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포스팅 기념특별편!남편인일단대디가쓴 포스팅입니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일단마미가 제일 기다린 건 바로 ‘입덧’이었다.
그 지옥 같다는 입덧을 기다린다는 게 언뜻 이해가지 않겠지만, 난 공감할 수 있었다.
입덧은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한 번쯤 겪게 되는 ‘영웅의 고난’이지 않은가.
‘우욱’ 소리와 함께 화장실로 달려가는 히로인을 보며 부모님들은 기뻐하기도 하고 새파랗게 질리기도 하고…
하지만 무엇보다 일단마미가 입덧을 기다리는 건 이런 이유였던 것 같다.
임테기에서 두줄을 봤고 초음파도 봤지만 아직 아이의 존재가 실감 나지 않는 엄마에게 아기가 처음으로 보내는 시그널일 테니까.
뚜뚜뚜. 엄마 들려요? 나 정말 이 안에 있어요!
물론, 뚜뚜뚜가 아니라 뿌뿌뿌(?)인 게 현실이지만.
5주 차에 접어들며 일단마미는 그렇게 기다리던 입덧을 시작했다. 뿌뿌뿌 거리면서.
방귀도 트림도 트지 않았던 우리였건만, 규칙적으로 하지만 예고 없이 가스를 살포했다. 하루 한번 설사는 당연했다. 민망해할까 봐 TV 볼륨을 키웠지만 예능 따위가 일단마미의 설사 텐션을 이길 순 없었다.
당연히, 그렇게 기대했던 것처럼, 음식도 잘 먹지 못했다. 원래 입맛이 딱 평양냉면이던 사람이었다.
슴슴하고 간간한 음식을 좋아하던 사람이 어느 날부턴가 비린내가 난다며 떡볶이, 김치볶음밥, 부대찌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삼겹살 참 좋아하던 사람이 돼지고기의 냄새는커녕 단어 조차 듣기 거북해했다.
어느 날엔가는 활짝 창문을 열었다가 아랫집에서 삼겹살 굽는 냄새가 올라와 화장실로 달려가 한참을 토하기도 했다. (일단마미가 '상상도 못 한 임신 증상 1위' 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럴 때마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해줄 게 없었다.
남편으로서 진심을 다해 안쓰러워하며, 알맞은 음식과 마실 거리를 잘 챙겨주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나도 뿌뿌뿌에 동참했다.
전날 뭘 잘못 먹은 게 정말 없었고 그 좋아하는 술도 입에 대지 않았는데. 왜지? 에이 뭐, 그럴 수 있지.
그런데 그다음 날도 다다음날도 나는 뿌뿌뿌했다.
뿌뿌뿌가 트리플로 펼쳐지고 나서야, 나는 예전에 봤던 기사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어떤 남편들은 입덧을 한다는 얘기.
말도 안 된다며 대충 읽었던 기사여서 서둘러 검색을 해봤다.
‘쿠바드 증후군’이라고 한단다.
쿠바드는 프랑스어로 부화하다는 뜻의 단어란다.
잘은 모르겠지만, 프랑스 같이 남성들이 육아에 많이 참여하는 나라에서 남편들이 입덧을 겪는 케이스가 많아서 만들어진 단어이려나?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졌고, ‘부화’라는 단어가 문득 예쁘게 느껴졌다.
알을 품고 있는 오리가 수컷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딘가 귀엽지 않은가?
백과사전에 의하면, 쿠바드 증후군의 원인은 아직 정확하진 않으나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고 한다.
첫째는 심리. 아빠가 된다는 압박감과 불안감 긴장감이 작용해 소화불량을 일으킨다는 거다.
두 번째는 페로몬. 임신을 하면서 여성이 분비하는 페로몬이 남성의 신경물질들에 작용하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쿠바드 증후군에 대응되는 말이 한국에서도 있다고 한다. 지붕지랄.
아내가 진통을 시작하며 비명을 지르면 남편은 지붕에 올라가 소리를 지른다는 거다.
아내의 아픔을 온몸으로 공감하고 있는 남편을 '지랄'로 규정하는 게 딱 옛날 한국스러워서 코웃음이 났다.
일단마미에게 쿠바드 증후군에 대해 얘기해주니 재밌어했다. 그리고 자신과 아이에게 공감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고 해줬다.
맘카페에는 실제로 남편이 입덧을 한다는 글이 종종 올라오고, 그 아래로는 리플이 주렁주렁 달리곤 한다.
속이 안 좋은 건 기본에 음식 냄새도 못 맡고 밤에 토하고 연신 헛구역질에...
자기보다 입덧이 심한 남편 때문에 어이가 없다는 아내 분들의 하소연이 웃겼다.
한 달을 했다는 사람, 20주 내리 입덧 때문에 괴로워했다는 사람. 난리도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입덧은 곧 끝났다.
한 2주일 정도 속이 안 좋았던 걸로 끝났다. 다행스럽게도 헛구역질까지 간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 아쉬웠다고 말하면. 믿길까?
최소한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남편이 아이의 존재를 느끼기란 정말 어렵다.
솔직히 말하건대 자기 신체에 일어나는 변화는 0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남편들이 초음파실이나 진료실에 함께 들어갈 수 없다.
멀뚱멀뚱 의자에 앉아서 와이프가 나오길 기다리다가 해맑게 웃으며 나오는 아내를 보고 억지로 텐션을 올려 함께 웃다가 병원을 나서곤 하는 남편들. 나도 그중에 하나이고.
그래서 더더욱 남편들이 아이, 아니 태아와 공감하기 힘들어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쿠바드 증후군은 어쩌면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잠깐만. 진짜 축하할 일이라면 ‘증후군’이라는 단어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병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싫다. 어떤 말로 바꾸면 좋을까…
원래는 게임 용어였던 ‘xx 모드mode’ 라는 말을 요즘은 모두들 쓰곤 하니 ‘쿠바드 모드’ 어떨까.
아니다, 기왕이면 한글도 섞어서 ‘부화 모드’도 좋겠다.
일단대디씨 요새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
아, 저 부화모드여서요.
와 그 어렵다는 모드에 진입한 거야? 축하해!
카톡 프로필엔 ‘부화모드 진입’. 주변 사람들의 쏟아지는 연락.
‘저도 부화 모드 들어가고 싶었는데 실패했어요 ㅠㅠ’
‘요즘 입덧 때문에 고생이지? 죽 사 먹어! [본죽 상품권]’
이런 세상이 안 올까?
적어도 일단이가 아빠가 되는 30년 후에는 이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세상이 올 때까지 우리 수컷 오리들은 더 열심히, 온 마음을 다해 태아를 ‘부화’하려고 애쓰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