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ónde estoy en este mapa?
13/04/miércoles
4월 13일 수요일
desde Los Arcos hasta Logroño
로스 아르코스에서 로그로뇨까지
여행한 지 10일, 걸은 지 7일
행인의 외투를 벗게 하는 건 햇빛이라고 했던가. 꽤 높은 곳까지 올라왔음에도 바람은 잠잠하고 더위가 극성이었다. 외투를 벗어야겠어. 한숨 돌리려는데 한쪽 구석에서 바욘행 기차를 타던 날 보았던 노부부가 그들의 동행과 기쁨의 소리를 외치고 있었다. 루꼴라! 그들은 수풀 속에서 “만나”를 찾았나 보다.
마을에 도착하면 나는 자연스레 성당을 먼저 찾는다. 순례자에겐 몸의 쉼터이자 마음의 쉼터요, 도장을 받음으로써 순례자임을 증명하는 곳이며, 때론 관광지가 되는 곳이 바로 성당이기 때문이다. 고요한 성당을 한 바퀴, 두 바퀴. 나무 벤치에 걸터앉으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잘못하면 그 시간(시에스타 Siesta, 점심을 먹은 뒤 취하는 낮잠 혹은 그러한 시간을 뜻한다. 이는 스페인에서 전통적으로 지켜지는 관습이며, 기온이 높은 국가에서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에 걸리겠어! 나는 바로 앞 식당에 가서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 식사는 별로였다. 속이 느글거렸지만 반찬 투정은 그만뒀다. 체력 보충을 해야 했다. 나는 웬만히 그릇을 비워내고 다시 화살표를 따랐다. 막 마을을 벗어나려는데, 후다닥 식당을 먼저 나갔던 미령이 보였다.
쌩 하니 달리는 자동차가, 한아름 짐을 이고 상대적으로 행동이 굼뜬 순례객들을, 스무드하게 지나쳤다. 오른쪽 저-기, 알베르게 표시인 것 같아! 알베르게들이 골목길에 길게 줄을 섰다. 미령과 나는 그중 한 곳을 정해 돌진해 들어갔다. 그리고 타는 목을 부여잡고 아구아, 뽀르 파보르. (Agua, por fabor. 물 좀 주세요.) 오스피탈레로에게 물 한 잔을 요청했다. 친절한 오스피탈레로는 뒤 켠에 있는 화장실, 걸레를 빠는 큰 세면대에서 물을 받아주었다. (과연 이때부터 생수를 사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찝찔한 물 한 모금을 입에 담고, 배낭에 묵혀 두었던 침낭을 털어 침대 위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숙소 탐방을 마친 후, 알베르게 안에 비치되어 있는 마을 지도 한 장을 찢어 들고 마트를 찾아 나섰다. 도로를 겨드랑이 양 옆에 끼고서. 기술 발전으로 이룬 활기찬 기운을 느끼며. 나는 콘크리트 건물, 움직이는 기계들 한가운데서 목적지를 찾았다. 마트는 철저한 마케팅적 계산으로 상품 진열을 갖추었고 물량 공세가 대단했다. 미령과 나는 그들의 철저함에 온탕 홀려버린 순진한 고객님.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푸짐하게 담았다. 알록달록 화려한 것들을 본 순간엔 그게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찰나였지만 마을의 제일가는 큰 손이 되었던 우리는 장바구니를 간추려 평소와 마찬가지로 간편식 빠에야, 몇 가지 과일과 주전부리를 사서 알베르게로 돌아갔다. 숙소에 들어서자 수비리에서 만났던 프로 순례자 할아버지 둘이 접수를 마치고 이제 막 나가려는 참인 듯,
- 올라, 아미가스! (¡Hola, amigas! 안녕, 친구들!)
미령과 나는 빨랫감을 들고 위층 세탁실로 올라갔다.
- 오늘도 힘들었다. 빨래만 돌리고 어서 쉬자.
그래 이제 빨래만 돌리면 되는데……. 동전 넣는 법, 세제 넣는 법을 몰라 애먼 옷가지들만 벙쪄있었다. 세탁기는 대답이 없고 나는 쭈그려 앉아 여기저기 모든 버튼을 곱게도 건드렸다. 낄낄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찌어찌 오스피탈레로의 도움으로 시작된 빨래는 밤까지 이어졌다. 기다리다 지친 나는 이층 침대에서 한 번을 내려오지도 않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미령은 로비에서 부스럭부스럭. 아직 일정을 끝마치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물집이 더 도지지 않도록 배낭의 무게를 줄이려나, 밤늦게까지 짐을 재정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