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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민트 May 11. 2022

나는 대체 누구와 싸웠던 걸까

헬스장 탐구 소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마라 소스 팍팍 풀어 시뻘건 마라탕 끓여 봐도

퍼런 쇠 수세미 꺼내 화장실 바닥 박박 문질러도


그 거만하기 짝이 없는 어깨 깡패 멀건 낯이 지워지지 않는다.


‘나보고 거북목이래. 어이없어.’




맞습니다. 저는 노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알아볼 만큼 심하게 굽은 내 몸이 좋습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되더라도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평생 내 몸이 원하는 노동을 즐기고자 합니다.
등 굽은 자가 노동하면 꼴 보기 싫을지 모르지만
남에게 피해 입히는 건 아니니까요.
  

화를 삭일 겸 몇 자 끄적이다 그대로 전송 버튼을 눌러버렸다.  

메시지라고 하지만 사실 나에게 하는 다짐과 다름없었다.

굴욕적인 상담으로 의기소침한 내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기죽지 말고 내게 좋은 일을 계속하라고.


하지만 해놓고 보니

불편해서 어디 여기 계속 다니겠어? 싶었다.


오다가다 마주칠 게 뻔한데. 게다가 앞으로 ‘그래 얼마나 잘하나 보자’ 아니꼬운 눈길을 쏘아대겠지. 운동할 때 전후좌우 대각선 어디서건. 윽. 끔찍하다.  




자주 쓰던 기구인데도

괜히 주위를 한 번 쓱 둘러보고 앉는다.


그놈이 알려준 로 운동하면 왠지 자존심 상하는 일 같아

원래 하던 대로 ‘노동’하다가 그 자식이 없는 게 확실할 때 교정한 자세를 실습해봤다. 흠. 나쁘지 않네.  


어색한 건 일주일뿐.

이후에는 서로 신경 안 쓴다. 그 호랑말코 같은 놈이 뭐 잘한 게 있다고 본체만체 인사하지 않는 게 괘씸하지만.  



‘노동하겠다’ 큰소리쳤으나 사실 몸이 너무 피곤했다.

열정으로 들이박듯 운동하니 비타민이며 마그네슘, 그리고 나중에는 크레아틴(creatine), BCAA 등 남자의 운동 보조제마저 동원하지 않고는 컨디션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크레아틴은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어 어느새 운동 필수품이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별 효능을 느끼지 못했다.  

*크레아틴 : 근육 운동의 에너지를 만드는 데 필요한 화합물. 아미노산의 하나로 대부분 크레아틴 인산의 형태로 존재한다. 표준국어대사전


고기도 먹고 과일도 먹었다.

이전에는 다이어트한다고 음식부터 줄였는데, 이젠 운동하겠다고 챙겨 먹었다. 뱃살 생각해서 많이 먹진 않았지만, 기운 빠져서 운동 못할까 봐 열심히 먹었다.


물론 아무 거나 먹지 않았다.

내가 먹는 게 내 몸이 된다.

영양가 없고, 쓸데없이 살만 찌우는 음식 대신,    

한 끼를 먹어도 뼈와 근육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골랐다.


그렇게 운동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갔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 선천적으로 운동할 몸 아니면 후천적으로 만들면 되지!


운동하는 나는 군사였고 레깅스는 전투복이었다.

나는 대체 누구와 싸웠던 걸까. 짧게는 굴욕적인 상담, 길게는 날 돌보지 않던 시간들, 깊게는 게으름, 얇게는 요사스러운 여왕벌 레깅스들 아니면 뱃살?


내 배에 각인된 자랑스러운 왕자 복근을 상상하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무리한 운동을 이어갔다. 일요일은 등산으로 여가와 운동량을 동시에 충족하고자 했다.  


그때는 몰랐다. 내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

운동에도 권태기가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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