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바닥

Travel sickness

by 하이민

감자빵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그게 그렇게 맛있다더라. 한번 먹으러 가자는 제안에 토요일 아침, 지윤은 집을 나섰다. 딱딱하고 정적인 사무실 구석에서 무채색을 이루는 점 하나로 숨어 있다가 나온 바깥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생기가 넘쳐흘렀다. 햇살이 기분 좋은 화사하고 청명한 날이었다.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은 따스한 온기를 담아 부드럽게 얼굴을 쓰다듬으며 머리카락을 간지럽혔다. 하늘은 한 움큼 풀어놓은 옅은 푸른빛이 고요하게 일렁이다 구름에 스며들었다. 하얀 뭉게구름은 옹기종기 모여 둥그스름한 제 몸뚱이를 이고 뒤뚱대다 앞으로, 때로는 옆으로 구르기도 하며 자유롭게 떠다녔다. 나들이를 떠나기에 이보다 적격인 날은 없을 터였다. 답답하고 비좁은 도심에서 벗어나 탁 트인 교외로 나가려는 무리들이 삼삼오오 짝을 짓곤 줄지어 탈출을 감행했다. 지윤과 친구들도 마침 그 치열한 대열에 낀 참이었다.

회사만 안 가면 없던 기운도 솟아났다. 지금껏 사무적인 표정 아래 감춰두었던 감수성이 한껏 부풀어 오르더니 벌겋게 영글어 톡톡 터져 나왔다. 혜주는 조수석에서 팔을 뻗어 운전대를 잡은 하진의 입의 마카롱을 쏙 넣어주며 까르르 웃었다. 지윤의 옆자리에 앉은 수진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등성이에 연신 감탄을 내뱉으며 역시 인간은 자연을 보고 살아야 한다는 자연 예찬론을 펼쳤다. 중간에 불쑥 나오는 회사 욕이나 짤막한 신세한탄조차 공감과 위로를 공유하는 카타르시스 역할을 하며 아드레날린 수치를 더욱 높이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활기차고 평화로운 시간 속에서 지윤은 소리 없이 자신과의 사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차가 톨게이트에 멈춰 설 즈음 가슴 언저리가 갑갑해지며 목구멍이 살짝 조여 왔다. 이제 곧 오겠구나. 지윤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막힌 듯 답답했던 위가 조여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재빨리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럴 때 차장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다채로운 배경은 심각한 두통을 부를 뿐이었다. 이때부터는 시각뿐만이 아니라 후각도 고통이었다. 자동차 특유의 가죽시트와 방향제가 섞인 향은 점점 불쾌하고 역겨운 냄새로 바뀌어갔다. 창문을 열어 바깥공기를 들이마시면 조금은 괜찮아지지만, 달리는 고속도로 위에선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자꾸만 식은땀이 났다. 작은 울렁거림은 넘실대는 파도가 되었다. 이윽고 위와 식도, 목구멍까지 떨려왔다. 안 돼. 참아. 절대로 안 돼. 지윤은 침을 연신 꼴깍 넘기며 기도하듯 두 손을 꽉 맞잡았다. 손톱을 세워 손가락 끝을 찔러도 보고,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기도 하며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주말 고속도로는 인내심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잘만 달리던 차는 어느 순간부터 느릿느릿 기어가더니 기어코 중간에는 멈춰 서다시피 했다. 친구들은 지윤의 상태를 눈치채고 걱정했으나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지윤은 차에서 뛰쳐나오다시피 했다. 평평한 땅바닥에 발을 내딛자 살 것 같았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속을 가라앉혔다. 약속을 잡을 때부터 각오한 일이긴 했으나, 매번 차를 탈 때마다 이러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오랜만에 따라나선 드라이브는 즐거운 기분전환을 제공하기보단 지독한 압박감과 고통을 주는 일일 뿐이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 걸까. 지윤은 멍한 머리를 흔들며 의문을 털어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바깥바람 내음을 맡을 수 있는 건 찰나에 불과했다. 가게는 입구에서부터 지그재그로 줄이 이어져 있었다. 감자빵을 박스 채로 사가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작은 가게는 완벽한 분업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박스로 포장된 감자빵이 가게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결제를 하고 박스를 날랐다. 가게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들 손에는 감자빵 박스가 2개씩 쥐어졌다. 감자빵 8박스를 트렁크에 싣고 인터넷에 좋다는 후기가 잔뜩 올라간 대형 카페를 찾아갔다. 지윤은 여기저기 실려 다니느라 하도 멀미에 시달려 카페에 도착했을 즈음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야 말았다. 한참 동안 멀미와 두통 둘 모두와 씨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작 카페에 도착해서도 뭘 했는지, 친구들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지윤은 멀미가 심했다. 어렸을 적엔 차 안에서 10여 분만 있어도 구역질과 두통이 밀려와 차만 타면 난리가 나서 가족들이 애를 먹곤 했다. 학생 때도 단체로 가는 소풍이나 수학여행이 항상 고역이었다. 멀미약을 먹어도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해 나중엔 차를 타면 무조건 빠른 시간 내에 잠에 들어야 했다. 맨 정신으로 버티는 건 할 짓이 아니었다. 멀미는 자동차뿐만이 아니라 택시, 버스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바퀴를 달고 달리는 교통수단은 전부 지윤에겐 고통스러운 기계 덩어리에 불과했다. 멀미로 인해 지윤은 멀리 이동하는 걸 유독 힘들어했다. 때문에 여행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뚜벅이로 지낸 세월이 길어 생활 반경도 좁았다.

