내는 게 이론 연구의 핵심이고, 우리는 숙제를 통해 그것을 끊임없이 연습했던 것이다. 비록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지만, 결국 1년 차 과목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배웠던 것은 매번 숙제 때문에 고생했던 카를로스 교수님과 쟈코모 교수님의 수업들이었다.(..라고 썼지만 다시 또 하라고 하면, 결단코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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