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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Aug 16. 2018

퀄 시험 준비

1년 차의 마지막 기말 시험이 끝났다.

교수님께 답안을 제출하고 강의실을 나오니 어느덧 시간은 밤 10시가 넘었다. 건물 밖으로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산을 쓰긴 했지만 어느새 바지와 신발이 다 젖어버렸다. 하지만 옷이 젖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막 박사 과정 1년 차를 끝냈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빗 속을 뚫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노라니, 처음 미국에 도착한 날부터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하나씩 생각나며 나도 모르게 감성적이 된다. 그리고 무사히 그 시간들을 견대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여름방학의 끝머리에 예정되어 있는 퀄 시험(Qualifying Exam; 박사자격시험)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학 박사 과정은 1년 차를 마치고 치르는 퀄 시험에 합격을 해야, 비로소 진정한 박사 과정 학생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퀄 시험 정책은 학교마다 차이가 있는데, 어떤 학교는 박사 과정 1년 차 입학생의 절반 정도를 퀄 시험을 통해 잘라버리기도 한다. 1년 차가 끝나자마자 퀄 시험을 치르는 학교도 있는 반면, 여름 방학이 끝날 때 즈음 시험을 치는 학교도 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첫 번째 시험에서 떨어지면 한번 더 기회를 주는데, 두 번째에서도 떨어지면 예외 없이 학교를 나가야 한다. (참고로, 재정 상황이 안 좋은 학교일수록 학생들을 많이 떨어뜨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학교의 경우  시험 탈락률이 높은 편은 아니었는데, 어드미션을 받고 최종 학교를 선택할 때도 장학금과 더불어  점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입학  오리엔테이션 대학원 디렉터 교수님이 우리는 재정 상황이 좋기 때문에  시험에서 특정 비율의 학생들을 반드시 떨어뜨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과거 사례를 보면,  번째 시험에서 전과목을  번에 통과하는 학생 비율이 대략 50% 정도였는데 나머지 50% 최소  과목에서 떨어져 재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시험은 여름 방학이 끝나기 1주일 전에 하루에  과목씩 3시간 동안 , ,  - 3일에 걸쳐 치러진다. 시험 범위는 1 차에 배운 내용이 전부 포함되고, 1 차에 우리를 가르친 교수님 6명이 각각  과목씩 문제를 출제하게 된다. 만약  과목이라도 떨어지면 겨울방학  재시험을 치르게 되며, 이때도 떨어지면 학교를 나가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번째 시험에서 전과목을  패스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과목이라도 떨어지면 다음 학기부터 당장 재정 지원이 줄어들기도 하고, 겨울에 재시험을  때까지 혹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막상 1년 차가 끝나긴 했지만 퀄 시험에 대한 부담감으로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뭘 해도 마음이 불편했다. 가족과 함께 미국까지 공부하러 왔는데, 퀄 시험에 떨어져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일단 기말시험을 막 끝낸 5월에는 퀄 시험은 잠시 잊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했다. 지역 축제 구경도 하고, 토쥬군과 함께 신나게 뛰어놀며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했다.


매년 5월에 열리는 동네축제에서 꼬마기차를 타고 있는 만2세의 토쥬군


그리고 6월이 되면서 퀄 시험 준비의 시동을 슬슬 걸기 시작했다. 도서관으로 가는 것 대신, 일단 집 근처 카페에서 두 시간 정도 (중간중간 딴짓도 좀 하면서) 지난 학기의 강의 노트를 가볍게 훑어보았다. 그러다 학기 중에 잘 이해가 안 갔던 부분들이 나오면, 일부러 천천히 시간을 들이면서 그 부분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퀄 시험을 위한 워밍업 장소였던 동네 카페


7월에는 동기들과의 스터디가 시작되었다. 도서관에 앉아 혼자서 공부하는 우리나라의 공부 방식과 달리, 미국 아이들은 문제를 같이 풀면서 토론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학과에서도 퀄 시험을 위해 동기들끼리 함께 모여 기출문제를 푸는 것을 가장 추천하였고, 이를 위해 여름 내내 세미나룸 하나를 1년 차들을 위해 내어주었다. 나는 혼자 공부하는 방식이 상대적으로 편했지만, 그래도 시험이 다가오자 동기들과 안 풀리는 문제들을 함께 풀며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 스터디에 참여하기로 했다.


기출문제 스터디는 일요일만 빼고 주 6일 동안 매일 3시간씩 진행되었다. 매일 두 명의 발표자가 각각 1시간 30분씩 세미나룸 앞에 나와 본인이 미리 준비해온 기출문제를 칠판에 풀면서 설명을 한다. 그러면 나머지 아이들은 그걸 받아 적으면서 중간중간 모르는 부분이나 틀린 부분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질문을 하는 방식이었다. 기본적으로 퀄 시험의 기출문제는 정답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스터디를 통해 이런 식으로 정답을 하나하나 찾을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문제 하나를 두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고, 때로는 서로 본인이 생각하는 풀잇법을 칠판에 적으며 상대방을 더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한 배틀을 벌이기도 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시간들이 퀄 시험을 준비하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동기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내 이해력도 올라갔고, 또 나와 다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보며 더 나은 풀잇법에 대해 벤치마킹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기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니 퀄 시험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았다.


퀄 시험이 예정되어 있는 8월 중순까지 나의 하루 스케줄은 단순했다. 오전에는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를 하며 아내가 싸준 도시락으로 간단히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오후에는 세미나 룸으로 이동해 동기들과 함께 기출문제 스터디를 한다. 그다음 집으로 돌아와 저녁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사실, 시험을 위해서는 저녁 시간에도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는 게 맞는 것이었지만, 저녁만큼은 온전히 가족과 보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하루 종일 토쥬군을 돌보느라 고생한 아내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가족과 웃고 떠드는 동안 하루 동안 쌓인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퀄 시험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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