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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나 Sep 11. 2024

다시 부산에 오게 된, 유채색 인간

넉넉한 지하철과 편안한 내 방이 있는 곳


매일 사람들 시루떡으로 겹겹이 쌓인 채 실려 가던 서울 지하철 환경에서는, 내 앞 사람이 오늘 무엇을 먹고 왔고 몇 번째 이빨에 고춧가루가 끼어있는지 확인할 정도로 밀착해야만 지하철 탑승이 가능했다. 하지만 부산에 돌아오니 지하철이 출퇴근 시간에도 서울에 비하면 앉을 자리가 간혹 나오기도 하는 아주 친절한 교통수단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편한 대중교통수단이었나 싶을 정도로 넉넉한 공간에 새삼 감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직접 식재료를 사지 않아도 따끈한 집밥을 해주고 편안한 내 방을 내어주시고, 빨래와 청소를 진두지휘하는 부모님 집의 구성원으로 살 수 있다는 것에도 감사함을 느꼈다.      


비록 내가 원하는 회사가 없지만, 나는 의지할 수 있는 가족과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내 편인 사람들이 많은 부산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복지나 연봉이 맞지 않아도 다시 내 전공에 적당히 부합하는 회사를 찾아보기로 했다. 공고에는 디자인 부서였지만, 하는 일은 저번 회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샘플 정리와 옷이 나오기까지 소재 및 개발팀 업무를 맡는 곳이었다. 심지어 2년 이상 경력자를 찾아서, 내가 딱 적합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지원을 하게 되었고 다행히 바로 연락이 왔다.

생각보다 부산에 오자마자 빠르게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어서 기뻤고, 다시 새롭게 시작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힘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현실적으로 부산에 몇 개 없는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웠지만, 그 소수의 회사에서도 야근과 심지어 텃세까지 존재했다. 그리고 일을 하면 할수록, 서울에 비해 디자인 범위는 생산 쪽으로 기울여져 있었고, 의류를 만들기 위한 공장 핸들링을 반복하는 행위에 나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다. 일의 방향성이 전혀 맞지 않다보니 자연스럽게 퇴근시간에 대한 불만은 커져만 갔다. 나는 더 간절하게 퇴근 시간이 확실한 일을 원하고 있었고, 퇴근 후에 나의 삶을 되찾고 싶었기에 계속 방황하게 되었다.       


그런 나를 보며 한 친구는 말했다.


“일에 왜 의미를 두려고 하는 거야?  
일에서 찾지 말고, 다른 것에서 의미를 찾으면 되지 않아?”     


그때부터 나는 일에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고, 그저 돈을 버는 수단이라는 의미가 강해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딱히 취미생활도 없었고, 오로지 회사와 집만 다니는 전형적인 직장인이었고, 그렇다고 내가 아주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사람도 아니었기에 창업이나 프리랜서로 도전을 해볼 용기도 없었다. 이도저도 아닌 회색 무채색 인간이었던 나는, 일을 하면서 다른 곳에서 재미라도 찾아보기로 했다.

서울에서 친구의 권유로 해보았지만 일이 너무 힘들어서 거의 참석하지 못했던 스윙 동호회를 부산에서 알아보고 가입을 했다. 퇴근 후 잠시나마 몸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집중하고 안 하던걸 하면서 새롭게 뭔가를 배우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이 모르는 것을 알아가고, 눈을 반짝이며 강사님의 대화에 귀 기울이면서 해내는 과정이 흥미롭고, 더 잘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서울에서도 느꼈지만, 무언가 배우고 함께 하는 취미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칼퇴 시간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 대부분 직장인들은 6시 칼퇴를 하고 와서 식사를 간단하게 하고 여유롭게 준비를 하고 8시 수업을 들으러 오는 걸 볼 수 있었다.  그에 반면 나는 회사를 마치고 저녁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전력 질주를 해서 수업을 듣거나 야근으로 수업을 들을 수조차 없었다.

일주일에 거의 절반은 야근을 해야 했기에, 도저히 일정한 시간을 낼 수도 없었기에 무언가를 꾸준하게 배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에 가장 성과가 없었던 이유는 나는 직접 새로운 것을 창작할 수 있는 디자인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도저히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더 나는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현실에 불만이 쌓여만 갔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

                                     VS

정시에 퇴근할 수 있는 일은 디자인 관련 일에서는 찾을 수 없는 걸까?      


의 갈림길에서 항상 허우적대기 바빴다.   


   

스스로 자책하면서 회사를 퇴사하고, 다시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이직 생각을 하다가도 급한 마음에 또다시 비슷한 회사를 들어가서 다시 퇴사하는 일들을 반복하게 되었다. 어떤 회사에서도 마음을 정착하고 일을 할 수가 없었기에, 일에 대한 자격지심과 공허함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차라리 포부 있게 하고 싶은 일을 다시 찾아보거나 무언가 시도를 해봤다면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용기 있게 회사를 퇴사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도도 안 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아깝기에 혼자 꾸준히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나를 잘 모르고, 그림 실력도 부족하지만 무언가를 시도 하고 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꾸준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그림이 처음이었다.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서, 내가 원하는 색감을 선택하고 질감을 입히거나 세밀하게 그림을 묘사하는 것 자체에서 오는 과정이 너무 흥미롭고, 자유롭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무채색의 어중간한 회색 인간이었던 내가, 그림을 그리면 여러 색깔을 선택할 폭이 넓은 것처럼, 여러 색으로 채워 넣을 수 있는 유채색 인간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공허했던 마음이 형형 색깔의 그림과 좋아하는 걸 잘해내고자 하는 열정으로 채워지는 게 너무 충만하게 느껴졌다.      


어떤 회사에 들어가도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들만 할 수는 없겠지만, 인정을 받고 성과를 내면 좀 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비중이 커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회사를 찾지 못했고 성과를 내지도 못하고 결국 현실의 벽에 무너져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서 조금씩 벽을 두드리고, 더듬거리며 문 손잡이를 찾고 다시 문을 조금씩 열 수 있는 숨통을 찾은 느낌이 들어서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무언가 보이지 않고 깜깜한 터널만 보인다면 돌아가거나 잠시 멈출 수는 있지만, 다시 일어나서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끈기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성과를 이루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번만큼은 문을 꼭 찾아서 활짝 열고 당당하게 나아가고 싶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그림으로 잘해낼 수 있는 일러스트 작가로 거듭나서 하고 싶은 일로 수입을 거둘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마 고집불통의 할머니가 되어서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나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함께 문을 찾아볼 팀원 구합니다.   

        


fromna_grida@naver.con


https://www.instagram.com/fromna_gr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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