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거리’는 문명의 발달에 따라 ‘너는 내 운명이란 껌딱지’에서 ‘행복을 위한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히 변해왔다. 이 변화는 아주 큰 것은 아니고, 모든 것을 함께 감당했던 관계에서 행복은 함께 하지만 불행에 관해서는 병문안이나 속상한 얘기를 들어주는 정도까지의 변화이다.
동굴에 살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누군가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상처를 받는 일 자체는 변함이 없다. 그것들은 ‘관계의 거리’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능력’의 차이로 인해 생겨나서 그렇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이 둘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문제들이 관계의 능력 차이로 발생하는데 그것을 관계의 거리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불에 다가갔다가 뜨거우니 아예 불에서 멀어진 채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충분히 껴입고 있다면 그렇게 살 수는 있다. 단지 따뜻하다고 느끼기가 힘들다. 힘들었던 날엔 많이 춥기도 하다.
그래도 살만은 하다. 데는 것보다 추운 것이 더 낫다. 그래서 아마도 이 정도 선에서 관계의 변화가 마무리되었다면 사는 것에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춥지만 얼어 죽을 일은 없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한 가지 문제가 추가된다. 그것은 바로 돈의 출현이다.
우리는 흔히 돈을 어떤 물건을 사고 파는데 주고받는 수단 정도로 이해하고 있지만, 가난이나 부자를 나누는 기준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런 개념은 과거에만 유효했다. 지금 시대의 돈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관계의 역할 대행’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에서 돈만이 유일하게 인간의 관계를 대행할 수 있다.
이 말의 의미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돈이 관계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돈만 충분하다면 관계가 이제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이미 실패했던 관계를 다시 해보는 노력을 하는 것보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노력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내 안전을 위해서 이웃집과 친하게 지내는 대신, 돈을 더 벌어서 더 튼튼한 문을 달고 더 많은 보험을 드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이때 오직 남은 문제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끔 보게 되는 얼굴도 잘 모르는 이웃과의 어색한 만남뿐이다.
사실 돈이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강력한 관계 대행자의 역할을 맡았던 것은 아니었다.
돈은 과거 로마시대에도 있었을 만큼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문명과 함께 해왔다. 그러니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왜 요즘 시대에 유난히도 이렇게나 강력한 관계 대행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또다시 잠시 과거로 되돌아가 봐야 한다. 도대체 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오래전 원시시대엔 돈이 아예 없었다. 그 당시엔 물물교환이 전부였고, 그래서 돈의 역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뒤 문명이 발달하면서 교환의 편의를 위해 돈이 생겨났다. 돈은 무거운 물품을 직접 거래하는 수고스러움과 적당한 가격을 형성시키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문명의 이기로써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런데 그 순간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돈의 새로운 능력 하나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돈의 ‘저장능력’이다.
돈은 거래가 되는 실제 물품에 비해서 그 부피가 매우 작다. 더해서 금과 같은 금속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결코 썩지 않는다. 그로 인해서 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보관이 가능하다.
실제 물품인 돼지고기나 호미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물론 어떻게든 보관을 하려고 노력하면 할 수도 있겠지만 운 나쁘게 홍수가 나서 물에 잠기기라도 하면 하루아침에 모두 날려 먹고 만다. 그러니 괜히 뒀다가 썩히느니 차라리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줘서 그 사람에게 뭔가를 ‘쌓아 두는 것’이 더 유리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보관이 매우 유용한 돈이 출현함으로써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돈은 실제 생산품과는 달리 무한대의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많은 재산을 가진 부자들의 출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돈의 무한대의 보관 역시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 아무리 저장공간이 적게 필요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저장공간이 필요하고, 더 큰 문제는 아무 데나 저장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반드시 안전한 금고와 같은 곳에 둬야 하고, 사람을 고용해 지켜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고용한 사람은 또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을 감시하는 또 다른 감시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돈의 저장은 이론적으로는 무한대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서 부의 축적이 어느 선에서 막히고 만다.
그런데 현대 문명에 접어들면서 돈은 한 단계 더 진화를 한다. 그것은 바로 은행과 카드사의 출현 덕분이다.
우리는 이제 직접 현금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계좌이체라는 기능이나 신용카드, 각종 페이들과 같은, 돈 자체가 아닌 돈의 정보를 통해 거래를 할 수 있다.
돈이 현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딘가 있는 커다란 컴퓨터 안에 디지털 정보로만 존재한다. 이런 식으로 디지털화된 돈은 이제 저장 공간이 거의 필요가 없다. 물론 컴퓨터의 데이터 저장 장소가 필요하긴 하지만, 인류 전체가 가진 돈의 총량이라도 PC 한 대 정도면 얼마든지 넣을 수 있다. 딱히 믿을 수 없는 경호원을 쓸 필요도 없다. 그저 접근을 막는 빈틈없는 방화벽과 강력한 보안 알고리즘만이 있으면 된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무한대의 돈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실제로 이 지구 상에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수준의 부를 실현한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무한대로 쌓일 수 있는 돈은 이제 관계의 역할 대행을 넘어서 관계 그 이상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돈만 있으면 화성에도 갔다 올 수 있다. 돈은 관계의 역할을 거의 다 대행하면서도 관계로는 할 수 없는 것들도 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왜 실패할 수도 있는 관계를 맺는 일에 다시 나서야 할까? 그 시간에 그 노력이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노력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그 말도 맞다. 그런데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그렇게 충분한 돈을 모으는 일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돈이 관계를 대신해주지 못하는 아주 작은 부분들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는 매우 크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암에 걸려서 수술을 받으러 들어갈 때, 많은 돈은 최첨단 의료장비와 최고의 의료진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지만, 그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 손을 잡아주지는 못한다. 그런데 그 순간에 이상하게도 우리에게는 그것이 가장 필요하다.
그런 순간 앞에 서면 내 옆에 바짝 붙어서 내 두 손을 절대로 놓지 않을 것처럼 꼭 쥐고는, 난 너 없으면 못 산다고, 너는 명줄이 기니까 꼭 살 것이라고, 그깟 병은 금세 털고 일어날 것이라고, 꼭 그래야 한다고, 사실상 아무런 근거도 없으면서도 그 누구보다 확신에 찬 채 말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나의 부재'가 너의 가장 큰 불행이 되기에 내 병이 낫기를 나보다도 더 바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