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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Aug 18. 2018

퀄 시험을 치르다

드디어 퀄 시험을 치르는 운명의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1. 첫째 날

첫 번째 과목인 미시경제학 시험이 있는 월요일 아침.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험을 치르게 될 강의실에 들어가니 무거운 긴장감이 엄습한다. 긴장도 풀 겸, 강의실 문 밖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있으니 동기 몇 명이 자연스레 합류를 하며 함께 몸을 푼다. "좀 긴장되는데"라는 나의 말에, 미국인 동기 한 명이 이렇게 말해 준다.


토마스. 다른 사람들은 다 떨어져도 너는 붙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 순간에는 이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퀄 시험은 혹시 모를 채점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답안에 이름을 절대 기재하지 않는다. 대신 별도의 종이에 이름을 적고, 그 이름 옆에 랜덤으로 배정된 숫자를 답안지의 이름 적는 칸에 적는다. 그 결과, 채점을 하는 교수님은 학생의 이름을 알 수 없고, 박사 과정 코디네이터인 패트리샤만이 답안지의 점수와 실제 학생의 이름을 서로 매칭 할 수 있게 된다. 답안지에 이름 대신 즉석에서 배정된 번호를 적고 나자, 시험지가 배부되며 일주일 간의 퀄 시험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첫째 날은 나름 선방한 것 같았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큰 실수만 없다면 무난히 통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둘째 날

월요일에 첫 번째 시험을 치르고 난 뒤 오후에는 온전히 쉬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화요일에는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다음 날 있을 두 번째 시험에 대한 준비를 했다. 주로 지금까지 풀었던 기출문제들을 다시 한번 복습하고, 중간중간 막혔던 부분들 위주로 정리하는 방식을 취했다.


3. 셋째 날

두 번째 과목인 거시경제학의 시험이 있는 수요일 아침.

강의실에 도착하니 시험 시작까지는 아직 시간이 제법 남아 있었다. 기출문제를 한번 더 볼까 하다가, 그냥 마음을 접고 스마트폰을 꺼내 노래를 듣기로 했다. 그때 내가 들었던 노래는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였는데, 노래를 듣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진 걸 보면 나름 훌륭한 선곡이었던 것 같다.


이윽고 시험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출제된 문제 가운데 하나가 동기들과 스터디를 할 때 내가 앞에 나가 발표했던 것과 거의 똑같았다. 이런 행운이 있다니. 그러나 이내 시련이 찾아온다. 첫 번째 학기에 매번 새벽까지 숙제를 한다고 고생했던 쟈코모 교수님이 출제한 문제는 역시 까다로웠다. 일단 문제를 차근차근 읽으며 내 나름대로 식을 세워나갔다. 그렇게 한 단계씩 천천히 밟아가다 보니 놀랍게도 마지막 과정의 답까지 아주 부드럽게 이어졌다. 답안을 작성하면서도 스스로가 놀랐던 "아름다운" 풀이법이었다.


시험을 마치고 강의실을 나오는데 기분이 아주 좋았다.


4. 넷째 날

수요일 시험을 치른 뒤, 역시 그날 오후에는 온전히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목요일에는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다음 날 있을 마지막 시험에 대한 준비를 했다. 내일이면 퀄 시험이 다 끝난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꾸역꾸역 지금까지 공부한 것들을 복습했다.


5. 마지막 날

마지막 날 시험은 바로 그 무시무시한 카를로스 교수님의 계량경제학이라서 어느 때보다도 불안했다. 그래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 다시 한번 지금까지 정리한 자료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이제 오늘 하루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좀 가벼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시험이 시작되었다. 역시나 카를로스 교수님이 출제한 문제는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한 문제가 기말 시험에서 나왔던 것과 똑같았다. 그런데 마지막이라고 긴장의 끈을 풀었던 것일까? 마치 뭐에 홀린 것처럼 이 문제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해버렸다. 분명 이전에 몇 번이나 풀었던 문제였는데, 완전히 틀린 답을 적고 만 것이다. 집에 와서 그 사실을 깨닫고는 머리가 멍해졌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시험을 끝마치고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시험이 끝난 것을 자축할 예정이었는데, 틀린 답을 적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기분이 갑작스레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런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질렀을까. 여름 내내 그토록 열심히 공부했는데. 시험공부한다고 아이와도 많이 못 놀아줬는데. 왜 나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을까. 그것도 카를로스 교수님의 시험에서 그런 실수를 저질렀으니...


퀄 시험이 끝난 바로 그날부터 나의 우울한 나날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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