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지금은 골격이 큰 게 장점이다. 조금만 운동해도 근육이 잘 붙는다. 그저 걸었을 뿐인데 - 알록달록 치장한 여왕벌들을 순식간에 잔챙이 츄파춥스로 만드는- 공간을 압도하는 위용 있는 큰 뼈대가 맘에 든다.
엉덩이와 허벅지로 이어지는 굵은 다리가 보기 좋다.
레깅스를 입어도 ‘섹시하려고 하는구나’가 아니라
‘운동하네?’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
레깅스 차림이 민망하다는 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섹시’하려는 의도가 드러난 때문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체육인의 레깅스는 전투복에 가깝다. 갈라진 근육 사이사이 난잡한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 근육을 형성한 치열한 시간이 자연스레 연상될 뿐. 존경심마저 든다.
헬스장에 오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연령대를 떠나서, 옷차림을 보면 왜 왔는지 알 것 같다.
내가 본 헬스장은 기본적으로 나르시시스트(narcissist)들의 전당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온다. 여기서 운동은 자기 자신을 아끼는 방식이다.
다른 사람 눈을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
90% 이상은 자기 운동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가 날 쳐다보는 건 내 레깅스보다는 그 기구가 탐나서일 가능성이 크다. 여기 여자들은 죄다 레깅스니까.
물론 자기애를 넘어 유혹을 시도하는 이도 있다. 아슬아슬하게 아찔하게. 움직일 때마다 특정 부위가 노출되는 의상을 입고 운동하는 척한다. 하늘하늘하고 촉촉해서 무슨 동작인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신체 일부가 들어갔다 나왔다 공사다망한 와중에, 온몸으로 뿜어내는 천박한 메시지를 부정하듯, 운동에 꽤나 심취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부채만 안 들었지 누가 봐도 엄정화의 <초대> 안무를 하고 있다. 정말 운동에 집중하려 했다면 그런 걸리적거리는 옷을 입을 수 없다. 시선을 끌기 위한 의도라면 모를까.
자기 과시보다는 애정 결핍인가 싶어 딱하다. 저거 보고 꼬이는 애도 딱 그 수준일 텐데.
내가 흠모하는 말다리 언니들.
나보다 운동 잘하면 다 언니인데, 정말 가끔 힐끔인다.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운동 연배가 느껴지는 튼실한 다리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고개가 숙여진다.
힙 쓰러스트를 해도 전혀 민망하지 않다. 이 망측한 기구를 압도하는 걸로 모자라 와작와작 씹어 먹는다. 우리 가슴속 충동하고 미혹하는 음란 마귀를 가차 없이 깨부순다. 진정한 여왕벌님이시다!
유튜브에서도 언니들을 만날 수 있다.
기구 사용법부터 운동법, 운동순서, 음식까지 운동에 대한 모든 걸 알려준다.
동영상을 찾아보다 역시나 내 식단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말 근육 만든답시고 열심히 먹은 게, 특히 운동하러 가기 전 기운 나라고 더 먹은 게 오히려 근육 형성을 방해했다. 운동할 때 나오는 호르몬과 음식 먹고 나오는 호르몬이 상충되니, 공복 상태에서 운동하는 게 가장 효과적으로 근육을 만드는 방법이란다.
최소 운동 세 시간 전에는 식사를 마쳐야 한다. 그리고 근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운동 후 한 시간 안에 식사해야 한다.
아뿔싸. 낭패감이 몰려왔다. 완전 반대로 하고 있었으니.
그러나 내 몸은 과학이었다. 효율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먹고 운동해서 그만한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교정하면 된다. 쉽다. 좋은 운동과 식단으로 역시 과학적인 좋은 결과를 얻으리라 마음을 다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