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활동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채식 위주로 먹기, 비행기 여행 피하기,
차 없이 살기, 아이 적게 낳기.
- 조너선 사프란 포어, <우리가 날씨다>, p.119 -
SNS를 둘러보다 우연히 이런 문장을 봤다. 찾아보니 언젠가 재밌게 읽었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쓴 저자의 신간.
따뜻한 시선으로 9.11 테러 이후의 뉴욕을 담아낸 소설이었다. 마음에 들어 이 저자의 다른 책도 찾아봤었다. 번역된 다른 책이 없길래 이 저자 아내의 책까지 찾아 읽었다.
(맞아요. 이 신간에 조금 삐딱한 시선을 던지기 전에 얼마나 이 저자를 좋아하는지 구구절절 설명 중입니다.)
저자가 이 신간에서 제안한 '개인이 지구를 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활동' 4가지.
그중 네 번째 '아이 적게 낳기'에 마음이 오래 머문다.
틀린 말이라 할 수 없다.
그 어떤 시기보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20~21세기. 인류 입장에서야 산업화와 그에 따른 인구 증가가 진보의 척도지만, 지구 입장에서 보면 부담 그 자체겠지.
아기 낳는 게 지구한테 미안한 일이라니...
어쩐지 배를 한 번 쓰다듬게 된다.
그래도
나는 한 명만 낳을 거니까 덜 미안한 건가?
한국은 세계 최저 출생률이니까 세계 최고 출생률의 이스라엘, 멕시코보다 죄책감 덜 가져도 되나?
뭔가 이상한 것 같다.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개인을 제어하면서까지 지구를 위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지구에 살고 있는 동식물의 터전을 보호하기 위해?
현재 살아있는 인간이 덜 파괴된 지구에서 살기 위해?
미래 인류가 더 좋은 환경에서 살도록 하기 위해?
우주에 하나뿐일지 모를 소중한 지구를 최대한 좋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어렵다.
아이를 낳고 싶은 개인의 욕망을 제어하면서 인류를 위한다는 게 말이 되나?
동식물과 지구, 인류를 위해 개인의 욕망을 어디까지 제어해도 괜찮은 걸까?
영화 '어벤져스'의 빌런 타노스가 떠오른다. 우주 인구수를 절반으로 줄여 정의와 평화를 이루고자 한 빌런.
지구를 위해 아이 적게 낳자는 저자의 제안은 타노스와 얼마나 다르지?
아이와 부모를 도구화했다고 비판받는 과거 산아제한 정책과는 얼마나 다르지?
아이가 태어나면 세계에 부담이 늘어난다는 전제, 그러니 제한이 필요하다는 결론만큼은 똑같은 것 아닌가.
그 결론을 실행에 옮기는 방식은 다를지언정. (손가락 튕겨서 순식간에 인구 절반을 날려버린 타노스가 비교할 필요도 없이 훨씬 나쁘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아니, 조너선 씨. 너무 냉소적인 거 아니에요?'라고 묻고 싶어졌다.
아이를 낳고 싶은 개인의 욕망이 지구와 인류의 미래보다 가치 있다고 확신하는 건 아니다.
애초에 둘 중 뭐가 더 가치 있는지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되나 싶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같아서 영 마뜩지 않다.
그렇다고 나는 한 명만 낳을 거니까 지구에 그렇게 해를 끼치진 않는 거야, 라며 위안을 삼고 싶지도 않다.
저 집은 애를 셋이나 낳았네, 기후변화는 생각도 안 하나라며 혀를 차고 싶지도 않다.
개개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구라는 큰 틀에서 보면 아이를 적게 낳는 편이 지구에 좋은 게 사실 아니냐고 나를 설득할 수도 있다.
근데, 지구를 위해 제안하는 '개인의 활동' 이라면서요.
아이를 적게 낳는 게 개인이 할 수 있는 지구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활동인지 아닌지, 나는 모르겠다.
"기후변화가 이렇게 심각한데 아이를 낳겠다니. 이기적인 거 아냐?"라 한다면,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반문하고 싶다.
나는 그저 아이를 낳아 사람으로 길러내는 일이, 더 좋은 세상을 위해 힘껏 노력할 가장 확실한 동기가 될 거라 기대한다.
쉽게 예상되는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겠다 결심할 수 있었던 건 이런 기대가 큰 몫을 했다.
이 아이가 어떤 부분에선 지구의 자원을 축낼지라도
어떤 부분에선 세상을 좋은 쪽으로 움직이는 데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그런 사람으로 길러낼 수 있기를 희망하고 다짐하면서.
우리 아이가 그러하듯 다른 아이도 그럴 거라 믿고 노력하는 어른이 되어야지 다짐하면서.
누구의 아이든 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나았을 거라고 감히 판단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 그럴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니까.
참 기묘한 시대에 부모가 될 예정이란 생각이 든다.
아이를 안 낳으면 안 낳는 대로 이기적이라 욕먹고, 아이를 낳으면 낳는 대로 이기적이라 욕먹는 시대.
어느 쪽이든 다들 오지랖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아이를 낳았다, 낳지 않았다, 몇 명 낳았다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다니.
이게 훨씬 더 위험한 것 아닌가요?
얼마나 윤리적으로 살지 여부는 개인의 노력에 달린 문제다. (강요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아이를 (얼마나) 낳았는지가 윤리적인 삶을 위한 노력과 얼마나 연결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이를 낳았지만 이기적인 사람도 많고, 이기적이지만 아이는 없는 사람도 많다.
내 경우엔?
아이를 낳으면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