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거셌다.
푸우와 우산 쓰고 가다가 몇 번을
우산이 뒤집혀 애 먹었는지 모른다.
난 그래도 요령이 있어 바람 불면 우산을 이리저리 돌려 부러지지는 않는데
우산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푸우는 바람이 올 때마다
어쩔 줄 몰라하며 휘청이다 그만 우산을 부러뜨리고 말았다.
부러진 살 끝이 날카로워 하마터면 다칠 뻔했다.
'바람 미워!'
잔뜩 뿔이 난 푸우에게 뭐라 위로할 말이 없었다.
그저 '바람과 싸우지 말고 춤추려고 해 봐'했을 뿐이다.
작은 바람이야 우산 꼭 붙들고 다니면 그만이지만
큰 바람이 오면 유연하게 대응할 줄 알아야 한다.
우산으로 강한 바람에 맞서려 해서는 안된다.
가느다란 우산살이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거센 비바람을 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타고 살짝살짝 움직인다.
바람 세기와 형태에 따라 빙글빙글 돌아야 할 때도 있다.
혹 우산이 뒤집히더라도 몸을 돌려 바람을 역이용하면 형태는 곧 돌아온다.
'사람이 휠 줄도 알아야지.'
무슨 맥락에서, 왜 그 말이 나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오직 그 메시지와 선생님 표정만 남아있다.
순간 역정 내듯 말씀하셔서 가슴에 꽤 오래 남아있었는데, 지금 보면 '사랑'이었다.
눈에 보이는 걸 그냥 속으로 삭이지 않고 입술을 열어 말해주셨다. 그것도 그냥 흘려듣지 못하게 화난 건가 싶을 만큼 강한 어조로 힘주어서. 그러니 지금도 잊지 않는다.
장마철 비바람에 흔들리는 우산을 볼 때마다 생각난다.
'내가 또 쓸데없이 뻗대고 있는 건 아닌가.'
'너무 각을 세우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본다.
비바람 부는 날.
더는 내게 호통쳐줄 선생님은 없지만
문득 고개 돌리다 떠오르는 메시지가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은 만물에 서려있다.
내가 혼자라고 느낄 때조차.
휠 것인가 부러질 것인가.
강한 비바람 앞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둘 중에 하나다. 휘거나 부러지거나.
아무리 요령이 없다 해도
어리석게 비바람에 우산이 부러지도록 두는 이는 없을 것이다.
휠 때 휘더라도
버틸 때까지는 버티겠다는 사람이 있을는지 몰라도,
하지만 그 누구도
'휘느니 부러지겠다'고 버티지는 말았으면.
당신은 우산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존재이니
빙글빙글 수백 번 길에서 춤추더라도
끝내 부러지지 않기를 바란다
강한 것에 꼭 완력으로만 맞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아하게. 유쾌하게. 명랑하게 대응하는 것도 그 이상 강력한 방법이다.
삶이 내내 버티고 견디고 이겨야 하는 나날의 연속이라 해도 '항상 긴장하고 경계하고 찌푸려야 하는 건 아니'라고
'춤추며 즐기며 가볍게 흘려보낼 수도 있는 거'라고
모든 걸 품에 한껏 안고 다투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장마는 한 철'이라고.
우산이 춤추며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