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 부푼 꿈을 안고 서울에 상경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일상과 일을 즐기면서 사는 듯한 선배, 친구들의 SNS를 보며 부러워만 했었는데, 막상 내가 그런 생활들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설레었다. 그들의 SNS에는 가장 인기 있는 동네에서 쇼핑과 예쁜 브런치나 음식들을 먹으며 누리는 일상의 모습들, 매번 열리는 그림 전시나 공연들을 실컷 즐기는 모습들을 보며 서울 생활을 마냥 동경해 왔었다.
첫 서울 생활이기에 이모의 도움으로 이모집 위에 작은 옥탑방에 잠시 살기로 했다. 나의 소중한 옥탑방의 위치는 합정이었고, 출근할 회사는 논현동에 위치해있었다. 가장 바쁜 급행 9호선을 갈아타고도 40분 이상 걸리는 거리였지만, 한번 환승하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첫 출근날, 8시 30분쯤 출근을 했지만, 회사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20분쯤 기다리다보니 다른 부서의 막내가 자신의 지문을 찍고 문을 열어주었다.
디자인실로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세미 정장으로 검정 자켓과 검정 슬랙스, 흰 셔츠, 로퍼까지 신고, 엄청 긴장해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9시 10분쯤 디자인실의 직원들이 들어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면접을 봤던 팀장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님의 첫 착장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자이언트가 쓸만한 옹졸해보이는 작은 선글라스와 반짝이 티셔츠, 화려한 스냅백, 발목까지 올라오는 초록색 양말에, 아디다스 3줄이 돋보이는 스포츠용 파란색 반바지, 운동화는 빨간 나이키 덩크 하이 슈즈를 신고 나타났다. 나의 세미 정장이 마치 장례식장에 가는 사람인 것처럼, 너무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둘러보니 팔찌와 반지들을 가득 하고 있는 히피 스타일, 샤랄라 분홍 공주 스타일, 진한 스모키 화장에 캐주얼한 힙합룩까지 아주 개성 넘치고 다양한 스타일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나의 첫 일정은 동대문 원단 시장에 가서 여러 원단들을 픽업하고, 정리해서 샘플을 만들어줄 공장에 보내는 업무였다. 처음에는 넓은 동대문 시장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긴장하기 바빴고, 버스 환승하는 곳까지 외우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1달을 적응하며 일하는데, 사람들의 똑같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두 점심을 먹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외근이 많아서 밥 먹는 모습을 보지 못해서 눈치 채지 못했는데, 살펴보니 모두 점심을 먹지 않고 간단한 간식으로 때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제일 큰 영향을 미친 것이 팀장의 탄수화물 혐오 습관과 가스라이팅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회사 이사와 함께 디자인 팀 전체 점심 회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는 다들 자유롭게 식사를 하는데, 팀장은 갈비탕에 갈비만 건져 먹고 국물과 밥은 전혀 먹지 않았다. 평소에도 점심에 사과 한 알과 견과류를 먹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회식 때까지 철저하게 지키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마른 옷 스타일을 위한 본인의 강한 의지인 게 느껴져서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저런 모습을 보면서 같이 일하는 팀원들도 점심에 대한 의지를 잃어가고, 먹는 것이 눈치 보이는 환경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팀장의 강한 성격으로 팀원들이 대부분 맞춰주는 시스템이었지만, 나는 조금씩 불만들이 표정에 드러나면서 내가 표적이 되는 시점이 다가왔다.
내 책상 위에 엉덩이를 걸터앉으며 팀장이 하던 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너는 경력자라서 그렇게 머리가 큰 거니? 뭘 믿고 그렇게 네 멋대로 하는 거야?
당연히 입을 꼭 다문 채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를 했다. 바로 옆방에 이사님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는 큰소리를 내지 못해서 끝난 줄 알았다. 이제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나에게 카톡을 보내기 시작했다. 폭언을 보내기 시작했고 심지어 책상을 뒤엎는 이모티콘을 보내는데, 그 순간 '풉' 하고 웃음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는다고 힘들었다.
