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ónde estoy en este mapa?
26/04/martes
4월 26일 화요일
desde Sahagún hasta El Burgo Ranero
사아군에서 엘 부르고 라네로까지
여행한 지 23일, 걸은 지 20일
쓰지 않는 여분의 베개들이 두 다리 펼 자리를 몽땅 차지하여 침대 길이를 짧게 만들었고, 모두가 잠든 밤 슬그머니 꺼진 라디에이터는 돌돌 싸맨 침낭이 무색하게 공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 덕에 잠을 설친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손으로 자꾸만 들쳐 올리면서 오른발에는 처음으로 무릎 보호대를 찼다. 오늘은 왼발이 잘 버텨 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아침 일찍부터 골목길 어느 집에서 개가 그의 주인과 나오고 있었다. 한 덩치 하는 개는 짙은 갈색에 날렵한 맵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냥개처럼 외모나 본새가 무시무시했는데, 그 개는 무시무시한 형체를 해서는 나를 따라오면서 큰 소리로 짖어 댔다. 주인은 단호한 목소리를 내며 그를 단속했다. 그러나 그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러다 줄을 놓칠 수도 있겠는데? 견주는 목을 빳빳이 들고 짖어대는 개를 전보다 더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럴수록 목줄은 더욱 팽팽해졌다. 결국 주인은 안 되겠는지 현관문을 열기 위해 버튼 하나를 눌렀다. 긴장감 속 애가 타는데, 현관문은 그 속도 모르고 돌돌 거리며 천천히도 열렸다. 컹컹! 그 울음을 끝으로, 미련한 개는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주인과 함께 할 하루치 산책을 포기하고 말았다. 겁에 질려 얼어붙었던 나는 그들이 들어가고 문까지 완전히 닫히고 나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본래의 목표를 상기시켰다. 걸어야지. 후들거리는 다리를 하나씩 앞으로 내디뎠다. ……. 여기가 어디더라? 앞에 안전 조끼를 입은 여자가 보였다. 부에노스 디아스. (Hola, Buenos días.) 이 동네 하나는 정통할 것 같은 여자는 내 인사는 가볍게 지나치고, 바로 뒤 순례객을 반갑게 맞이했다. 여기는 잘못된 길이니 어디 어디를 통해 가라고 알려주는 듯했다. 나도 길잡이가 필요한 상황이었으므로 슬쩍 속도를 늦춰 그녀의 설명을 들은 순례자의 뒤를 따랐다.
작은 동네를 벗어나서 너른 땅을 홀로 걸었다. 그제야 소심한 마음도 한 줌 되는 어깨를 폈다. 이따금 더운 열기에 바싹해질 내 머리는 물웅덩이가 보이면 생동감을 얻었고, 물속에 비친 푸른색들에 취해 숲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그림자가 선명한 하루, 나의 걸음걸이가 특별해 보였다.
들에 핀 작은 성당은, 멀리서 보면 작고 아담했으며 그 앞에 벤치를 두고 있어 봄날의 피크닉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거리를 좁히면 좁힐수록 은근히 본모습을 보여 주었다. 연식이 되어 곳곳에 색이 바랬고,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여서 치료되지 않은 상처가 투성이었다. 게다가 주변에 높게 자란 풀과 언뜻 부는 바람이 그곳으로 동물의 울음소리를 옮기니 자체의 음습함이 배가 되었다. 팽! 오래도록 기다린 인기척은 서늘함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한동안 훌쩍이던 코를 풀고 다시 걸었다. 한참 뒤 두 번째 휴식처를 만났다. 그곳은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로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자연스레 이끌었다. 나는 핫초코와 참치 빵이 담긴 쟁반을 들고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무심코 끈 의자 밑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낮잠을 청하고 있었나 보다. 고양이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옆 테이블의 여자에게 다가가 솜방망이를 마구 휘둘렀다. 고양이와 참치의 조합에 잠시나마 긴장했던 나는 달아난 고양이를 찬찬히 뜯어보며 혼자만의 느긋한 식사를 즐겼다. 그리고 마지막 한 조각을 입에 넣을 때에 빵 부스러기들을 바닥으로 털어내고 잔뜩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걸어야 할 때였다. 집집마다 담장 벽을 예쁘게도 꾸몄다. 카페를 나서자 길가에 놓인 아기자기한 장식품들이 소녀의 감성을 자극했다.
