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러시아 전쟁의 역사, 인민의 피로 맞바꾼 승리
유독 러시아에는 참혹한 전쟁과 인간성을 조명한 위대한 작품들이 많다. 러시아는 근대에 들어 어느 유럽 열강보다 더 역동적이고 파격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다수 국민의 삶을 뒤바꿀 만한 많은 혁명과 수많은 전쟁(외국과의 전쟁이나 내전)을 치렀다.
러시아인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러시아에선 남자가 그 어느 나라보다 전통적으로 대우를 받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중요하게는 남자의 수명이 어느 나라보다 짧은 편이다. 2천 년대에 들어 나온 조사에서도 수명이 60세가 채 되지 못한다. 보드카를 많이 마시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고, 혹독한 기후 때문이기도 하다. 그 이유 말고도 역사적으로 남자가 항상 부족했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많은 남자 인구가, 특히 젊은 남자가 귀했던 까닭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로마노프 시대 농노제에서의 비참한 노동과 삶을 영위하여야 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제도를 실현하기 위한 많은 혁명과 전쟁으로 노동자와 농민, 군인들의 희생을 치러야 했다. 특히, 두 번의 세계대전과 내전을 치르며 수많은 남자들의 목숨들이 사라져 갔다.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국의 승리는 어느 무엇보다도 2천만 러시아인의 피와 맞바꾼 승리였다는 사실을 이번 모스크바 여행을 통해 소름 끼치도록 깨닫게 되었다.
러시아가 대조국 전쟁 전승기념일(5월 9일)에 왜 그렇게도 규모가 큰 행사를 치르고 있는지 이해가 될 법하다. 물론 정치적으로 힘을 과시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목적도 있겠지만, 국민들 모두가 참여하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너무나도 많은 (상상하기 힘든 큰 숫자의) 희생자들) 추모행사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중부나 서유럽의 전승기념일은 5월 8일이지만, 러시아에선 평화협정 체결일 시간 기준으로 (서유럽과 러시아와의 시차로 인해) 자신들의 시간대인 5월 9일을 전승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다.
매년 EU 국가에서도 어느 나라의 정상이 러시아 전승행사에 참여했는지를 두고 많은 정치적인 해석과 공식, 비공식 논평이 나오곤 하는데, 러시아 국민의 입장에서 단순히 생각해보면 전승 기념행사는 정치적인 것뿐만이 아닌, 또 다른 추모의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1995년에 10년간의 공사를 거쳐 완성된 러시아 전승기념관은 그 시설이나 규모측면에서 내가 가본 모든 곳, 혹은 알고 있는 그 어느 전쟁기념관과 비교해도 잘 만들어 놓은 곳이다.
전시관엔 초등학생, 중학생들로 보이는 러시아 단체 관람객들로 만원이었다. 물론, 이곳에도 적지 않은 수의 중국인 단체 관광객은 결코 빠지지 않는다.
각 방마다 Diorama라는 그림과 실물모형을 적절히 배치하고 조명으로 연출한 실감 나는 영상을 만들어 놓았다.
2차 대전의 주범인 히틀러는 1941년 6월 22일 선전포고도 없이 러시아를 침략했다. 전쟁의 천재라는 나폴레옹도 러시아를 침략함으로써 모스크바 겨울의 혹독한 날씨와 식량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패배를 인정해야 했던 그 땅에 히틀러의 나치도 침략한 것이다. 흑해와 카스피해 지역의 석유, 가스 등 에너지원을 포기할 수 없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아무리 서로 간엔 불가침 조약을 체결해 놓은 상태라고 해도) 소련은 언젠가는 점령해야만 하는 화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짧은 기간 프랑스 등 서유럽 전장에서의 승리를 가져다준 독일군의 특기인 동시다발적 전격전으로 소련과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루마니아, 핀란드 , 헝가리 등도 소련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궁지에 빠진 스탈린이 기댈 곳은 (항상 러시아의 지도자들이 그래 왔듯,) 자국의 궁극적인 자원인 사람밖에 없었다. 스탈린은 국민적인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언급하며 민족주의에 기대는 전략을 취했다.
나폴레옹이 그랬듯 히틀러도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고 만다. 독일의 특기였던 전면전으로 단시간에 승부를 내서 모스크바를 점령하고자 했던 히틀러는 한겨울에 영하 40도를 넘는 소련 특유의 추위와 광활한 영토로 인해 물자 수송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소련은 독일의 주특기인 전차, 기계화보병, 공수부대 등을 이용한 전격전(blitzkrieg)에 대항하여 산발적 작전인 게릴라전과 파르티잔 운동으로 맞섰다.
또한 1차 대전 병사로 출발하여 최고 계급인 연방 원수에 까지 오른 전쟁영웅 게오르기 주코프의 장군의 역할도 큰 몫을 했다. 스탈린의 소방수로 불리며, 스탈린이 만들어 놓은 불리한 전세를 역전시켜 소련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붉은 광장의 전승 퍼레이드에서 스탈린 대신 말을 타고 사열을 받은 국민의 영웅으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국민적인 인기를 받는 영웅을 독재자인 스탈린은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그는 스탈린 생전에는 좌천되어 정치 중심지인 모스크바를 떠나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류의 역사는 항상 전쟁과 함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역사를 되새겨 보면) 유독 평화가 좀 오래 유지되고 있단 생각을 가끔 한다. 하지만, 최근의 유럽 상황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난민 문제와 함께 등장한 극우세력의 득세,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EU 간의 갈등(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을 둘러싼), 터키의 급격한 종교적 보수주의 심화와 우경화 등은 현재의 평화시대가 우리가 못느끼는 사이에 조금씩 인류의 암흑기로 접어들고 있지 않나 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다음 편부터 본격적인 모스크바 시내 관광투어가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