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의 한국인과 유럽인의 문화적 차이 (19)
한국인 관리자 : "당장 저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문제를 해결하세요!"
유럽인 담당자 : "저는 관련 안전교육을 못 받았고, 안전 장구도 없어서 올라갈 수 없어요!"
한국인 관리자 : "그럼 당장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을 빨리 구해와요."
유럽인 담당자 : "지금은 업무시간이 종료돼서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내일 사람들이 출근해야 가능합니다."
한국인 관리자 : "그럼 오늘 밤까지 이 문제를 해결 못하잖아요!"
유럽인 담당자 : "그래도 내일까지 기다리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한국인 관리자 : "당신이 못한다면, 내가 직접 하지." (보호장구 없이 직접 건물 옥상으로 올라감)
유럽인 담당자 : "한국사람들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니까!"
그날 옥상에 올라갔던 한국인 관리자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그는 유럽인들은 회사에서 정말 뭐가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나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물론 그는 관련 안전 교육을 받은 바가 없었다. 하지만, 옥상에 올라가 직접 문제를 제거함으로써 관련 공사를 시간 내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모범을 보임으로써 하루를 절약할 수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유럽인에게 사소한 규정(누군가 신고만 하지 않으면 문제가 그다지 될 것 같지 않은)을 지키는 것과 업무를 신속히 완수하여 성과를 내는 것 중 무엇이 중요한지 물어본다면, 답은 당연히 규정 준수일 것이다.
만일 같은 질문을 한국인에게 한다면, 모두가 규정 준수가 중요하다고 답을 할지는 의문이다. 신속한 업무처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만일 신속한 업무 처리로 보상이 뒤따른다면 더욱 사소한 규정은 무시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규정이 안전에 관련된 것이라면, 유럽인은 그 어느 것에도 자신의 안전을 양보하지는 않을 것이다. 위의 사례처럼 말이다. 그것이 아무리 손쉽고 큰 위험이 없어 보이는 안전문제라고 할 지라도, 법규에 규정된 안전사항을 따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어떨까? 자신의 눈에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는 안전 규정을 준수하지 않음으로 인한 상대적 보상이 클 경우 기꺼이 사소한 규정을 어길 확률이 높다. 사소한 규정 미준수에 비해 큰 보상이 뒤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임무 완수에 따른 경제적 보상이나 빠른 성과에 대한 상사의 칭찬이 사소한 안전규정 준수보다는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안전 규정 준수와 관련 내가 직접 경험한 사례도 있다.
내가 공군에 복무하던 시절, 미국 공군과 일주일간 일을 할 기회가 있었다. 나의 임무는 전투기의 항공전자장비를 점검하고 문제 부품을 교체하는 일이었다. 이런 항공전자 계통의 점검에 있어 전기의 사용이 많다.
내가 처음 미국 공군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사실은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업무처리 속도가 한국 공군보다 2배 정도로 느리다는 사실이었고,
나머지 다른 하나는, 미군들의 철저한 안전 매뉴얼 준수였다.
내가 일하던 당시 한국군은 항공기 전자계통 장비 점검 시 아무런 장구 없이 절연장갑만을 끼고 일을 하였다.
반면, 미군은 단 1분을 일하더라도 접지해야 하는 모든 곳에 접지를 하고, 자신의 몸에 접지 장치를 꼭 하는 것이었다. 접지는 감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는데, 사실 이런 것을 하고 일을 하면 거추장스럽고 일하기에도 몹시 불편하다.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접지를 모두 마치는데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내가 공군 복무하는 동안, 접지를 하지 않아 감전된 사례는 단 한건도 없었고, 그 비행단 역사를 통틀어 감전사고는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사고의 확률이 아주 낮은 것이었다. 하지만 미군은 안전규정에 따라 불편하지만 만에 하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하여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일이므로 그 당시 한국엔 지금보다 안전에 대한 인식이 훨씬 덜했을 것이다. 그리고 업무를 빨리 끝내는 것이 중요했던 그 당시 상황으론 미군들이 너무 고지식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놓칠 수 없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한국문화엔 큰 성과를 위해서 작은 안전규정은 무시된들 어떠할까 하는 생각이 유럽이나 미국인들보다는 훨씬 크다는 것이다.
나의 유럽 생활에서의 경험은 안전법규는 지켜야 하는 것이고, 그 법규가 나를 보호해 준다는 사실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법규이지, 업무를 지연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다수 유럽인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남보다 빨리 업무성과를 내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성과가 사소한 규정을 위반해서 이룩한 것이라면, 과연 회사를 위해 올바른 일을 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 보아야 한다.
유럽인들은 한국인보다는 답답할 만큼 규정을 준수하며 일을 한다는 것을 꼭 인지하여야 한다.
만일 규정에 위배되는 일을 시킨다면, 그들의 투철한 신고정신이 즉각 발휘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