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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민트 May 03. 2022

지켜보는 눈이 하나 더 있었다

헬스장 탐구 소설

푸하하하.


남자에게 노랑 올림머리 얘길 했더니.

괜히 예민하게 군다며 ‘친구를 만들어 이 사람아!’ 한다.


참내. 그런 풋내 나는 애랑 무슨 친구.


남자와 나는 완전 정반대라

그는 길에서 만난 누구와도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캔맥주를 즐길 수 있지만

나는 같은 아파트에서 날마다 보는 이웃과도 어색하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웬 동네 아줌마들이 외간 남정네에게 살랑살랑 먼저 인사를 건네는지.

나와는 몇 날 며칠 어디에서 마주쳐도 데면데면한 그들이. 웃겨.


다행히 택배 기사와 고층 사는 아저씨도 남자에게 똑같이 인사해서 조용히 지나갔다.


남자는 내 유일한 친구. 이 여자 저 여자 친한 척하면 썩 유쾌하지 않다.



시간이 되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방을 챙겨 헬스장으로 향했다.


근력 운동하면서 무거운 걸 들고 지고 해서 그런지 손이 슬슬 상한다. 아프기도 하지만 이대로 두면 엄청 숭한 굳은살이 손바닥에 콕콕 박일 것 같아 헬스 장갑을 장만했다. 가장 싼 거 말고 조금 비싼 거. 꽤 멋진데? 장갑을 끼니 '세미 체육인'이 된 거 같다.   


"금나미 씨인가요?"

"네. 그런데요."


"헬스장 OT(orientation)겸 무료 PT(personal training) 아직 안 하셨던데 날짜 잡아드릴까요?"

"....."


키 크고 얼굴 하얀 남자가 불러 세운다. 트레이너란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겠어서 이어폰도 끄고 러닝 머신도 멈췄다.


"제가 그동안 지켜봤는데 부상당할 수 있는 위험한 자세로 운동하고 계셔서요. 교정도 하고 도움이 될 만한 동작도 알려드릴게요."




지켜봤다고? 흠칫.


내가 혼자 우당탕 쿵쾅했던 걸 다 봤단 말이야? 그걸 다 보고 있었다니 부끄러우면서도... 야속하다. 보기만 하고 있었다는 게. 그렇게 위험하면 빨리 와서 알려줄 것이지.  


그리고 좀 소름 끼친다.


“러닝 자전거 먼저 하시고, 스쿼트류 주로 하시잖아요. 그건 지금 단계에서 하는 게 아니에요.”


그는 내가 유산소 1시간, 무산소 40 분하는 루틴을 정확히 꿰고 있었다.

완전히 거꾸로 운동하고 있다면서 내가 며칠 전 본 기사 내용을 그대로 읊었다.


뭐. 듣자 하니 해볼 만하다.

어차피 무료라 나쁠 것도 없고. 하지만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PT는 1:1로 진행하다 보니 친밀한 사람에게만 허용된 거리에 트레이너가 들어온다.

잘 모르는 타인은 팔 간격보다는 떨어져서 대해야 편한데, 저 트레이너라는 자가 내 곁에 꼭 붙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영 께름칙하다. 자세 잡아준다면서 더듬는 변태가 없으리라는 법도 없고, 가학적 훈련을 일삼으며 쾌감을 느끼는 미친놈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느냐고!


PT 하는 사람들 중에 느긋하게 운동하는 사람 하나 없다. 여기저기 아아아악 괴성이 들려오는 곳은 여지없이 괴물 같은 트레이너가 함께 하고 있다. 그 아아아악은 그냥 내지르는 소리가 아니다. 사람이 막다른 곳에 이르렀을 때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터져 나오는 인간 본연의 원초적인 울부짖음이다. 이런 괴성은 시공을 가리지 않고 터지는 방귀나 주책없이 흐르는 군침과도 유사성이 있다.  


싫다.


그래도 내가 잘못된 방법으로 운동하고 있다니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당장이라도 받아야 할 것만 같다.


"가능한 가장 빠른 날짜로 잡아주세요."


나도 모르게 불쑥.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어쩌려고 그래~ 어쩌려고 그래~ 내 몸이 바들바들 떠는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말은 이미 나갔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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