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자유로울 것만 같던 패션디자인과 생활은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주변 친구들은 멋지게 명품으로 꾸미고 다니는데, 나는 알바로 비싼 등록금을 벌어야 하는 현실에 자격지심을 느끼게 되었다.
겨우 졸업을 했고, 그에 반해 운 좋게 패션디자인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회사만 들어가면 모든 게 핑크빛으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회사에 들어가는 순간, 텃세와 수직적인 구조에 숨이 턱 막혀왔다.
이름만 디자인 부서였지, 하는 일은 잡일과 심부름만 하는 직원이었다.
그리고 바로 위에 사수는 심각하게 게을렀다.
책상에 종일 앉아서 하는 일이라고는 인터넷 쇼핑과 사무실 전화기로 몰래 하는 자신의 사적인 통화였다.
사무실 통화료가 10만원이 훌쩍 넘게 나오는 걸 보고 난 뒤부터 눈치 보는 척이라도 하는 뻔뻔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고, 큰 꿈을 가지고 서울로 상경을 하기로 했다. 남들보다 몇 년은 늦은 나이에 서울로 가게 되었다. 얼떨결에 입사한 회사 면접에서도 나는 야무지지 못했고, 그 회사의 연봉이나 복지는 전혀 모르고 몸과 간소한 짐만 들고 급하게 입사하게 되었다.
회사의 위치는 강남 신논현에 있었고, 건물은 적어도 20층은 되어 보였고, 삐까뻔쩍해보이는 건물에 압도당하게 되었다. 회사에 들어가 보니 자유로워 보이는 복장과 환경이 마음에 쏙 들었고 이제야 내 자리를 찾은 느낌이 들었다. 9시 출근에 6시 퇴근이라고 적힌 근무시간이 있었지만, 정작 실무적인 일을 하다 보니 정확한 퇴근시간이 없었다.
첫 회사의 경력들은 아예 인정받지 못했고, 월급은 반 토막에 정작 알바보다 못한 시급을 받으며 일을 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 경험들이 모여 더 나은 내가 될 거라는 희망에 부푼 채 일을 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근무하는 시간은 매일 7시 출근에 9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무려 14시간이 넘는 강행군들을 견뎌내야 했다.
주5일에 안도감을 느끼며 일했지만, 나머지 2일은 5일의 강도 높았던 기빨림과 여파로 거의 반죽음이 되어 산송장처럼 보냈다.
무엇보다 회사의 사수인 팀장은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나의 환경을,
“배울 수 있는 것에 감사하라” 며 가스라이팅을 하며 괴롭혔다.
심지어 팀장은 165cm, 45~47kg, 44~55사이즈에 맞추기 위해서, 평일에는 탄수화물을 전혀 먹지 않았다.
점심에는 사과 한 알과 견과류를 먹고 지냈고, 저녁도 간단하게 샐러드를 먹는 지독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회식이라도 하면, 거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폭식을 하는 괴물 같은 식성을 보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팀장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추후에 더 자세하게 나올 예정이다.
알바보다 못 한 시급을 받으며 생활비까지 감당을 해야 했기에 자연스럽게 먹는 것을 아끼게 되었고, 인스턴트 음식으로 연명하며 지내게 되었다.
식습관이 무너지고, 일정하지 못한 퇴근시간으로 점점 건강은 나빠지기 시작했다. 면역력은 점점 무너져갔고, 아침마다 밤새 벅벅 긁은 몸의 상처들의 피와 진물들이 묻어난 이불을 확인해야 했다.
내가 서울로 올라온 열정들은 무너져갔고, 생활 자체가 무너지고 만족감이 없어지니 점점 사람이 피폐해지고 우울해져갔다. 의지할 사람도 환경도 부족했기에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