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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Newyorker Aug 11. 2020

아샤이가 지나간 다음날

뉴욕에서 폭풍이 지나가고 일상을 생각해 보다. 

폭풍이 지나간 다음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나무가 쓰러지고, 전기가 나가는 순간에도, 내 휴대전화의 전원이 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만 가득했다. 다행히, 아샤이가 지나가는 순간 이미 세 달 전에 깨진 우리 집 창문은 잘 견뎌 주었다. 비록 물이 새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잘 지켜준 창문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틀이 지나 만나본 바깥세상은 많은 것이 앱노멀(abnormal)을 보여 주었다.  어느 집은 창이 깨졌고, 3일째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으며, 누군가의 집은 전기가 들어왔지만, 오늘 또 전기가 나가버렸다. 빵가게는 냉장고가 작동하지 않아 빵을 만들 수 없었고, 남아 있는 빵도 버려야만 할 지경이었다. 신호등이 사라진 도로에는 중무장한 경찰의 수신호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이러한 시대를 야생화가 되어 간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게 우리의 노멀이라고 한다. 

코로나 19가 세계를 뒤덮은 작금의 상황에도 많은 시민들이 안전하게 집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남을 생각하는 인본주의가 되살아 난 것도, 물질적인 풍요로 인한 충분한 물자가 불러들인 안정도 아닌 인터넷이었다. 그리고 그 인터넷이 편하게 일상이 될 수 있었던 스마트폰은 모든 가족이 집안에 웅크리고 있는 순간에도 각기 다른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 인터넷이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 버렸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9월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을 위해 적당한 노트북을 알아보는 일과 3살짜리 딸을 위한 E-북을 구매하는 나를 보면서 이해하기 힘든 아이러니를 느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나와 내 아내는 아이에게 스크린 타임을 줄여야 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과연 내가 알고 있던 노멀은 무엇이었을까? 10년 전 처음 미국 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 보겠다고 계획을 세웠을 때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늘 쥐가 들끓는 뉴욕의 지하철이나 길 한편에 누워 있는 노숙자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동시에 내가 살던 플톤 역은 2001년 9/11 사태 이후 16년 동안의 정비 작업을 통해 2018년 완전히 새로운 미래에서나 볼법한 지하철역으로 탈바꿈되었다. 동시에 바로 옆 렉터 스트리트 역은 비가 많이 오면 침수되고 쓰레기 냄새가 여전히 진동하는 지하철 역으로 남아 있다. 

뉴욕의 변화는 참 더디다. 그리고 그 더딘다는 걸 느낄 때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연애시절, 싼값에 다녔던 세인트 마크 플레이스도 여전히 절반은 그대로 나머지 절반은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고 있다. 우리가 첫 아이를 가지고 살았던 배터리 파크 시티는 바뀌지 않은 듯,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 둘째 아이의 생일을 맞이해 하루를 지냈던 그곳은, 우리가 없는 동안 공원도 생기고, 물고기 모양 회전목마도 생기면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변화는 참 유기적이다. 과거와 현재가 언제든지 오버랩된다. 그래서 100년 전 건물도 더 오래된 건물도 외관을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머물 수 있고, 변화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천천히 다가와 이제 다 변화를 맞이 했을 때 비로소 '아, 뉴 노멀이 완성되었구나' 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본 한국은 5년, 10년이 완전히 다른 곳이다. 

15년 전 강북에 있는 대학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나 역시 종로는 영화관과 즐길거리,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는 중요한 장소였다. 대학 생활을 마무리할 때 즈음에는 멀티 플렉스 극장이 장악한 시장 사이에 몇몇 남았던 단편 극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이 모든 변화에 퇴색한 그런 곳이 되어 있었다. 

반대로 새벽의 젊음을 유지하고, 지방에서 온 나에게 서울이다 라는 생각을 갖게 했던 동대문은 이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라는 거대한 우주선이 내려앉아 버렸고, 그 주변을 우리들 시장이 아닌 오피스텔과 대형 쇼핑몰이 장악해 버렸다. 

물론 왕십리역이나, 청량리역, 그리고 용산역은 그야말로 1,2년 만에 상전벽해를 만들어 냈으며, 수서는 이제는 변두리가 아닌 강남의 주요 교통 요지가 되어가고 있는 것 역시 중요한 변화 이리라. 

난 뉴 노멀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시대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단절의 모습이 아닌 유기적인 변화의 모습이었다. 적어도 미국인들에게 변화는 그러한 것이리라. 그래서 그 변화의 시절을 살아온 누군가가 '우리가 바로 이런 변화를 살아왔어'라고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때 그때 우리는 한 세대를 살아 냈노라 이야 가 한다. 

그러나 코로나는 지금 이들에게 한국인과 같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1년 아니, 지난 6개월 동안 이들에게는 너무나 많은 변화가 요구되어 왔다. 

6피트, 입 가리개, 그리고 온라인. 변화에 민감한 극소수를 제외하면 이들의 생활 방식이 옛것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이유는 너무나 명확하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속도를 원하고 있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그들을 기다려줄 만큼의 넓은 아량은 없다. 

505만 명이 똑같은 병에 걸리고, 16만 2천 명이 같은 병으로 사망을 하는 동안에도 이들은 나만의 속도를 지켜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 무리에 물들어 가고 있음을 경계한다. 

오늘 내 아이가 콧물이 난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기에, 그리고 누군가가 나와 내 가족에게 "go away"라고 말하는 것을 그냥 두고만 볼 수 없기에 나는 지금도 니트릴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하고 고작 집에서 20 발자국밖에 있는 공용 쓰레기장에 쓰레기를 버리러 간다. 

그리고 내 아이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내 아이 들을 위해 손세정제를 주머니 가득 넣고 마스크를 하고 나간다. 이제 나에겐 뉴 노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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