현대사회에서 멀미가 심하다는 말은 단순히 자동차를 탈 때마다 컨디션이 나빠지고 몸이 아픈 걸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한정적인 이동수단으로 생활 반경에 제약이 생겨 종종 인간적, 사회적 교류활동에 어려움이 많았다. 친구들과 가족은 지윤을 최대한 이해하고 배려했으나 항상 도보와 전철로 갈 수 있는 역세권에서만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친구들은 하나둘씩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사면서 쉬는 날 한적한 교외에 있는 맛집과 카페를 가고 싶어 했다. 특히 지윤의 남자 친구는 데이트로 드라이브도 마음대로 못 간다며 종종 불만을 표출했다. 지윤은 그에게 미안해하면서도 선뜻 차를 타고 어디든 가보자는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드라이브를 갔다간 데이트는커녕 울렁이는 속을 붙잡고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조수석에서 짐짝처럼 실려 다닐 게 뻔했다. 만날 때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지윤은 그렇게 가는 데이트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멀미 같은 건 크게 느끼지도 않고 잘만 다니는데. 지윤은 차를 탈 때마다 각오를 다져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한숨이 나왔다. 왜 인간 중 일부는 이런 극심한 멀미에 시달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바닥에 닿는 게 두 발이 아니기 때문일까.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가는 길에 발을 스스로 내딛지 못하고 흔들리는 기계 덩어리에 몸뚱이가 실려 가기 때문일까. 그래서 이리도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것일까. 쇳덩어리는 기름과 가죽 냄새가 뒤섞여 항상 후각을 자극했다. 시각과 후각의 혼란은 한데 어우러져 머릿속을 쥐어짜 내는 두통과 금방이라도 장기가 바깥으로 흘러넘칠 것 같은 불쾌한 메스꺼움을 가져왔다. 인간의 생체적 특성이 진화의 산물이라면, 자신은 문명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진화 조건을 체득하는 게 실패한 개체인 걸까. 그래서 먼 길을 떠나는 게 이리도 힘든 걸까.

그녀에게 자동차란 최대한 피하고 싶은 존재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빠지려고 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바꾼 건 우연히 보게 된 인터넷 고민 상담 글이었다. 자신과 비슷하게 멀미에 시달려 힘들어하는 글에 단숨에 읽은 지윤은 댓글을 확인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너랑 놀자고 말해주는 게 어디야. 고마운 거지.’ 문장 하나가 그녀의 눈 들어왔다. 놀러 가자는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데도 그녀를 챙기며 만나자 불러주는 이가 있다는 건 그녀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는 증거일 터였다. 이번 여행도 처음 말이 나왔을 때 지윤은 순간 아득해졌다. 확실히 교외 지역으로 이동하는 여정은 부담스럽다. 저 어디쯤 가서 좋은 공기를 마셔보자는 제안을 들을 때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껏 그녀를 배려해 서울 시내에서만 모임을 이어나갔던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이만큼 그녀를 생각해주었으니 이번엔 그들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게 맞았다. ‘좋아, 감자빵 먹으러 가보자!’ 지윤은 방긋 웃으며 약속을 잡았다.


누군가에게 신경 쓰이는 존재가 되는 일이 얼마가 어려운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타인과 동승하는 여정엔 이해하고 배려하며 내려놓을 게 많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견뎌내는 것에 가까울 터다. 그를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관계란 어찌 보면 삶에서 맞닥뜨리는 몇 안 되는 기적이자 행운일지로 모른다. 지윤은 하루 동안 멀미에 시달리는 동안 땅바닥을 굴러다니는 시간을 참아내는 이유를 되뇌었다. 이 인고의 순간들은 결국 지윤 자신을 참아내는 것이었다. 지금의 여정을 인내해야 앞으로 갈 수 있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힘을 기르는 시간이었다.




드디어 당일치기 여행이 끝났다. 집으로 가는 길, 이대로 떠나기 아쉽다며 풍경을 즐기기 위해 국도를 타고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고속도로에서 길이 막혀 차에 갇혀있는 것보다 바닷가를 따라 바람도 쐬면서 돌아가는 게 멀미도 덜하지 않겠냐는 거였다. 멀미 때문에 지쳐있는 자신을 걱정하는 말에 지윤이 할 수 있는 말은 괜찮다는 답뿐이었다.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나 차가 달리자마자 멀미와 잔잔히 머리를 울리는 두통이 시작됐고 지윤은 묵묵히 손톱으로 손가락 끝을 파이도록 누르며 그 시간을 버텼다.

나와의 싸움에서 겨우 살아남은 지윤은 집에 도착해서야 한숨 돌렸다. 하루 종일 멀미에 시달려 피곤했지만 속이 울렁거리지 않으니 살만 했다. 샤워를 하고 짐 정리를 하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냉장고에 넣어둔 감자빵을 꺼냈다. 바스락 대며 비닐 포장을 벗기자 주먹 크기의 빵이 뽀얀 자태를 내보였다. 얼핏 보면 정말 알감자 같았다. 입맛을 다시며 전자레인지에 빵을 넣고 데우는 동안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카톡방에서는 대화가 한창이었다.

‘재미있었지?’

‘응, 진짜 재미있었어. 카페 사진 너무 예쁘게 나왔다. 완전 감동이야!’

‘감자빵 먹어본 사람? 진짜 맛있어. 한 박스 더 사 올걸.’

‘오, 그렇게 맛있어? 집에 와서 박스째로 냉장고 넣어놨는데 하나 먹어봐야겠다.’

지윤은 포슬포슬하게 익은 감자빵을 한입 베어 물면서 휴대폰 키보드를 톡톡 두드렸다.


‘감자빵 정말 맛있다. 춘천까지 갔다 온 보람이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