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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민트 May 10. 2022

세상에 공짜는 없다

헬스장 탐구 소설

두근두근. 약속했던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대체 PT라는 게 어떤 걸까 궁금했었다.


한 번 해보고 괜찮으면 무리해서라도 등록할 요량이었다.


어쨌든 수업이니 학생이 된 기분으로다가

노랑 티에 핑크 야구모자를 눌러썼다.


거울 앞에 빙글빙글 모자를 쓰고 매무새를 확인하는데

남자가 못마땅한지 잔뜩 부은 얼굴로 흘겨보며 말한다. 남자 트레이너야?


응.


“받아볼 만하지. 그런데 여자 몸은 여자가 알아. 남자가 잘 모르는 그런 거 있잖아. 여자 트레이너가 더 잘 알고 꼼꼼하게 알려줄 거야. 여자한테 받으래도.”  또 시작이다.


헬스장 등록할 때부터 PT얘기가 나오면 남자는 ‘여자 트레이너’한테 한 번 받아보라고 했었다. 자기가 봤는데 잘하더라고. 그의 얘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남자 트레이너들은 죄다 더듬는 변태다.


나도 동성인 여자가 편하지만

그가 나한테 적극적으로 자세 잡아 주겠다며 접근했는데, 굳이 헬스장에 한 명뿐인 여자 트레이너에게 받겠다고 거절하는 것도 좀 촌스럽다. 그건 트레이너라는 직업인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그들은 직업인으로서 본인의 직무에 충실하여 상대의 신체에 손을 대는 건데, 그렇다고 믿는데, 잠재적 변태로 간주하고 피하는 게 예의는 아니니까.




예약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러닝머신에서 쿵쿵 쿵쿵 뛰고 있는데 누군가 날 멈춰 세운다. 트레이너다.


먼저, 그는 나를 스쿼트 구역으로 이끌었다. 엉덩이 쭉 빼는 동작이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던데. 씁.


“회원님은 머신 주로 쓰던데 지금 그거 할 때가 아니에요.”

다리를 어깨너비보다 넓게 벌리고 두 손을 모은 채 위에서 아래로 서서히 앉았다 서는 동작을 반복했다. 엉덩이는 '오리궁댕이'를 만들어야 한다. 스쿼트는 자기 체중을 이용하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할 수 있는 훌륭한 다리 근육 강화 운동이라고 한다.


"거울을 똑바로 보세요. 자기 몸을 보라고요."

그렇다. 난 거울 앞에 서고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외면하고 있었다. 드레스코드(?)에 맞게 입고도 대형 거울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내 몸을 보기 어려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괴로웠다. 신통한 레깅스 힘으로 배는 딱 붙었는데 다리는 생각보다 굵다.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이다. 레깅스만 안 입었어도 나만 알았을 텐데. 그런데.  


"몇 번 더 하실래요?"


세 번만 하죠. 그는 황당하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대로 넘어갔다. 휴. 체벌받는 기분이다. 어떻게 대충 끝내고 도망치듯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 상체 운동 구역으로 이동했다.

그는 내가 주로 사용하는 기구 몇 가지에 나를 앉히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부위에 힘을 주라고 했다. 손으로 짚어주며, '견갑을 조이고 광배근을 수축시키라'는데. 별 감각이 없다. 그냥 전부 등 아닌가?    


와이드 풀다운(torque wide pulldown rear)

가슴 내밀고 허리 펴고 복근에 힘을 준다. 팔이 아닌 등 근육을 사용하도록 유의한다.  

팔을 끝까지 내려야 광배근을 자극할 수 있다.  

*광배근 : 엉덩뼈와 아래쪽 척추뼈에서 넓게 일어나 점점 좁아지며 위팔뼈에 붙은 등에 있는 근육 <표준국어대사전>


랫 풀다운(lat pulldown)

견갑골 조이고 바가 윗가슴선까지 내려오도록 한다. 허리가 아닌 복근에 힘이 들어가도록 신경 쓴다.

*견갑골 : 척추동물의 팔뼈와 몸통을 연결하는, 등의 위쪽에 있는 한 쌍의 뼈. <표준국어대사전>


시티드 로우(seated row)

어깨 접고 견갑골 접은 상태에서 손잡이를 당긴다. 승모의 발달을 방지하기 위해, 팔꿈치를 지나치게 당기지 말고 아래로 내려 광배근을 수축한다.


복잡한 얘기 같지만 사실 '승모근 자라지 않게 주의하며 등 근육을 단련하라'는 거다.

물론 복근에 힘주고.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좋았다.

 



 “금나미 회원님, 이제 상담 데스크로 가시죠.”


 회원카드에 신상 정보를 적어내려 갔다. 생년월일은 대체 왜 있는 건지. 아무튼 너무도 생소한 그 숫자 - 멋쩍어하며 40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인바디 기기에 올라가 양팔을 좌우로 벌리고 섰다.

검사지를 보더니 근육이 많을수록 좋은 거란다. 다리 근육은 평균 이상이지만 내장지방은 관리 좀 해야 한단다. 이건 뭐 굳이 검사 안 해도 아는 내용이다.


그리고 문제의 그 발언.


“회원님은 거북목이고요. 등이 심하게 굽었어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심해요. 가만히 뒀다가는 꼬부랑 할머니처럼 될 거예요.”


나이 40인 것도 아직 소화가 안되는데 꼬부랑 할머니를 언급하다니. 얼굴이 화끈거렸. 챙겨 입은 노랑 티셔츠 분홍 모자 머쓱하게.


"선천적으로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몸인데다가,

지금 운동이 아니라 노동을 하고 있어요. 뭘 알고 하셔야죠. 몸 상하게.”


이제 막 폼나는 헬스장갑과 함께 '세미 체육인'으로 거듭난 내게, 자신감 뿜뿜 하던 내게 감히. 우우우움.

그때 분명 내 얼굴이 울그락붉으락했을 거다. 눈치가 있었으면 그쯤 해서 그만뒀을 텐데. 고작 이십 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애송이 어깨 깡패 놈은 속도 모르고 폭격을 이어갔다.


“기본 6개월에 240만 원. 주 2회예요. 제가 식단부터 생활습관까지 다 관리해드릴 거예요.”

“제 회원님들은 한 번 등록하고 나면 단 한 분도 후회하지 않았어요.”

“건강을 위해 이 정도는 투자하셔야죠.”   


그 길로 바이 바이. 속으로 말했다.

 ‘이 누나가 너보다는 하나 더 아는 게 있어.

영업을 하려거든 먼저 기분을 좋게 해야 해. 사람 불쾌하게 해 놓고 뭘 팔아먹겠다고.‘


집에 오자마자 모자부터 내던졌다.

그나저나 저 자식과 동선 겹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동안 지켜봤다고 한 것도 불쾌하고 다시 마주치면 화가 치밀어 올라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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