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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민트 Jun 20. 2022

혐오 조장하는 전문가들

싸워야 할 대상


운이 없긴 하다.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랑을 연기하는 나르씨(나르시시스트)에게 사랑을 배우고자 했다니.


그런데 그 역시 안됐다. 내가 누군가의 먹잇감이 될 만큼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거든. 사랑은 모르지만 싸우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한마디로 잘못 걸린 거다.


친정 부모님이 걱정했었다.

처음 소개하는 자리에서 ‘아이고. 우리 애가 성질이...호호호호. 화가 나면... 하하하하... 서로 감싸주고 잘 맞춰서 살아.’ 섭섭한 기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쾌청한 얼굴에 알듯 말듯 연민이 일렁였다. 그가 불쌍하다고까지 했으니 뭐.




쌈닭, 지랄탄, 가스통, 광녀, 싸이코, 킹콩, 헐크.. 내 주위에서 나를 가리켜 쓰던 말이다.

그가 나를 부당하게 압박할 때면 나도 모르게 오랫동안 쓰지 않던 ‘이빨’이 나왔다.  


어쩌면 나도 한때 히스테리성 인격장애, 분노조절장애, 해리 장애, 섭식 장애 등을 앓고 있었는지 모른다. 비록 그 때는 모르고 넘어갔지만.


사실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멀쩡한 사람 하나 없다.




흔히 ‘총성 없는 전쟁’이라 하는 무한 경쟁 시대를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 중 부상 없고 상처 없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때때로 잠시 지나가는 감기를 앓기도 하고 

비염 변비 등 만성적인 질환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정신세계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겠지.


절뚝이는 사람도 있고 부축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살다 보면 나도 넘어져서 삐끗하고 도움을 받아 일어설 때도 있다.




어떻게 정신 질환이 있다고 손절하란 말을 그렇게 큰소리로 마이크 잡고 공공연하게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자꾸 숨고 속이고 인정하지 않는다. 치료하러 나오지 않으니 암암리에 피해자만 늘어간다. 어쩌면 알약 하나면 해결될 일을 돌이킬 수 없는 파괴적인 결과로 나타나기까지 키우는 건 혐오 조장하는 ‘전문가’들 아닌가.


그들은 치료자가 아니다. 오로지 좋아요와 구독, 인기와 조회수에 집착하는, 또 다른 병적 스펙트럼에 묶인 변태들이다.


그래서 전문가란 이들이 하는 말을 참고할 뿐 크게 믿지는 않는다.




무슨 장애라 하는 것도 사실 정신분석 학계 ‘전문가’들이 자기들 연구 편의상 분류해놓은 거지. 그게  주변 '환자'를 색출하여 '병자'라 낙인찍고, '피하라'는 의미의 좌표 같은 건 아닐 .


정신 의학에 대한 관심이 늘고 정보를 공유하는 건 좋지만

사람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아픈 사람을 배척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건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모르니까 무서운 거지 알면 두렵지 않다.

내가 좀 더 공부해서 알면 그 지식으로 돕고 살리는데 쓰는 게 모두에게 이롭지 않을까. 자꾸 사회를, 세상을 더 좁고 불안하고 분열하는 곳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기보다는.


내가 약한 거 같지만 다른 면에서는 강할 수 있다.

약점이 어떤 분야에서는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 병자가 살 길을 열어주면 그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세상에 보탬이 될 수 있다.

살 길 열어주는 게 전문가가 할 일이다. 재생 불능 쓰레기라고 덮어놓고 매장시키는 게 아니라. 그러나 그런 전문가가 없으면 내가 하면 된다.

내가 나 자신조차 감당할 능력이 없어 보이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구원이자 희망일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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