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아홉 시에 들어와
라면 먹고 설거지를 잔뜩 쌓아놨다
자정 오 분 전 발견하고
찜찜하고 분한 마음에 뒤척이다
일어나 기어코 그릇을 닦기 시작했다
달그락달그락
설거지 마치고
화장실 다녀오니
정각하고 십삼 분이 지나 있었다.
홧김에 한 일인데
마치고 보니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다
설거지 좀 해줄 수도 있지 싶다
내가 크게 뭘 하는 건 없어도
저 한 사람의 삶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유익한 일을 한 거 같아
뿌듯하다
봉사가 별 건가
부부가, 가족이
서로를 돕는 것
그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도록
곁에서 소소한 필요를 채워주는 것도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일상의 봉사 아닌가
어디 가서 사진 찍고 생색나는 일을 하고
인스타에 올리는 것도 봉사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내 옆에 있는
내 삶에 들어온 사람들
조용히 챙기고 돌보는 것도
내가 수행해야 할 신성한 봉사일 게다
유미정 작가. 윤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