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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할머니

'최고령 유튜버 선우용녀' 님

by 권선생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출근길에 오른다. 교육 관련 정보나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다시 보며 출근하는 것이 내 유일한 낙이다. 그러다 우연히 '순풍 선우용녀'라는 유튜브 채널을 보게 되었다.


처음 시청한 영상은 인기 유튜버 ‘랄랄’의 부캐 ‘이명화’와 함께한 콘텐츠였다. 이명화는 돈을 좋아하고, 말투가 억척스러운 전형적인 아줌마 캐릭터인데, 다소 무례한 행동이 섞여 있음에도 선우용녀 님은 전혀 불편해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분위기를 유하게 이끄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렇게 흥미를 느껴 채널의 첫 영상을 보게 되었다. ‘최고령 유튜버’라는 소개와 함께 선우용녀 님이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들으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뇌경색을 이겨낸 뒤, 더는 남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고 싶다는 포부. 나쁜 것 빼고는 다 해보고 싶다는 그 말이 왠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첫 회에서 그녀의 인생사를 간단히 소개했는데,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선우용녀 님을 그저 고운 외모에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걱정 없이 살아온 '명랑한 할머니'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식 날 남편이 구속되면서 집 열 채 값에 해당하는 빚을 떠안게 되었고, 이후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뭐든지 해왔다는 이야기를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 가서 봉제공장을 운영하고, 미용을 배우며 살아낸 이야기. 그렇게 파란만장한 세월을 지나온 사람에게서 지금의 명랑하고 긍정적인 기운이 흘러나온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녀는 영상 곳곳에서 친정어머니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 이태원에 있던 집을 세놓으며, 어머니는 생전에 이렇게 당부하셨다고 한다. “우리는 그냥 앉아서 돈을 받는 사람이지만, 저 세입자들은 고생해서 버는 돈을 내는 거다. 내가 죽더라도 월세는 많이 받지 마라.”


그 말을 듣고 문득 떠오른 말이 있었다. 누구나 마음이 넉넉해지는 계절이 있다. 이상하게도 그 계절은 삶의 곳간이 서서히 차오를 때쯤 찾아오는 것 같다. 예전에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이 그 여유를 이루기 위해 감내했을 수많은 노력과 인내를 인정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여유가 있어야 타인을 향한 배려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나도 조금씩 깨닫는다. 나도 언젠가 그런 마음의 곳간을 채워, 그 넉넉함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선우용녀 님의 태도와 성격은 어쩌면, 그 어머니로부터 대물림된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모전여전(母傳女傳)’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것이 유전이든, 오랜 세월 속에서 체득한 삶의 태도든 간에.


그녀는 말한다. 고생이 있었기에 지금이 행복하게 느껴지고, 이제는 그동안 고생한 자신을 위해 살고 싶다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 곁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 기운을 전해 받게 된다. 그래서 나 역시 엄마로서 종종 다짐하곤 한다.
내가 즐겁고 긍정적으로 살아야 아이들도 삶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또 그녀가 했던 말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집에 있는 엄마들도 모두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말이었다. ‘순풍산부인과’를 찍던 시절, 새벽에 집에 들어왔는데도 밥을 달라던 남편에게 “내가 밥 차리는 사람이냐”며 처음으로 소리쳤던 날을 회상한다. 그 이후로 남편은 다시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번쯤은 용기를 내어 자신의 자리를 바꿔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메시지였다.


그저 편하게 본 유튜브 영상 하나였지만, 나는 많은 울림을 얻었다.
아이를 키울 때,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을 다시 떠올렸다.
이제는 엄마라는 역할에만 매달리기보다 나를 위한 삶을 만들어가며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확신이 다시금 생겼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나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오늘도 명랑하게 살아가는 할머니, 선우용녀 님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나가시길 진심으로 응원하며, 나도 조용히 ‘구독’ 버튼을 눌러본다. 나도 그녀처럼 세월을 지나 더 단단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 명랑한 할머니가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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