몇 번의 회사생활을 하면서 저렇게 대놓고 직원을 누르려고, 유치하게 자신의 화를 표출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거의 매일 있는 야근으로 9시 넘어서 퇴근하는 일이 많았고, 막내로서 일찍 출근해서 청소까지 도맡아 해야 했기 때문에 7시 출근을 해야 했다.
거의 14시간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는 건 참을 수 있었고, 부족한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유치한 사회 생활과 가스라이팅을 견디는 게 힘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망의 디데이가 다가왔다. 모두가 기다린다는 저녁 회식 시간이었다.
직원들 말로는 저녁 회식이 엄청 재밌고, 맛있는 음식들도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여러번 말한 게 기억이 났다.
아침에 오늘의 일정들에 대해서 간단히 회의를 하고, 갑자기 팀장이 종이에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 이름을 적은 동그라미들을 그려 넣으며, 회식 때 우리가 앉을 자리라고 설명을 했다. 오늘 회식에는 패션 MD 팀도 같이 참석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르는 이름들도 많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내 이름이 보이지가 않았다.
디자인팀 인원 5명을 다 그리고 그 옆에 MD 3명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디자인팀이 아닌 MD팀의 가장 자리인 기둥 옆에 내 이름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내가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오늘의 바쁜 일정으로 별 생각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기운을 다 쏟아내서 일정을 끝내고 회식 장소에 도착했다.
8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아직 팀장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팀장이 카톡으로 조금 늦는다고 먼저 음식을 시켜서 먹으라고 했다. 아침에 팀장이 적은 자리 배치도는 다들 까맣게 잊은 채, 옹기종기 모여서 허겁지겁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분 뒤 팀장이 도착했다.
자리에서 전부 일어나!! 내가 아침에 적어 놓은 자리 배치도 갖고 와!!
그리고 자리 배치도 위치로 모두 먹던 그릇과 수저를 들고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너무 요란하고 큰 소리를 내서 옆자리 사람들도 놀라서 모두 쳐다볼 정도였다.
나는 그때까지도 별 생각 없이 자리를 옮기며 음식을 먹기 바빴다.
알고보니 패션MD 팀장은 팀장의 친 여동생이었고, 서로 자매끼리 자기 할 말을 한다고 바빴다. 대화에 맥락은 없고 회사의 역사에 기여한 자신들의 업적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거의 우리들은 강연을 들으러 온 청중들이었고, 눈치 보며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들으며 적당히 리액션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탄수화물을 혐오하던 팀장은 앉은 자리에서 파스타와 리조또를 각각 한 개씩 다 먹고, 스테이크까지 완벽하게 먹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동안 저 식욕을 어떻게 참았던 것일까 의문이 들 정도로 쉬지 않고 음식을 입에 넣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나를 일부러 왕따 자리에 앉혀놓고, 눈치를 주기 위한 계획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나는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았다. 다만 유치한 팀장에 대한 혐오감만 쌓일 뿐이었다. 주말에도 시장 조사를 하며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애쓰고, 평일에는 야근으로 몸과 마음이 점점 차갑게 굳어 갔다. 점심 시간에 조금이라도 식비를 아끼기 위해 직접 싼 도시락이 커다란 원단이 들어간 비닐 봉지 안에 굴러다니며 차갑게 굳어가는 걸 보면서, 나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골 쥐의 화려한 서울 상경 스토리는 없다.
직접 부딪쳐 보며 겪은 경험이 정말 값지고 그 속에서 내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직접 서울 생활을 하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평생 SNS 작은 네모 화면을 부러워하며,그때 왜 도전하지 못했을까 후회하며 살았을 것이다.
지금은 그들의 네모 화면만을 보며 부러워하기 보다는, 비하인드 스토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혼자 인내로 견디면서 힘들게 지내고 있어도,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모습을 멀리서 보고 열심히 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들과 나의 생활에 대해 더이상 비교하지 않고, 현실 속의 내 모습에 집중을 하기로 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나의 생활에 만족하며 남들이 비극이라고 해도 스스로 희극으로 만들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