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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Oct 29. 2021

완벽한 인생 #8

세 번의 시도

나는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내가 왜 그녀를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사랑하는 그녀를 왜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모두 털어놓았다. 그러니 절대로 살인 교사와 같은 범죄행위는 아니라고 변명했다. 나는 그저 아내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수준의 커다란 불운이 필요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 실제로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지금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절대로 그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장난하지 마시죠. 누군가를 죽일 의도로 사고를 일으켜 달라고 한 것이나, 살인교사나 뭐가 다르다는 뜻이죠? 결국 당신 옆자리에 타고 있는 정인순 씨가 그 사고로 죽었잖아요. 그러니까 결국엔 살인교사죠."


우리 두 사람이 불륜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김형사는 나를 완전히 쓰레기 파렴치한으로 몰아붙였다. 인순 씨, 그래 내가 그녀가 죽였다. 그녀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유일한 이유는, 그녀가 내 생애의 두 번째 사랑이었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이 첫 번째 사랑이었던 아내보다 더 많이 사랑하지는 못한 여자였다. 그녀는 아내를 살려내기 위한 불운의 시나리오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그녀의 삶은 결국 이런 사고로 인해 끝났지만, 그래도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나로 인해 충분히 행복했다. 


사고가 난 당시 우리는 매화꽃을 보기 위해서 남해를 향하는 이른 봄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가 서로 각자 배우자를 속이고 처음으로 3박 4일간의 여행을 떠나는 날이기도 했다. 사고가 난 것은 바로 그 여행의 첫날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떠나는 여행이기도 했고, 오랜 시간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그녀는 어딘가로 떠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아이처럼 행복해했다. 그런 상태에서 사고의 순간에 즉사한 그녀는 고통조차 느낄 틈도 없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모든 것은 계획한 대로 완벽하게 진행되었다. 단 하나만 빼고. 사실 내가 지금 경찰서에 끌려와 있는 것은 결코 내 계획에 허점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재수 없는 일이 하나 생겼을 뿐이었다. 내가 거액의 돈을 주고 사고를 내달라고 의뢰한 놈이 차 사고를 내다가 그 자신도 죽어버린 것이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죽은 놈의 가족이 그 사고를 낸 과정을 알게 되면서 나를 경찰에 고소했다.


내가 사전에 그놈과 통화를 한 내역과 문자를 주고받은 내용이 결정적 증거가 되고 말았다. 내가 일을 의뢰한 그놈은 멍청하게도 사고를 내면서 내 차의 조수석과 자신의 운전석을 거의 정면으로 충돌시키고 말았다. 그로 인해 결국 두 사람 모두 죽고 만 것이다. 내 차의 오른쪽 측면을 제대로 치고 들어왔다면 아마도 인순씨만 죽고 그놈은 조금 다치는 수준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손쉽게 일억을 벌면서 보험금도 타 먹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멍청한 놈이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이다. 벌써 두 달이나 지난 일이다.


다행인 점은 아내 몸에 있던 종양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아내의 몸을 재검사했던 병원에서는 놀라운 기적이라고 했다. 아내를 진료한 의사는 이제는 좀 더 현실적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신나서 설명해줬다. 아내 또한 지금까지도 그런 기적이 시골생활에서 온 줄 알고 있다. 이제 경찰의 조사가 시작되었으니 아내는 내가 자신이 아픈 동안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아마도 큰 배신감을 느낄 것이 분명했다. 


만약 내가 모든 것을 다 털어놓는다면 아내는 나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았다. 내 눈앞에 있는 경찰처럼 우선 믿기도 힘들뿐더러, 어떤 이유든 자신이 죽어가는 동안 다른 여자와 만났다는 사실을 감정적으로 용납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뭐, 그래도 괜찮다. 내가 사랑했던 여자만 살릴 수 있다면. 만약 내가 희생해서 아내를 살리게 되었다면 그녀는 평생 슬픔 속에서 남은 삶을 보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헤어지게 되면 아내는 나의 배신에 치를 떨면서 나에 대한 어떠한 미련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운이 따른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더군다나 우리가 조사를 해보니까 그런 일이 처음도 아니더군요. 그 전에도 비슷한 사고로 옆에 타고 있던 여자가 죽은 적이 있었죠?"


형사들이 생각보다 많은 조사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는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인순씨는 내가 불륜 카페에서 만난 세 번째 여자였다. 최초에 계획을 세우고 난 후 만난 두 사람도 비슷하게 사고를 내서 죽였다. 하지만 두 번 모두 아내의 몸에 아무런 변화가 일으키질 못했다. 두 번째 사고가 난 후 나는 좀 더 깊게 생각했다. 도대체 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내가 무엇을 잘못 생각한 것일까?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그 이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두 사람이 내 옆자리에서 사고로 죽었지만 결국 그들의 죽음이 나에게 진짜 불행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들을 사랑하는 척만 했기 때문에 사고 후 인간적인 슬픔만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것도 일종의 불운이지만 아내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불운이 될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세 번째로 내가 진짜로 사랑할 수 있는 여자를 찾아야 했다. 깊이 사랑하지만 아내만큼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 그 여자가 바로 인순씨였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궁금한 것은, 딱히 이득도 없는데 왜 그런 짓을 저질렀냐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이상한 헛소리 말고, 정말로 그런 짓을 저지른 진짜 이유가 뭐죠?" 형사는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해준 말들은 하나도 믿지 않는 표정이었으며 그래서 그런 일들을 벌인 진짜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 뭐를 더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을 말했다. 나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당신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좀 이상하잖아요. 당신 말처럼 삶에서 오는 행운과 불행의 총량이 같다면, 왜 이 세상엔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과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죠?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행운과 불행이 찾아온다면 그런 차이가 생기면 안 되잖아요." 내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이번엔 김형사의 옆에 앉은 형사가 약간의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아마 조형사라고 했었을 것이다.


"저도 처음엔 그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알겠더군요. 사람마다 다 똑같은 행운과 불행이 찾아오는데 삶이 그토록 다양하게 행복하고 또한 다양하게 불행한지를 말이죠." 내 말에 조형사는 의자를 좀 더 앞쪽으로 당겨서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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