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빠의 비밀
어릴 적 학교 앞에서는 노란, 레몬속살 빛깔의 병아리들을 팔았다. 100원, 200원 정도면 살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나도 조그맣고 귀여운 그 모습에 이끌려 몇 번 사 왔는데, 그 당시 병아리들은 사 오면 하루이틀 만에 죽어버리곤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초등학교 3학년 때 사온 아이는 죽지 않고 잘 자랐다. 털빛도 다른 아이들처럼 레몬속살 빛이 아니라 좀 더 진한 겨자빛 도는 노랑이었다. 또 눈 빛도 또랑또랑하고 삐약삐약도 그냥 삐약 삐약이 아닌 삐-약! 삐-약! 하고 당차고 야무지게 울었다.
나는 이 아이에게 '아리'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렇게 몇 주인지, 몇 달인 지의 시간이 지나자 아린 덩치가 훌쩍 커졌고, 날개 끝에는 흰 깃털도 올라왔다. 나는 아리를 무척 예뻐했는데 그게 슬픈 결말의 단초가 되었다.
날이 추워지던 어느 날, 나는 결심했다. 한데서 자는 아리를 위해 내 겨울파카를 꺼내서 아리에게 덮어줘야겠다고. 그렇게 밤이 지나갔고, 아침이 되자마자 아리를 보러 갔다. 그런데 아리가 죽어 있었다.
너무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아빠께서 어미품인 줄 알고 파고들어서 숨을 못 쉬어 죽은 거 같다고 말씀하셨다. 아린 하필 소매통 속에 들어갔고 더 깊게 파고들었다가 숨이 막혀 죽어 버린 것이다.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왜 잘 지내는 아리에게 파카를 덮어줘서 이 사달을 냈을까 하고...
비극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웃프게 마무리되었다. 아빠께서 아리를 화장하기로 하신 것이다. (철 쓰레기통에 넣고 태우셨다.)
그런데 온 집안에 통닭 냄새가 났다. 아리의 살이 타면서 고기 냄새를 풍겼던 것이다. 슬픈 와중에도 닭고기 냄새는 맛있게 나서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 하나. 아린 진짜 아리가 아니었다고 한다. 내가 사 왔던 레몬속살빛 아린 진즉에 죽어 버렸고, 내가 속상해할까 봐 아빠께서 시장에서 파는 튼튼한 아이로 바꾸어 두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다른 병아리와 달랐던가보다.) 아리의 죽음에 슬퍼하는 나를 위로해 주시려고 비밀을 말씀해 주신 것 같았지만, 그다지 위안이 되지는 못 했다. 내 입장에서는 바꾸어진 아리가 진짜 아리니까.(물론 일찍 죽은 아리도.)
'나의 아리야, 그때 미안했어, 좀 더 세심하게 살폈어야 했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한동안 네가 계속 떠올랐었지 뭐야. '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자니, 문득 잊고 지내던 그날의 젊은 아빠 모습이 떠오른다. 새까맣고 풍성한 머리를 가지신 채, 웃으시며 '아가, 괜찮아. 울지 마라.' 하시던 나의 아빠.
'아빠, 나를 위해서 그렇게 섬세히 배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해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