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아아.
그리고 투두둑, 쿵.
창문을 무섭게 때려대는 빗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상공 꼭대기에서 투척한 물대포가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터지며 물줄기를 쏘아댔다. 청명한 푸른빛을 잃어버린 하늘은 겹겹이 쌓여 몸을 잔뜩 불린 먹구름에 점령당한 지 오래였다. 생기를 빼앗긴 무채색 세상에선 회색 연기만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건 뭐 스콜(Squall)이네. 우리나라는 이제 장마철이 아니라 우기에 들었다고 해야 돼.”
미연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다 선풍기를 틀었다. 그녀의 손에는 방바닥을 닦다 만 걸레가 쥐어진 채였다. 이런 날씨에는 집안일을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였다. 선우는 미연의 목덜미에 맺힌 땀방울이 툭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터였다. 무엇보다도 선우에겐 말을 건넬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에게는 연례행사와도 같은 일이었다. 끈적거리는 공기, 피부에 쩍 들러붙는 꿉꿉한 습기. 이 모든 게 그에겐 치명적이었다. 더위에 물을 먹은 기계가 한참 먹통이 되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동시에 삐걱거리며 도통 제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몽롱한 정신 속을 부유하며 허우적대는 와중에 빗소리가 들려왔다. 빗물이 발끝으로 침투하더니 곧장 척추를 타고 올라와 순식간에 머리까지 들이쳤다. 물이 차오른다. 빗물에 절여진 몸뚱이가 힘없이 뭉개지며 바닥에 늘러 붙었다. 질척거리는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온몸이 질퍽거리며 흘러내렸다.
“어휴, 끈적거려. 씻어도 금방 또 이러니 뭘 할 수가 있어야지. 빨래도 마음대로 못하고 죽겠어 정말. 건조기를 얼른 사야 되는데.”
미연의 말이 정신을 잃고 흐느적대던 선우를 방안으로 다시 불러왔다. 빗물에 퉁퉁 불어버린 몸을 추스르며 그는 겨우 말문을 열었다.
“건조기야 사면되지. 그런데 둘 데가 없다며.”
“그러니까 더 속이 터지지. 세탁기도 바꿀 때가 됐는데, 둘을 같이 사면 싸게 살 수 있더라고. 그럼 뭐해. 세탁기 위에 건조기를 올려야 하는데 벽 쪽 선반 때문에 견적이 안 나와. 선반을 떼서 다른데 붙이려 해도 길이가 다 안 맞고.”
세탁기가 있는 방향을 향해 앉아있던 그녀는 갑자기 휙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거실에 세워진 에어컨을 바라보았다.
“에어컨도 그래. 20년이 다 돼 가는 걸 바꾸지도 못하고. 이젠 한여름에 켰다가 아예 멈출까 봐 무서워서 잘 켜지도 못하겠어.”
“그럼 에어컨이라도 새로 하나 놓을까?”
“마음 같아서야 당장이라도 바꾸고 싶지. 그런데 우리 1, 2년 안에 이사 갈 거잖아. 그 시기에 맞춰서 사야 새 집에 깔끔하게 설치하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집 안에는 습기가 점점 더 차올랐다. 숨 쉬기조차 버거워진 공간을 정적이 채워갔다. 기계도, 사람도 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빗줄기가 거세질수록 심장이 덜컥거렸다. 동네 실개천은 급격히 불어나 흙탕물이 쏟아져 나왔다. 탁한 물줄기는 떨어져 내린 빗물을 담아내다 한계치에 다다라 금방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갈 듯이 소용돌이치며 거칠게 포효했다.
그는 선풍기 바람에 젖은 몸을 말려보려 했지만 미적지근한 바람결에서 조금만 비껴가기라도 하면 주르륵 무너져 내렸다. 대충 씹다가 벽에 문대서 붙여둔 껌 같은 형태의 곤죽이 되어 빗물이 흐르는 모양대로 빚어졌다. 휘적대며 치대지는 덩어리는 먹구름처럼 흐리고 어두운 색을 뗬다. 예전 자신의 모습이 어땠는지조차 희미해질 지경이었다. 미연은 예전보다 둔중해진 선우를 간간히 뾰족한 눈으로 보곤 했다. 그는 흘러내리는 자신의 몸을 붙들고선 평소와 같이 움직였다. 집에서 밥을 먹고, 밖으로 일을 나가고, 또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느릴지언정 착실하게 흘러갔다.
“이것 봐. 오랜만에 햇빛이 나서 얼른 빨래를 널었더니 금방 말랐어. 뽀송하게 마른 걸 보니 기분도 좋네.”
미연이 웃었다. 작은 미소가 창틈으로 내리는 햇살과 어우러져 반짝였다.
“우리 수박이나 잘라먹을까? 비 오기 전에 사서 냉장고에 넣어둔 거라 아주 시원하고 맛있을 거야. 저녁 먹고는 마트 가서 장도 보고 동네 산책도 하자. 비 때문에 집안에만 있었더니 답답해. 좀 나가줘야지.”
그녀의 손에 들린 옷에서 말간 햇빛 냄새가 났다. 우중충한 습기가 가득 찬 공간에 빛의 스펙트럼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노랗게 물든 발끝과 손끝에서부터 간지럼이 타고 올라왔다. 피부 속에서 느껴지는 통증과도 비슷한 소름이 돋는 감각에 선우는 자꾸만 몸을 비틀었다. 그는 손을 뻗어 어깨를 벅벅 긁다가 전보다 몸이 단단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우에게도 햇빛 냄새가 맴돌았다. 아직은 물비린내에 가려져 가까이 다가가야 겨우 맡을 수 있는 희미한 냄새였지만, 그것은 분명 그의 체취였다.
금세 건조해진 공기에 그는 마지막까지 몸속에 남아있던 습기를 끌어 모아 숨을 내뱉었다. 몸이 햇볕에 바싹 말려져 굳혀졌다. 이제야 다시금 인간의 형상을 갖춘다. 새로 빚어진 두 팔과 두 다리를 쭉 뻗더니 두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지긋지긋한 우기의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