- 으르르르…….
감상에 빠져 힘차게 출발하고도 몇 걸음 가지도 못했는데 어디선가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의 악몽 같던 일이 떠올라 숨을 죽이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조심스레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개 세 마리가 동시에 자세를 낮추고 당장이라도 공격할 태세를 하고 있었다. 조용히 지나가기만 갈게. 스틱이 개들을 자극이라도 할까 품에 숨기고 그렇게 조심스레 발을 옮기는데 뒤에서부터 자전거 5대가 자갈길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컹! 컹! 컹!
- 으아 미안해!!
뜻밖의 사과를 한 나는 묶여있는 세 마리의 개가 지키는 영역을 벗어나기까지 달리고 달렸다. 그때 눈 앞에 좀 전 카페에서 고양이와 놀이를 하던 여자가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달리는 와중에도 짙은 하늘 아래 그녀의 하늘색 티셔츠의 빛깔이 풍경과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나는 헐떡이는 숨을 고르고 이내 천천히 박자를 맞춰 걸었다.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녀의 평화로운 모습은 그 후로도 뙤약볕 아래 비슷한 모습만 반복되는 길에서 내 눈에 가뭄의 단비가 되어 주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 사이 작은 농구대를 가진 마을의 알베르게. 나는 문에 붙은 종이를 확인하고 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메디코, 메디코! (Médico, Médico!) 자전거를 타고 어딘가로 막 출발하려던 할아버지가 페달을 멈추더니 나에게 일러준 말이었다. 다시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오픈 시간을 알리는 숫자에 가려 안보였지만 맨 윗줄에 분명하게 쓰여있던 메디코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알베르게가 아닌가? 그냥 갈까 어물쩍거리면서도 여기가 아니면 그 옆 건물이 숙소겠거니 우선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을 고생시킨 감기 몸살은 거의 다 나은 상태였지만 아직까진 몸보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므로. 나는 자전거 순례객인 프랑스 여자 두 명이 이미 거나한 점심상을 차려 먹고 있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리고 당장 페레그리노 메뉴를 주문했다. 얼음 넣은 시원한 오렌지주스와 식전 빵을 시작으로 빠에야, 신선한 샐러드, 깔라마리, 디저트로 푸딩까지. 평소와 다르게 소스도 신경 써서 뿌려 먹으니 거금 10유로도 아깝지 않을 가장 맛있는 식사가 되었다. 다행히 의문의 메디코 옆의 건물은 알베르게가 맞았다. 푸근한 인상의 봉사자 두 분이 순례자들의 방 배정을 돕고 있었다. 나는 나에게 언젠가 몸무게를 물었던 할아버지와 한국인 3명과 한 방을 쓰게 되었다. 오랜만에 한국인을 만난 터라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장소도 가리지 않은 채. 침실에서는 할아버지가 우리의 대화에 낄 틈이 없었고, 빨래터에서는 우리의 입이 네트 너머 축구하는 아이들보다 바빴고, 마트에선 저녁식사 메뉴에 대한 토론의 장이 열리기도 했다.
쌀밥과 계란 국, 마요네즈에 버무린 참치 통조림, 통통한 미트볼이 상에 올랐다. 처음엔 살짝 간이 안 맞나 음식 평을 해가며 조심스레 먹었다. 그러나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들은 고봉으로 밥 두 그릇씩 비워냈다. 약간의 거짓을 보탠다면 태어나서 가장 많이 먹은 날이었다. 아니다, 아주 어렸을 적 삼겹살을 너무 많이 먹어 빵빵해진 배가 거북스럽고 아파서 울었던 때보다는 못했으려나? 어쨌든 식사 후 사용한 식기들을 치우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배가 아파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배를 가득 채운 건 확실했다. 그래서 누구랄 것도 없이 네 명 모두는 엉거주춤 엉덩이를 뒤로 빼고 걸었다. 그리곤 자기 전에 먹은 거 다 소화시키려면 뭐라도 해야겠다며 서로 설거지하기에 나서기에 이렀다. 창문으로 석양이 지는데 네 명의 여자는 분위기커녕 부산스럽게 몸을 흔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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