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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민트 May 02. 2022

누군가 나를 견제하고 있다

헬스장 탐구 소설

내 몸과 감격스러운 상봉을 마치고 이 주일쯤 되었을까.


근력 운동 30분, 유산소 운동 40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트레칭을 하려는데  

시선을 느꼈다. 저 노랑 올림머리 여자. 며칠 전부터 거슬린다.


내가 가는 곳마다 있다.

더 웃긴 건 노려보고 있다가, 안경을 쓰지 않아 눈빛이 어땠는지까지는 모르지만, 내가 자리에서 뜨는 순간 득달같이, 방금 내가 쓴 기구를 기다렸다는 듯이 쓴다. 중량을 두 배 세 배 올려서.


스트레칭하면서 내가 다리를 30도쯤 들면 근처에서 바벨 들다가도 맥락 없이 다리를 90도쯤 들어 보인다. 마치 운동 능력을 과시하는 것처럼.


옷은 또 어떤가. 전날 내가 베이지 티에 검정 레깅스 입고 오면 다음날 혹은 다다음날

어김없이 베이지 티에 검정 레깅스다.


우연히 루틴이 겹친 걸까. 취향이 비슷한 것뿐인데 혼자 오해하는 걸까.

처음에는 무시해보려 했지만 갈수록 정도가 심해져 모른 척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내 주변을 기웃대며, 더욱 과감하게 머리를 꺾어, 내 레그 컬 중량 숫자 확인하는 듯한 '모션'에 폭발했다. 눈 내리깔고 다리만 보는 척하던 내가 순식간에 눈을 훽 돌려 오른쪽 45도 각도에 위치한 그녀, 노랑 올림머리를 ‘씨게’ 아주 씨게 흘겼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가 손톱 세우고 머리끄덩이 뜯을 기세로. 그녀는 잠시 주춤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헬스장에서 눈싸움이라니. 쌈박질하러 온 것도 아니고 이게 뭐야.

더는 불필요한 신경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시간대를 변경하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이런 애가 한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군가 스산한 기운을 뿜으며 다가오기에 ‘아니, 노랑 올림머리가 이 시간에?’하고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다른 애다.


오후 1시에는 히피 파마머리가, 4시에는 단발 크롭탑이 나를 의식하는 듯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주위에서 알짱대고 있었다. 러닝 머신에도, 스쿼트 기구에도, 스트레칭 매트와 휴게실, 화장실, 심지어 정수기 앞에서도.  

 

어딜 가도 언제 가도 또 다른 노랑 올림머리가 '이 구역의 여왕벌은 나야' 주장하듯 온 신경을 불살라 견제하고 있었다. 그들은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으로, 곱지 않은 사인으로 도발하며 원치 않는 경쟁을 걸어왔다. 사물함 문은 대체 왜 쾅 여닫고, 자기 신발은 왜 바닥에 퍽 소리 나게 패대기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게 나여서가 아니라 누가 와도 그들은 거기서 그러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 나도 경쟁에 초연한 사람은 아니라 가끔 남 운동하는 걸 힐끔이기도 한다.


‘나보다 많이 드나?’ 혹은 ‘쟤는 어떻게 운동하나’ 궁금해서 슬쩍 쳐다보고 만다.

그런 경쟁적인 분위기가 운동 강도를 높이는데 적잖이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정도가 지나친 감이 있지만, 노랑 올림머리가 전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여하튼 난 남자가 더 편하다. 보통 남자들은 운동하면서 여자와 경쟁할 생각은 하지 않으니까 옆에 있어도 거북하지 않다는 의미다.


헬스장에 죄다 시커먼 남자들뿐이라고 위압감 느끼고 긴장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웬만하면, 쓸데없는 경쟁의식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남자들 옆에서 맘 편하게 운동한다.


*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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