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는 게 이기적이라는 일부 커뮤니티 글을 읽고
종종 보던 커뮤니티에 올라온 기사. 기후위기가 걱정돼 출산을 망설이는 사람이 늘었다는 통계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싶다는 연결과 뭐가 다르지 싶어 슥 보고 넘어가려다 댓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사회에는 애 안 낳는 게 답이다’
‘태어난 애만 불쌍하다’
‘이럴 때 애 낳는 부모가 이기적이다’
이런 식의 반응을 처음 본 건 아니다. 성차별・성폭행 사건으로 사회가 한 번씩 끓어오를 때도 비슷한 댓글이 달린다.
‘이런 사회에 애 낳는 부모가 멍청하다’
‘애 안 낳는 게 사회에 대한 보이콧이다’
‘가부장의 자식을 낳아주는 부역자(여성)도 문제다’
이런 반응이 어떤 마음에서 비롯되는지 모르지 않다. 범죄와 폭력, 그것을 조장하거나 묵인하는 사회와 시대에 나도 많이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분노 대상을 잘못 겨냥한 이런 댓글들은 그 못지 않게 슬프고 속상하다.
왜 기후변화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을 부정하는 것으로 연결할까.
왜 기후변화에 대한 염려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미래를 한 번 더 걱정할 부모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나.
왜 성범죄와 가부장제에 대한 분노를 아이와 (엄마가 된) 여성에게 쏟을까.
지금 한국에서 아이를 낳는 데엔 용기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실제로 몇 년째 OECD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기도 했고). 특히 기후변화, 성불평등, 빈부격차, 각종 범죄와 폭력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힘써 바꾸는 데 더 적극적으로 힘을 내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럴 의지와 용기가 없다면 아이를 낳겠다는 마음이 서기 어렵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한 끝에 임신과 출산을 결심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이기심으로 아이를 낳았다고 단언할 순 없다.
애초에 아이를 낳는 누군가의 선택을 '이기심 vs 이타심'이라는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지금 살고 있는 아이들과 태어날 아이들을 ‘불쌍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운의, 이기적인 부모 때문에 태어난 아이'라고 규정지어도 되는 걸까.
내가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3년.
딸을 둔 회사 선배 K는 "내 인생은 아이를 낳기 전과 후로 나눠져. 아이 낳으면 정말 그 전처럼 살 수가 없어"라는 이야기를 수시로 했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친한 언니 S는 "아이 낳아도 좋긴 한데, 안 낳고 살아도 될 것 같아"라며 출산과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털어놓곤 했다.
그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아이를 낳는다는 건, 인생의 중심에 내가 아닌 '아이'를 두고 살아야 한다는 거다. 평생 내 욕구 중심으로 살아온 내가 과연 아이를 위해 기존 삶의 방식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건 3가지 이유가 내 안에 섰을 때다.
첫째,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경험 그 자체가 궁금했다. 많은 사람이 말하는 인생을 뒤흔들 유일무이한 사건. 심신이 너덜너덜해질 수도 있지만 그 여정에 보게될 풍경이 궁금했다.
둘째, 아이가 생김으로써 변화될 태호와의 관계, 할아버지・할머니가 될 부모님과의 관계가 궁금했다. 이것 역시 좋기만 하진 않을 거란 걸 안다. 하지만 조부모가 되고, 부모가 되어 인생의 새로운 기쁨과 힘듦을 나누면서 변화될 관계가 기대됐다.
셋째,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적극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지면 좋겠다는 바람, 그런 방향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부모가 된다는 건 이런 바람을 가장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하며 사는 조건이지 않을까 싶었다.
세 가지 이유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몹시 이기적으로 비춰지기도 하고, 꽤 이타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쨌거나 임신과 출산, 육아의 길에 들어선 나는 그리고 다른 부모들 역시 이제 삶의 중심에 '아이'를 둘 수밖에 없다.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타적이기도 하고, 결국 내 아이라는 점에서 이기적이도 하다.
육아 과정에서도 이기적인 선택과 이타적인 선택은 모호하게 반복될 게 분명하다. 아이를 위해 무엇이 좋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선택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어떨 땐 이기적인 선택을 하기도 할 거다. 하지만 또 어떨 땐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이타적인 실천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숱한 고민과 마주할 부모들에게 '낳기로 선택한 건 당신들이니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선을 긋는다면 이것야말로 '자기 애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부모'가 될 면죄부를 부모에게 주는 일일지 모른다. '각종 사회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 애 생각은 안 하고 낳았냐'는 비난은 사회 문제에 대한 책임을 손쉽게 미래세대에 떠넘기고 냉소하는 일이다.
이런 태도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엉뚱한 대상을 비난하는 또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다.
일단이(태명 '일단 부딪혀보자'를 줄인 이름입니다)가 우리에게 찾아오면서 나는 매일매일 삶이, 미래가 염려된다. 기후변화가 더 심해지는 것도 걱정이고 폭력이 끊이지 않는 것도 불안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걱정되는 건 외로움이다. 일단이를 이 세상이 반겨주지 않을까봐 그게 가장 걱정된다.
일단이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불쌍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일단이와 함께 더 힘차게 살아가보고 싶은 우리를 이기적인 부모라며 외면할까봐 두렵다. 냉소는 너무 쉽고 아무것도 개선시키지 못한다. 그 분노를 정당한 대상을 향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쏘아주면 좋겠다.
폭력에 대한 분노, 기후변화에 대한 염려에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해주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아이들은 이런 사회에서 살지 않도록 얼른 바뀌었으면 좋겠다’
‘반복되는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이런 노력을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