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조종하기 않기
오늘 아침 출근길에 접한 한 기사가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부모 3명 중 2명이 자녀의 성공과 실패를 부모의 책임이라고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10명 중 8명의 부모(83.9%)는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지원할 의향이 있고, 취업할 때까지 생계비를 책임지겠다는 부모(62.9%)는 절반 이상, 주택 구입 비용까지 도와주겠다는 응답도 60%를 넘었다고 한다.
기사의 수치들이 처음에는 과장처럼 느껴졌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코 낯선 현실이 아니었다. 나 역시 아이가 겪는 선택과 결과에 깊이 마음을 쓰고, 어쩌면 때로는 내 일처럼 개입하고 있는 건 아닐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부모가 된 후, 내 마음속에는 늘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바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이가 넘어지지 않게 앞길의 돌부리를 치워주고, 조금이라도 부족해 보이면 더 많은 자극과 경험을 해주려 애썼다. 그게 사랑이고, 책임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생각도 함께 공존한다.
혹시 그 '최선'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아이의 삶을 대신 살아가려고 하는 게 아닐까?
우리 아이에게 진정 필요한 건 무엇일까.
나는 아이가 스스로 살아갈 힘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타인의 기대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서 배움을 찾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력 있는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나는 아이가 남들보다 앞서지 않아도 괜찮다.
한글을 빨리 떼지 않아도, 수학 문제를 빠르게 풀지 못해도, 영어 발음이 유창하지 않아도 그게 아이의 삶에서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라 여기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스스로 아는 아이.
그리고 그걸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은 어디에서든 자신의 색으로 빛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사회는 그런 단순한 바람조차 부모의 책임감 부족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아이의 성과가 곧 부모의 능력처럼 여겨지고, 그 평가는 또 다른 불안과 조급함으로 되돌아온다.
그렇게 부모는 아이의 매니저가 되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대신 결정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 필요한 '선택의 경험'과 '실패의 기회'는 사라져 간다.
나는 우리 아이가 넘어지고, 다치고, 실수하면서도
조금씩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법을 익혀가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부모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을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조용히 지지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부모의 영향은 분명 크다.
그러나 그 영향이 '조종'이 아닌 '응원'으로,
'간섭'이 아닌 '신뢰'로 전달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자기만의 길 위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단단히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기를.
그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