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
여섯 살이 된 첫째가 죽음에 대해 자주 묻는다.
책 속에서 누군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문장을 만나면,
"엄마, 하늘나라에 가면 다시는 못 봐요?"
"하늘나라에 가면 만날 수 없는 거예요?"
"엄마도 하늘나라에 가요?" 하며 죽음에 대해 묻는다.
요즘 큰 숫자에도 관심이 많은 아이인지라 나는 이렇게 말해준다.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늙어. 나이가 백 살이 되면 하늘나라에 가는 거야.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모두 백 살이 되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 두려운 첫째의 마음을 다독이며, 아이가 알고 있는 가장 큰 수인 '백 살'을 언급해 안심시킨다.
아이의 이런 원천적인 질문 앞에서, 나 역시 '늙는다는 것'과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늙는다는 건 무엇일까.
얼굴에 늘어가는 주름, 조금씩 하얘지는 머리카락, 예전 같지 않은 체력.
이 모든 것이 노화 때문이라 여기겠지만, 정말 신체가 건강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젊다'라고 할 수 있을까?
가끔은 나이와 다르게 점잖은 말투나 생각이 성숙한 아이를 보면 '애늙은이'라 부르기도 한다.
몸이 젊다고 해서 젊은것이 아니듯, 몸이 늙었다고 해서 늙은 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방증하듯, 어느 대학의 총장님은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현직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다. 또 요즘 6~70대 분들을 보면 자신을 노인이라 생각하지 않고, 여전히 일하고 배우며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
나 역시 조금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예전 같았으면 서른을 넘긴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 사해생활을 이어가는 경우 그들을 '노(老) 처녀' 불렀겠지만, 요즘은 '골드(gold) 미스'라는 말로 더 긍정적인 의미를 담는다.
결국, 지금은 나이가 그리 중요한 시대가 아니다.
중요한 건 각자에게 의미 있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살아가며, 자신의 삶의 흐름에 맞춘 '인생 나이'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자신만의 목표와 꿈이 있다.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삶의 태도와 가치관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꿈이 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그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이들의 눈빛은 늘 빛이 난다.
몸이 늙는 것보다 더 슬픈 건 생각과 태도가 늙어가는 일이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안 돼."
"이 나이에 그런 일을 어떻게 해. 남들이 흉볼 거야."
이런 식으로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고, 무엇이든 타인의 시선을 먼저 의식하게 될 때 그 삶은 이미 스스로 늙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총장님께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을 묻자, 의외로 특별한 비결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먹고 싶은 걸 잘 챙겨 먹고, 스트레칭이나 산책 등 가벼운 운동을 꾸준히 하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애쓰기보단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넘긴다고 하셨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은 꼭 해낸다는 점이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이고 능동적이면 쉽게 늙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삶은 살다 보면, 죽음도 그리 두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제는 평소 자주 보는 tv프로그램 '유 퀴즈'에 선우용녀 선생님이 출연하셨는데, 그분의 삶의 태도가 담긴 말씀이 참 인상 깊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 인생에도 계절이 있어요. 힘든 시기가 지나고 나면 반드시 좋은 날이 와요. 묵묵히 견디다 보면, 어느 날 그 시간이 와 있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죽기 전에, 나 이제 떠날 거예요. 그러고 즐겁게 가고 싶어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인생을 만들어간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의지할 필요는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평소에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가이다.
어느 날 밤 첫째가 잠들기 전 내게 속삭인 말이 떠올랐다.
"나는 과학자가 될 거야.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가 평생 죽지 않는 약을 만들 거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첫째의 마음이 따뜻해서 고맙다고, 꼭 그렇게 해달라고 대답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에 우리는 오늘을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그 끝이 있기에 삶에 의미가 더해지는 것이 아닐까. 삶이 무한하다면 오늘이 지나가도, 내일의 설렘은 영원히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몸은 늙어도 젊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명랑하고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인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