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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민트 Jul 20. 2022

빵 만드는 새벽

노트북이 돌아왔어요

브런치를 켰을 때

탁 떠오르는 글감이 있었어요. 그리고 바로 다른 큰 제목에 눈길을 뺏겼는데 그리고 사라졌어요. 내 글감.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쓴다는 건

밥상에 올릴 음식을 만드는 거 같아요.


오늘은 뭘 올릴까.

담백하고 기름기 없는 닭가슴살?

작지만 영양가 풍부한 달걀?

조금 비릿한 듯 감칠맛 나는 생선에 올리브유와 레몬즙 뿌린 샐러드?


단지 살을 찌우거나 입을 즐겁게 하는 간식보다는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밥을 짓고 싶어요.



지지난주 금요일

노트북에서 연기가 피어올랐어요.

깜짝 놀라 얼른 전기코드를 뽑고 살펴보니 전원 연결선이 탔어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과전류 유입에 의한 화재였다네요.


원인을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과로 나타난 현상에 대한 조치만 취한 상황이라

썩 미덥지 않아요. 불안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접지되는' 아답터로 바꾸고 쿨링팬도 달았으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거라 믿어요.




노트북 산지 벌써 십 년이 되었어요.

크게 혹사하지 않고 살살 쓴다고 썼는데

이왕 온 거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자잘한 문제를 해결하려 하니

'부품이 없어서 고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어요.

있다 해도, 비싸서 차라리 사는 게 낫지 않겠냐고.


저. 그래도 수리 기사님은 노트북에게 의사인데

너무 쉽게 사망선고 내리는 거 아닌가요?


어느덧 십 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당시에는 신제품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단종되어 수리를 포기할 신세가 된 건지. 믿기지 않고 서운하더라고요.


수족처럼 쓰던 정든 물건을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보낼 준비해야 한다는 게.

 



수리 맡긴 일주일 동안

노트북 핑계로 글을 쓰지 못하면서

강제 휴가를 갖게 됐는데 쉰 거 같지 않네요.


마음이 편하고 신나야 쉬는 건데

내겐 글쓰기가 휴식이었나 봐요.


그동안 푸우가 방학을 맞아

스케줄이 대폭 수정되고 덩달아 내 일정도 바뀌면서

신경 쓸 게 많았어요.

원래 신경 쓸 일은 한 두 가지 아니지만

흐름이 끊겨 쉽사리 노트북을 열지 못하다가

다시 각 잡고 앉아 글을 쓰네요.




새벽부터 일어나서 복작복작 뭔가 하고 있으니

오늘은 글 쓰는 게 빵 만드는 거 같아요.


든든한 밥상도 좋지만 가벼운 브런치도 좋겠죠.      

하루를 여는 영혼의 양식이니   

허투루 지으면 안 되겠어요.


아침상에 올릴 글감을 놓쳤으니 이제 수다 멈추고 다시 찬찬히 둘러볼래요. 다른 재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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