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롬나 Aug 21. 2024

고3때 패션잡지 구독 7권, 그리고 램브란트 파스텔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정규 입시 미술 과정을 공부하고 고3때쯤 나의 전공을 결정하게 해준 친구가 있었다. 나의 짝꿍이자 롤모델이 되어준 친구였다. S는 자유분방했고, 체구는 작았지만 대범한 성격과 카리스마는 누구보다 거대했다. S는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과 열정이 있었고 매우 계획적으로 움직였다. 패션디자인을 사랑하고 패션에디터를 꿈꾸는 친구였다. 한 달에 패션 잡지를 6권이나 구독하며 잡지들을 모조리 다 읽으며 트렌드를 쫓기도 했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모르는 게 없는 친구였다. 항상 유행하는 것은 제일 먼저 알고 직접 시도해보고, 친구들에게 후기를 들려주기도 하는 지금의 용어로 따지자면 얼리어답터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잡지들을 공짜로 읽으면서 화려하고 있어 보이는 패션디자인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나도 이런 화려한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걸까, 이렇게 아름다운 것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주변 환경에 잘 동화되는 성격이었던 나는, S의 추천으로 지정해준 패션잡지 엘르걸을 구독하게 되었고, S 친구의 잡지 6권을 더 떳떳하게 볼 수 있는 특권이 생겼다. 친구가 구독하는 패션잡지 6권에 내가 구독하는 잡지 1권까지 총7권을 매 달 챙겨보기 시작했다. 패션잡지에 완전히 몰입되어 빠져버리게 되었고, 글자 하나, 제품 설명으로 나온 티끌만한 각주의 글까지 놓치지 않고 모조리 다 읽었다.      


활자중독 보다 더한 활자포식자가 된 것 마냥, 패션 잡지는 모두 섭렵을 하게 되었다. 잡지를 읽은 독자들은 누구나 쓸 수 있는 독자 편지 코너에 여러 번 당첨되어 받는 패션관련 제품들을 선물 받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렇게 고3을 나는 패션잡지와 한 몸이 되었고, 태생부터 패션디자인 전공으로 태어난 것 마냥 본능적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수능을 치르고 친구들이 놀러 다닐 때, 그때부터 입시미술은 제일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12시간 동안 쉬지 않고, 2달 동안 그림을 그려야 했다.

12시간 이상 미술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지내야 했기에 회비도 만만치 않게 비쌌고, 입시를 위해 좋은 미술 재료를 사용해야 했기에 재료비도 엄청났다. 

아무런 정보 없이 다니게 된 미술학원의 회비는 점점 불어나 입시미술 때 정점을 찍었고, 비싼 미술 재료까지 더하니 넉넉지 못한 집안 환경이 조금씩 흔들렸다.     


발상과 표현을 준비하던 때였는데, 파스텔과 물감, 색연필을 모두 사용했다. 그때 당시 가장 비쌌던 게 램브란트 파스텔이었는데, 입자가 엄청 고와서 그 파스텔로 베이스를 깔고 시작하면 채색이 훨씬 선명하게 올라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림 퀄리티가 저절로 높아진 느낌이 들어서, 모든 친구들이 혹해서 구입을 하게 되었다.

파스텔 1통이 아닌 램브란트 파스텔 낱개 1개가 만원이었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나는 베이스 색깔 1개만 구입해서 사용을 하였다. 보통 드라마 같은 상황이라면 재료 상관없이, 그림을 엄청 잘 그리는 장인 정신 같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내 그림은 그냥 딱 중간이었다. 

그래서 램브란트 파스텔을 전부 다 쓰고 그림까지 잘 그리는 친구들이 더 부러웠던 것 같다. 


예술 계열로 일을 하려면 집안 환경도 뒷받침 해줘야 한다는 걸 몸소 체득하게 되었고,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넘어서서, 태생부터 부유한 환경 속에서 구김 없이 하고 싶은 걸 하고, 그걸 또 잘해내는 사람은 절대 이기지 못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고3때 짝꿍이었던 S는 부유한 집안 환경 덕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서 대학교를 졸업했고, 꿈에 그리던 패션디자인 잡지 에디터로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열심히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재능도 있고 부유한 집안 환경까지 갖추어진 친구와, 무턱대고 동경하며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려는 나의 모습에서, 현실적으로 아주 커다란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때 어떻게든 비싼 램브란트 파스텔을 다 구입해서 그림을 그렸다면, 내 그림이 달라졌을까? 

아등바등하는 현실을 보냈지만, 생각해보면 어떻게든 주어진 환경에 맞춰서 열심히 하려고 노력 했던 것 같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을
나는 굳게 믿는 편이다.

 


그게 뭐든, 열심히 하다보면 만 시간의 법칙처럼 언젠가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서, 그 시간을 이겨낸 자만이 해낼 수 있는 값진 가치를 언젠가는 꼭 보여주고 싶다.      


1만 시간의 훈련 함께 해볼까요? 


fromna_grida@naver.com

https://www.instagram.com/fromna_grida

이전 03화 디자인을 포기했다가 다시 그림 작가가 되려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