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에서 수백 층의 빌딩까지, 모닥불에서 LED 전등까지, 창에서 핵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문명은 비약적으로 발달해왔다. 그와 함께 돈은 디지털화되어 무한대의 저장이 가능해지고 더해서 돈만 지불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수많은 다양한 서비스 업들이 생겨나면서 관계를 거의 완벽히 대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더해서 우주여행처럼 아주 많은 돈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행복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쯤 되니 돈만 있으면 관계를 통한 과거의 생존전략은 촌스러운 구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지게 되었고, 돈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생존과 행복 모두를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이 사회 전체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물론 과거부터 내려온 ‘관계 맺기’를 통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결국 우리는 크게 두 가지 형태의 삶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하나는 여전히 관계라는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기 위해서 돈을 필요로 한다. 다른 하나는 바로 오직 돈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관계를 필요로 한다. 이 둘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매년 조금씩 돈 쪽으로 기울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스스로 의식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개탄하며 천박한 황금만능주의 사회라고 비난하지만, 사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각자의 판단일 뿐이다. 전통적인 관계를 맺는 방법이 더 생존에 유리할지, 아니면 새롭게 부상한 돈을 많이 모으는 것이 더 유리할지에 대한 각자만의 고유한 계산식이란 뜻이다.
단지 한 가지 면에서 깊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정말로 ‘돈’으로 관계를 대신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과 정말로 내가 그것을 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왜냐하면 정말로 돈으로 관계를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이미 부자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거침없이 돈을 모은다. 법적인 문제만 걸리지 않는다면, 아니 능력이 되면 법망조차 요리조리 빠져나가면서 돈을 모은다. 우린 뉴스에서 그런 짓을 하고 사는 사람들의 삶을 가끔 본다. 그들은 돈이 인생의 유일한 가치이기 때문에 관계는 그저 돈을 더 많이 모으기 위해 매우 필요한 수단에 불과하다.
관계에 있어서 배신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누가 더 얼마나 영리하게 이득을 추구할 수 있느냐 여부만이 중요해진다. 관계는 처음부터 이득을 앞에 둔 승부의 대상이지 사람들이 흔히 좋아하는 따뜻함이나 충만함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이 누군가를 배신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저 배신을 한 사람은 영리해서 이기 것이고 배신을 당한 사람은 멍청해서 진 것이다.
정말로 관계 대신 돈을 선택한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부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당신은 과연 이렇게 살고 있는가? 아니, 이렇게 살 수 있는가?
아니다. 당신은 그저 돈이 해결책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여전히 관계가 중요한 사람이다. 그러니 과거에 그렇게 그렇게 배신을 당했고 상처를 입은 것이다. 지금도 가끔 외로움도 느낀다.
돈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돈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모든 행동이 이득과 손해의 관점에서 이뤄진다. 내가 이득이면 재빨리 붙고, 손해면 살짝 눈치 보면서 떨어져 나간다. 하지만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좀처럼 누군가와 쉽게 붙거나 떨어지지 못한다.
이 조합이 결국 파국을 만들어 낸다. 돈을 믿는 사람들은 아무런 상처 없이 떨어져 나가지만 사람을 믿었던 사람들은 그때마다 상처를 입고 만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마치 전염병처럼 주변에 퍼져나간다는 점이다. 한번 배신을 당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고 조금씩 돈 쪽으로 기운다. 더군다나 돈으로 경험할 수 있는 행복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그러니 기우는 속도는 늘어나기만 할 뿐 결코 늦춰지거나 멈추지 못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오다 보면 나도 문득 돈이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나도 어쩌면 관계는 오직 행복의 도구로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관계에서 배신을 당하거나 상처를 입는 그런 촌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한없이 쿨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진실일까?
아니다. 우리는 대부분 피해를 입다 보니 결국 이렇게 된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저 상처를 입어서 피해자가 되었으며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다.
잠시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자. 그 시절 돈은 그저 맛난 과자나 갖고 싶은 장난감을 구하는 용도로만 한정되었다. 우리는 부모님의 관심과 애정이, 친구들 사이의 인기와 인정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 시절엔 그것만이 삶의 전부였다.
그랬던 우리가 어느새 이렇게 바뀌었다. 돈만 충분하다면 관계도 얼마든지 맺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돈이 많으면 당연히 사람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그 돈을 쓰지 않으면 사람들이 떠나간다. 혹은 써도 결국 돈 때문에 남아 있는 사람들만 주변을 맴돌게 된다.
그들은 암에 걸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이나 우리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우리의 손을 잡아주지 못한다. 그나마 받아야 할 유산이 있으면 마지못해 죽어가는 내 손을 잡는 척은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손길이 따뜻할 수는 없다.
그러니 한 번쯤은 정말로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정말로 내가 믿고 있는 만큼 돈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정말로 돈만 충분하다면 관계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것이 가능한가? 나는 정말로 다른 사람들의 존재가 오직 ‘행복의 영역’에서만 필요할 뿐인가?
내가 지금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은 어쩌면 과거에 내가 입었던 많은 상처와 배신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어린 시절에 우연히 만났던 ‘돈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고 있는 친구에게 당한 배신으로 인해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각자마다 다른 삶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답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어느 순간 ‘외로움’을 느꼈다면,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을 원한다는 뜻이다.
너와 나는 여전히 우리를 안아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