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ónde estoy en este mapa?
22/04/viernes
4월 22일 금요일
desde Castrojeriz hasta Frómista
카스트로헤리즈에서 프로미스타까지
여행한 지 19일, 걸은 지 16일
- 신은 우리의 어떤 것까지 지키는 걸까? 마음에 짐 없이 편하게 지내고 싶은데 잘 안돼. 난 항상 복잡해.
- 우린 아마 그 문제를 풀지 못할 거야. 그냥 순간마다 노력하는 거지, 우리가 고민하는 것에 대해.
긴 시골길을 지나 높은 언덕을 헉헉대며 오르고 나니, 지붕으로 그림자를 드리워낸 쉼터가 보였다. 쉼터는 각국 언어로 적힌 메시지들로 뒤덮여 있었다. 다들 등반 후 더위를 식히느라 배낭이며 겉옷을 벗어 제쳤지만, 나는 언어 수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만난 것 마냥 신이 났다.
올라갔으면 내려도 가야 하는 법. 이미 삐걱대기 시작한 무릎에 내리막길은 쥐약이었다. 혹여 길이 좌우로 비스듬하게 기울기라도 하면 고통은 배가 된다. 그런데도 나는 스틱을 바닥에서 띄워 두 발로만 길을 걸었다. 스틱 한 개는 되려 몸의 균형을 깨기도 하니까. 가끔은 길에 발바닥만 바짝 붙였다.
- 스틱 좀 빌려도 될까?
팀이 쭈뼛대며 물었다. 물론! 그 후 내리막길에서 팀의 다리는 세 개가 아닌 네 개로 늘어났다.
바스스. 한 입 베어 물기도 어려운 크기의 토르티야를 입으로 잘라내는데 나의 표정은 어둡고 행동은 조심스러웠다. 그 이유인즉슨 카페에 들어오기 전 마주친 윤승 때문이었다. 사람이 부는 휘파람에도 매번 흔쾌히 대답하는 새소리와 달리 그는 매우 급해 보였다. 윤승은 먼저 출발한 유빈이 계속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팀과 나에게 소식을 전하는 도중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하느라 쉴 새가 없었다. 유빈을 보면 꼭 연락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자 윤승은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손에 든 토르띠야가 거의 다 사라질 때쯤 엊저녁 식당에서 만났던 브래드와 그의 친구들이 카페로 들어왔다. 그들은 여전히 힘이 넘쳤다. (다만 와인이 없어 어제만큼은 아닌 것 같았다.) 이름이 뭐라고 했었죠? 그들의 질문에 대꾸하곤 나는 조용히 남은 빵을 처리했다.
따로 떨어뜨려 놓으면 나뭇잎이 없어 앙상한 나무들은, 강가를 따라 서있기를 함께하니 새삼 부드러웠다. 중국인 두 명이 자전거를 타고 옆을 지났다. 타고 가는 건지 끌고 가는 건지 멈추길 자주 했다. 끼-익, 끽. 하늘이 점점 더 짙고 탁한 색깔을 끌어오기 시작했다. 1시쯤엔 비가 온다고 하더니. 학은 입에 나뭇가지를 물고 나의 머리 위를 지났다. 성당 종탑에 둥지를 보강하여 비를 피하려나 보다.
프로미스타. 윤승은 먼저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와인을 끼고 성당 벽에 혼자 기대앉은 모습. 아직 유빈을 만나지는 못한 듯했다. 만나면 보통 장난치기에 바쁜데, 오늘만큼은 사색에 빠질 그를 위해 팀과 나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우리는 알베르게로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길게 늘어선 줄 뒤에 그 길이를 보탰다. 오전의 중국인 자전거 순례객도 보이고……. 한 명씩 침대를 배정받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팀의 차례. 팀은 여전히 다리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1층 침대를 쓸 수 있겠냐며 편의를 구했다. 그러나 오스피탈레로는 단호했다.
- 1층은 노인들을 위한 거예요, 젊은 사람들은 2층을 써야죠!
꺼림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어쩔 수 없지. 얼른 씻기나 하자.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에 온몸의 피로함을 쓸려 보냈다. 오후를 다시 상쾌하게 시작하자고! ……. 그런데 이건 또 웬걸. 침대에 올려놨던 침낭은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침낭 대신 다른 어떤 이가 앉아있었다.
- 한 침대에 두 명이 배정받은 것 같은데요, 제 침대에 다른 사람이 있어요.
오스피탈레로는 재미난듯 웃더니, 나중에 배정받은 한 명은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나 다음 두 번째로 침대의 주인이 되었던 순례객은 작은 건넛방을 소개받았다. 여기 써요. 됐죠? 그러더니 그는 태연하게 로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미안해요, 괜찮으시죠? 조금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두 번째 침대 주인인 그녀는 괜찮다고 답했다. 나는 내 침낭 대신 풀어헤쳐져 있던 그녀의 짐들을 함께 날랐다. 팀과 나는 여러모로 마음이 상해 입이 삐쭉 나왔다. 그리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기대앉았다. 창문 밖으로 윤승 곁에 유빈이 도착한 것이 보였다.
저녁은 팀과 샌드위치를 만들어 간단하게 해결하기로 했다. 슈퍼에서 사야 할 것들은 뻔했다. 햄, 치즈, 식빵. 한데 사방에 쓰인 스페인어와 두 번째 배려한답시고 상대방에게 미룬 재료 선택권은 장보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장보기를 마쳤고, 숙소로 돌아와 사 온 것들을 꺼내어 저녁 상을 차렸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아. 괜찮은 것 같아. 정말이야.
아니, 난 안 괜찮아! 때는 해 질 녘, 휴게실에선 할아버지들 세네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와이파이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휴게실 문 앞 콘센트에 충전기를 꼽고 앉아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안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 너 몸무게가 어떻게 되니?
왁자지껄 웃던 무리에서 한 할아버지가 나오더니 나에게 몸무게가 어떻게 되냐며 물었다. 내 몸무게? 그러다 순간 미간이 찡그려졌다. 입을 굳게 닫았다.
- 아니, 모델인가 싶어서.
할아버지는 흐지부지 말 끝을 흐리곤 자리를 떴다. 설마 다른 이들도 이 찜찜한 질문을, (슈퍼 가는 길에 보았던) 거리에 누워 와인을 마시는 ‘보헤미안의 자유분방함’으로 여기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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