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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A May 17. 2024

N잡러, 복수의 정체성

보이스 크리에이터가 된다-1일차

일지의 목적성

목표가 생겼다. 보이스 크리에이터가 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반드시 된다. 원래도 품었던 목표지만 조금 더 확고해졌다. 다음 주 수요일에 오디션이 있다고 한다. 당장 될 거라는 기대보다는 이런 기회가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는 희망이 더 크다. 


목표 아래 일지를 작성하려고 한다. 보이스 크리에이터가 된다는 것을 가정해두고 되기까지의 과정을 충실하게 작성하는 식으로 이 글에 접근하기로 했다. 해당 글이 날아가지 않도록 망할 가능성이 낮은 플랫폼(네이버, 카카오 등)도 활용할 계획이다.


복수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


실력은 논외로 치고, 공채로 성우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은 이기적인 욕심이다. 사회적 지위나 연봉 등을 포함해 지금까지 투자했던 것을 상당 시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나만 투자해 만든 자산이 아니기에 결과물 또한 나만의 자산아 아니다. 부모나 형제, 남편이나 부양가족(개)과 공동의 자산이다.


지금까지 이룬 것들이 부모나 남편 등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안다. 인연으로 생긴 책임은 때로 삶의 원동력이지만 짐이며 저버릴 수 없는 과제다. 나는 이걸 내던질 용기가 없다. 내던졌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유사시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은 강박적이다.


복수의 직업은 유사시를 대비하는 것 외에도, 복수의 정체성은 정신 건강을 유지하고 인격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만드는 데에도 힘이 된다. (ex. 집에서 노숙자같은 나, 대학원에서 등신이 되는 나, 기자로서 나, 성우학원의 뉴비로서 어버버하는 나, 장녀로서 나, 며느리로서 나, 아내로서 나 등)


사람이 한 곳에서 '고인물'이 되면 오만해진다. 사실 고인물이 되는 건 재능이나 노력을 떠나서 시간이 만들어 주는 측면이 큰데 이걸 간과한다. 고인물로서 오만은 성격으로 굳어져 인격마저 훼손하는 사례가 많다. 꼰대가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이다. 


경제대학원에 가고 성우학원에 등록하는 등 낯선 분야에 도전하는 건 굳어지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 내 부족함을 느끼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한 걸음을 떼는 과정에서 겸손해진다. 


그리고 부족한 상태를 기본값으로 인지, 성과를 잘 내지 못하거나 푸대접을 받았을 때 충격을 줄여준다. 늘 미숙하다면 자존감이 떨어질테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고인물로서 인정을 받기에(직업 외에도) 여기에서 얻은 인정이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준다. 


오만하지도, 너무 낮추지도 않는 중간의 상태가 되는 데 기여한다는 뜻이다. 또한 당장 마감이 쉴새없이 닥치기에 우울, 무력할 시간이 별로 없다. 루틴을 유지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잃어버린 기쁨을 찾아서


감정을 5단계로 세분화했는데 어떤 게 심화 단계인지 알기가 어렵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충격적이었다. 감정을 인지하지 않고 살았다는 뜻이다. 특히 기쁨이나 즐거움의 감정을 말이다.


책임을 기반으로 한 불안을 인간으로서 내가 움직이는 힘이다. 분노나 슬픔은 사회학 공부를 하거나 문제의식을 발휘해서 비판할 거리를 찾을 때 도움이 됐다. 기쁨이나 즐거움이 행동의 근거가 될 때가 거의 없어서 방치했다. 


막상 시간이 지날수록 기본으로 깔려 있어야 하는 감정이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람을 사귈 때 불안, 분노, 슬픔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불안해보이거나 화가 나거나 슬픈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려하지 않았다. 


급한대로 롤모델을 몇 정했다. 대학교에서 여자 친구 한 명, 남편, 그리고 회사에서 한 명. 이들의 농담, 사고방식, 대화방식, 리액션, 이들이 좋아하는 얘깃거리나 주제, 연락의 패턴 등을 복붙했다. 


그런데 연기 공부를 하니까 미숙함이 티가 나는 모양이다. 저런... 기쁨과 즐거움을 생생하게 느끼고 이걸 잘 발현시키는 방법을 다시 깨우쳐야 한다. 그래도 깨우쳐야 할 게 수학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기쁨은 공부해야 할 게 수학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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