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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Nov 10. 2021

완벽한 인생 #마지막

또 다른 반복

생애 처음으로 경험하는 감옥의 세계는 몹시 낯설고 두렵긴 했지만 일 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하지만 그 사이 밖에서는 몇 가지 일이 있었다. 아내는 내가 자신이 아픈 사이에 세 차례의 불륜을 저지른 사실과 그 불륜 상대들을 모두 살인교사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물론 나는 이제 몸이 완전히 회복된 아내에게, 당신이 병에서 나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운에 관한 균형 때문이며, 그것 때문에 내가 그런 불륜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아내는 내 말을 믿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나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아내가 내 진심을 알아주고 다시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다. 그만한 불운이 있으면 되니까. 단지 나에 대한 신뢰를 잃고 떠난 아내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큼의 불운이 필요할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팔다리 하나 정도는 잃어야 할지도 모른다.


어느 날 면회가 왔다는 통보가 왔다. 교도소로 나를 찾아 올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혹시나 아내가 찾아왔을까 하는 마음에 기분이 들떴다. 아내가 나를 조금이라도 용서한 것 일까? 하지만 정작 면회 장에 가니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나를 수사했던 담당 형사였다. 그것도 둘 중 호의적이었던 조형사가 아니라 나를 인간쓰레기처럼 취급했던 눈이 부리부리했던 김형사였다. 그가 나를 보고는 멋쩍게 웃었다. 순간 뭔가 느낌이 왔다.


"조형사가 몇 달 전에 과로사로 죽었어요. 이번 진급 심사 앞두고 평소랑 달리 갑자기 미친 듯이 일만 하더니 갑자기 그렇게 갔죠." 김형사는 뜬금없게 조형사 이야기를 꺼냈다. 누군가의 죽음이긴 했지만, 그리 좋지 않은 장소에서 잠시 맺었던 인연이라서 그런지 전형적인 안타까움 말고 딱히 다른 감정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대신 듣는 순간 그가 그렇게 자신을 혹사한 이유가 대충 짐작이 갔다. 그는 승진이라는 행운을 잡기 위해서 억지로 불운을 만들다가 정말로 운이 나쁘게 죽음이라는 너무도 커다란 불운을 밟고 만 것이다. 원래 이 일이 그랬다. 불운에 불운이 겹치는 날이면 그렇게 된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조형사 그렇게 가고 나니 요즘 형사질 해서 먹고사는 일에 영 의욕이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다 때려치우고 사업이나 해볼까 하는데 겁도 좀 나고 해서... 제가 형사질 때려치우고 나가서 사업에 성공할 수 있으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어떤 일'이라... 중의적 의미를 가진 물음이었다. 아마도 내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그날 내가 조형사에게만 했던 과거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라도 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지금 새로운 선택 앞에서 불안함을 느끼고 나를 찾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그 어떤 일이란 말의 의미는 분명히 사업 아이템은 아닐 것이다. 그는 지금 사업을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불운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머리에 돌을 맞아 보거나, 차 사고가 내거나, 집에 불을 질러 보라고요?" 김형사는 내 말을 천천히 되풀이했다. 아마 그는 내가 한 말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왔을 것이다. 단지 진짜로 실천하기 전에 나에게 확답을 받고 싶어서 여기까지 힘들게 왔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형사는 허공을 한번 응시한 후 꽤나 진지해진 얼굴로 다시 내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려는 듯한 전형적인 형사의 표정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얼굴엔 살짝 미소가 스몄다. 내가 적어도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판단이 선 모양이다.


그 순간이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는 나는 갑자기 뭔가 이상한 느낌이 왔다. 내 눈앞에 있는 김형사는 내가 한 말을 실행할 것이 분명했다. 저 욕망이 느껴지는 미소가 그것을 확실하게 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사업에 성공해서 돈도 많이 벌고, 그것보다도 훨씬 더 큰 많은 행운들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그것을 과연 정말로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분명히 아내의 불치병을 치료하는 행운을 얻기 위해서 세 사람을 사실상 살해하는 죄까지 저질렀다. 그리고 그 결과로 받아 든 것은 분명히 아내의 건강한 몸이긴 하지만, 그로 인해서 나는 감옥에서 15년을 썩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덕분에 건강해진 아내는 오히려 나를 원망하며 떠났다. 그렇다면 과연 아내의 건강이 좋아진 것이 과연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나와의 좋은 기억을 가진 채 세상을 떠났다면 어쩌면 그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행운이라고 믿고 높이 뛰어서 붙잡은 것이 사실은 내 발에 밟혀 축축하게 물컹거리는 불운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지금껏 내가 예전에 그 고객을 만나 운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된 것을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갑자기 그 일조차도 정말로 행운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때 만약 그 고객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래서 내가 로또가 당첨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까? 인생의 패자가 되어서 술주정뱅이가 되어 있을까? 아니면 재기해서 지금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을까? 어떤 삶이든 아내를 만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저 지금 이 순간 확실한 사실 하나는 나는 지금 앞으로 이 교도소에서 15년을 보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사랑하는 아내를 살릴 수 있는 일은 좋았지만 그것을 위해 세 명이 죽었고 그리고 이 교도소에서 나갈 때쯤이면 나 자신도 육십이 코앞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내가 운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된 것 자체가 정말로 행운이었을까? 나에게 그 진실을 알려 준, 발을 다쳐서 평생 절룩거리면서 살아야 하는 그 고객의 삶은 과연 행복했을까? 아니, 그가 지금쯤 살아있기나 할까?


갑자기 발 밑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욕망과 기대감에 찬 눈으로 감사인사를 하고 뒤돌아 나가는 김형사의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그의 미래가 그려졌다. 한 명은 평생 동안 다리를 절룩거려야 하고, 또 한 명은 아내에게 버림을 받은 채 감옥에 있어야 하고, 다른 한 명은 아예 죽고 말았다. 그렇다면 김형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면 운이란 것은 지금 내 처지에 따라서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지금의 행운이 미래엔 불운으로, 그 불운이 더 먼 미래엔 행운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오직 미래에 결정된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확정이 된다. 죽음이라는 가장 큰 불운이 닥쳤을 때 내가 살아오는 동안 건너온 모든 운의 의미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떤 것을 행운이라고 정의하고 또 다른 어떤 것을 불운이라고 정의하는 일이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일까?


"잠깐만요."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김형사를 불러 세웠다. 딱히 그의 삶에 관심이 생겨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냥 꼭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나와는 이미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진 상태에서 김형사는 '왜?'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실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마세요. 그것은 불과 같아서 데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도 잘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나는 그 말을 하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사실 지금 이 순간 나 자신도 내가 한 말이, 아니 예전에 그 고객이 나에게 해준 말이 무슨 의미인지 혼란스러웠다. 예전엔 분명히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순간엔 내가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형사는 잠시 특유의 부리부리한 눈을 껌벅거리더니 무의미하게 손을 흔들고는 가던 길을 갔다. 또 언제가 시간이 흐르면 그도 나처럼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누군가에게 해주게 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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