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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민트 Jun 18. 2022

나르시시스트 사랑하기

과학자의 탄생


그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걸 알았다.

백이면 백 모든 이들이 그를 멀리해야 한다고 다.



나르시시스트, 즉 자기애성 인격장애인은 그냥 자신을 유별나게 아끼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인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다.

사랑을 연기할 줄만 알지 진정으로 사랑할 줄 모르며, 사랑의 이름으로 질투하고 거짓말하고 타인의 삶과 영혼을 파괴한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우리가 아는 그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지배하에 둘 수 있는 것에 대한 만족감에 가깝다. 그와 함께 있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씁쓸하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날 사랑하는 사람이 가짜였다니.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세간의 설명이 틀린 말이 아니고 딱히 부정할 수도 없으니 또한 참담하다.




결혼 후 그는 완전히 다른 인격이 되었다.


그냥 속았다고 생각했다. 흔히들 하듯이.

다들 남자는 애 같다고 하니까 그도 그러려니 했다. 


이기적인 거 알지만, 황당할 만큼 이기적이지만 아이의 특성 중 하나니까. 하고 넘겼다.


그런데 그게 정신질환이었다.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내 마음을 알아주던 눈물 많던 그 이, 영혼의 단짝은 사라지고


지금 난 혼자다.

함께 있으나 혼자다. 그는 친구라기보다 내 위에 군림하는 왕이 되려 한다. 주는 건 없으면서 요구하는 게 많다. 난 나라는 존재로 충분하지 않은, 아내라는 역할로 내 가치를 끊임없이 증해내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에게 아내란, 요리사, 가정부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키워줄 사람.


사랑의 대상이 아닌 착취의 대상. 그는 화초 가꿀 줄 만 아내를 그토록 성껏 돌보지는 않는다. 아내는 화초보다도 못하다.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아니, 잠시 내 판단력이 흐렸다.

그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내 단 하나뿐인 소울메이트는 정신질환자이며

내 대단한 로맨스는 한갓 그가 꾸며댄 연극에 불과했다.


'넌 아름다워'

'넌 소중한 사람이야'

'네가 행복하니 나도 좋아'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현실이 힘들어도 한 때 아름다웠던 기억으로 버틸 수 있었는데.


그 모든 사랑의 속삭임은 간교한 연기였고

세상 행복했던 그 여자는 알고 보니 세상 불쌍한 희생였다.




그럼 이제 내 결정만 남았다. 같이 살 것인가 말 것인가. 계속할 것인가 멈출 것인가.


유명한 유튜버 심리상담가,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미 결론을 내렸다.


떠나라. 할 수 있는 한 멀리해라.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필요한 말만 짧게 해라   부부가 어떻게 이러고 한 집에서 사나. 사실상 이혼이지.


어쨌든 그렇게 대처하는 게 최선이라고 유튜버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그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단다.


사랑이 뭔지 모르고 사랑할 능력이 없는 사람.


그들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 하나의 결론으로 몰아간다. 행복하려면 나르시시스트를 떠나한다고.




그래서 그를 떠나면 행복할까.

확신할 수 없다.


나 역시 장애가 있는 사람이니.


사랑이 뭔지 모르는, 사랑할 능력이 없는 장애인인 건 나도 매한가지다. 


어차피 행복해야 한다는 욕구가 없었다.

그저 사랑을 배우고 싶었다.


행복이 아니라

사랑이 목표였다.


행복이 우선순위가 아니다.

사랑을 모르고 행복하기란 불가능하다.




받는 사랑만 사랑일까

주는 사랑도 사랑이다.


받는 사랑은 어려워졌지만

주는 사랑은 내 의지로 가능하다. 물론 이게 사랑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쪽 신장이라도 있으

살 수 있듯

반쪽이라도 기능하

생존할 수 있다.


나라도 살아있으면

사랑은 사라진 게 아니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랑은 죽지 않는다.


다만 내가 버티고 붙들고 의지하는 이것이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비록 원하고 상상하는 모습은 아닐지라도

어쩌면 지금이 더 큰 사랑의 실체에 다가가는- 탐험 여정의 가장 중요한 단계인지도 모른다.


탈주하는 건 공부를 하다 마는 것과 다름없다. 여기서 그만두면, 분명 다른 데서 또 이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정확히 내가 막힌 그 지점에서 다시 끙끙대며 씨름하겠지.




그래서 난 그를 탐구하기로 했다.


실패할 수도 성공할 수도 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도망가지 말고

세상 하나뿐인 나르시시스트를 사랑하기로 했다.


사랑이 뭔지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은 이것뿐이다.


공부하고 탐구하기. 


내가 그렇게 피해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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