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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나 Aug 14. 2024

디자인을 포기했다가 다시 그림 작가가 되려는 이유

꿈#2 두 발 자전거를 다시 처음 타보는 것처럼


현실과 타협하며 바라던 칼퇴근을 하는 워라벨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되었고, 어떤 취미생활을 할까 생각을 하다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아이패드 드로잉을 배워보기로 했다. 마침 원데이 클래스를 하는 공방을 발견하게 되었고, 아이패드가 없어도 대여가 되어서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몇 년 만에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되어서 살짝 떨리기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수정도 쉬웠고, 팔레트에서 내가 원하는 색깔과, 어울리는 브러쉬(텍스처)를 골라서 그림을 완성하는 게 너무 재밌었고, 무엇보다 완성된 작품을 직접 보니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홀린 듯이 정규반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고, 비싸게 느껴져서 계속 망설이기만 했던 아이패드까지 구입하게 되었다. 마음먹기까지는 정말 힘들었지만, 한번 마음먹으면 순식간에 해치워버리는 내 불도저 같은 추진력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처음에는 내가 원하는 사진을 따라 그리며 라인 드로잉 작업을 배웠다. 내가 찍은 사진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게 너무 신이 났다. 점점 완성도가 높아지고, 빠르게 완성작을 얻어 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어마어마한 성취감을 느끼게 되었다.

항상 비교하며 남들 보다 더 잘 그려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순수하게 그림이라는 세계와 다시 만난 느낌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점점 그림에 푹 빠지게 되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현실에 맞춰서 일하던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8시간 정규 일하는 시간을 마치고, 퇴근 후 공방으로 가면 부캐의 모습이 발현되는 느낌이 들었다.

2시간 동안 차분하게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뭔가에 집중하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일하면서 느꼈던 스트레스와 압박감에서 벗어나서, 혼자만의 자유로운 내적 공간을 마음껏 산책하는 느낌이 들었다. 매주 1번 퇴근 후의 시간이 기다려졌고, 그림 그리는 시간들이 쌓여서 나의 정체성이 다시 재탄생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정말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풍경과 자연, 식물과 나무들을 정말 좋아하고 사계절의 변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도 인상 적인 글의 내용에서 그림의 한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어렴풋이 생각한 장면들을 내 방식대로 표현하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처음으로 나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그림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찬란한 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매 순 간을 찬란하게 만든다. - 박웅현 -    



한번 사는 인생, 기다리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해봐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갑자기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어렵게 돌고 돌아온 느낌이 들었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다시 시작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벅차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얼마든지 찾고 탐구할 생각에, 어렸을 때 생각이 떠올랐다.

처음 두 발 자전거를 혼자 타기 시작했을 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졌던 마음과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집 안에 있는 마당이었는데, 자전거 바퀴 2번 정도 굴리면 끝나는 아주 작은 공간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거기에서 혼자 자전거 바퀴를 굴리면서 넘어져 무릎을 다치고 엉덩방아도 찧어가며 쉬지 않고 매일 연습을 하며 스스로 터득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처음 밤 산책을 가서 자전거를 타는데, 뒤에서 잡아주던 엄마가 조심스레 손을 놓자마자, 쌩쌩 잘 달리던 경험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은, 수많은 시행 착오 끝에 얻은 값진 첫 성공이었다.

자전거를 신나게 타면서 느껴지는 밤 공기는 너무나 상쾌하고 달콤했다.      


그것의 끝이 어디든 얼마나 걸리든지 간에, 나는 꾸준히 계속 해나갈 생각이다. 아직 외발 자전거를 타며 주춤 거리며 넘어지기도 하겠지만, 그동안 겪었던 맷집과 경험들을 바탕으로 툭툭 일어나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두 발 자전거를 두 손 다 놓고 탈 수 있을 만큼 자유롭고 아름답게 내 인생의 그림을 완성해나가고 싶어졌다.        


   


fromna_grida@naver.com

https://www.instagram.com/fromna_gr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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