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게 일인데 왜 아직도 설레냐?

- 붙을까 봐 두근, 떨어질까 봐 쿵 2025.07.10

by 권정희

오늘은 드라마 극본 공모전 - 사막의 별똥별 찾기 공모 마지막 날이다.

2주 전,

컴퓨터 저장창고 한쪽에 고이 모셔뒀던 작품 하나를 살포시 꺼냈다.

오랜만에 드라마 공모전에 응모를 해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드라마 작가 지망생 인생은 공모전 인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늘 공모전에 맞춰서 인생이 돌아갔고, 공모전 중심으로 움직였다.

나는 그랬다.

다른 작가들은 달랐을까?

예전엔 그랬다.

아니 요즘도 그럴지 모르겠다.


밥 먹자

- 공모전 끝내고 보자.

술 먹자

- 공모전 좀 끝내고,

여행이나 같이 갈래?

- 공모전 있잖아.


과거,

드라마 작가지망생 지인들과의 통화 내용은 대체로 저랬다.

공모전이 끝나고,

당선작 발표까지 모두들 희망 고문으로 설렜고, 행복해했다.

그러다 공모 발표가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이면

이제나 저제나 울려대는 낯선 번호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다 스팸 전화나 피싱 전화가 걸려오면

온갖 신경질을 내고는 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7** 시작되는 번호를 기다렸다.

(그 당시 모든 방송국들은 여의도에 있었고, 여의도 시작되는 국번이

7**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러다 떨어지면 세상 끝난 것처럼 굴다가도

또 다시 새로운 공모전에 눈을 반짝이고는 했다.

그렇게 무수한 세월 동안 작가 지망생이었던 지인들이

드라마 작가가, 고급 시청자가, 지금의 나처럼

포기를 못하고 방송판을 맴도는 묵은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묵혀진 작가 지망생들은 데뷔만 못했지

거의 이 바닥 정보는 모르는 것 없이 꿰고 있는,

반짝 데뷔한 역사가 길지 않은 작가들에 비해

과거의 드라마 판까지 다 꿰고 있는 그런 베테랑 작가 지망생으로 거듭난다.


- mbc, sbs, kbs 동시 당선되면 어디로 가는 게 좋은가요?

호기로운 글이 올라온다.

지금은 시대의 흐름이 바뀌어

방송사의 이름이 달라지기는 했다.

- jtbc와 오펜 공모전에 당선되면 어떤 걸 선택해야 하나요?


행복한 상상이다.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해 봤을.

그리고 가끔 냉철한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 당선되고 나서 고민하세요.

희망 고문이라는 게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지 아는 누군가의 댓글일 거다.

사실, 나는 저런 질문이 귀엽다.


가끔 이런 질문도 올라온다.

- 공모전에 당선되면 회사를 그만둬야 할까요?

당선만 되면

곧 대작가가 되고 돈방석에 앉게 될 거라는 그런 위험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수수 댓글이 달린다.

- 생계는 절대 포기하면 안 돼요.

- 드라마 한 세 개 정도는 하고 그만두세요.

이런 질문에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당선만 되면 인생이 곧 장밋빛이 될 거라는 그네들의 희망이

곧 잔인한 현실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잘되는 작가도 있다.

하지만 나는

공모전 당선되고도

편의점 알바, 우체국 알바를 하는 작가 지인들을 여럿 봤다.

당선 이후도 산 넘어 산이 이 드라마 작가의 세상이다.

돈방석에 앉는 작가는 극히 드물고,

잠깐 돈방석에 앉았다고 해도, 인생은 길다.

작가라는 직업도 모든 다른 직종과 다를 바 없이

상위 5%가 존재하고, 손가락 빠는 이도 존재한다.


사실,

사막의 별똥별 찾기 -드라마 공모전에는 응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번번이 원고를 완성하지 못했고,

번번이 생계형 다른 작가 일이 우선시되었던 까닭이었다.

홍보영상작가, 구성대본작가, 홈쇼핑작가, 사보취재작가 등등

나는 그 간 무수한 프리랜서 알바를 해 왔고,

그 일을 하다 보면 공모전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수정하던 원고를 슬그머니 다시 집어넣고 말았다.

인물 수정 몇 개 끄적거리다

원고 마감일이 되어 버린 거다.

현실의 일들이 먼저였고,

지워야 할 문장보다 견뎌야 할 하루가 더 많았다.


그래도 여전히

공모 공지가 뜨는 걸 보면 가슴이 설레고, 의지가 불끈 솟는다.

익숙한 형식의 안내문,
‘응모 마감일’, ‘지원 자격’, ‘제출 형식’ 같은 단어들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마음 한편에서 작은 불이 켜진다.

이번엔 꼭 내야지, 정말 오래 생각해 왔던 그 이야기로—
조용히 다짐하고는 한다.


내가 이토록 오래 붙잡아 온 이야기를

언젠가는 드라마로 방영할 수 있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기를.

다음을 기약해 본다.

오늘은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하루다.

못내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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