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홍보 이야기]1-1. 나는 누구인가, 여긴여디인가

by 다퍼주는 손과장


[손 과장의 공공홍보 인수인계서]


1-1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10년간 측량업무만 하다가 처음으로 홍보처 발령받는 날의 느낌은 ‘감동’ 이였다. 5,000여 명의 LX한국국토정보공사 직원들 중에 단 10명만 하는 홍보 업무를 내가 맡게 되다니!!! 희망 근무지 1순위로 홍보처를 적은지 3년 만의 쾌거(?)였다. 우리 기관의 홍보처는 업무 특성상 작가 출신, 기자 출신, PD 출신 등 전문경력직이 많이 근무하는 곳이다. 나 같은 측량쟁이들이 들어오기가 그리 쉽지 않은 부서인 것이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기술 직렬이 대부분인 LX한국국토정보공사 특성상 기피 부서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 꿈의 부서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니!! 내 가슴은 기대로 한껏 부풀었다.



오랜 시간 홍보처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직원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배정받은 자리에 앉았다. 앉았다. 계속 앉아 있었다. 헐.. 내가 여기서 멀하지? 아직 업무배정도 안된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머가 있을까? 할 일없이 내부 인트라넷을 들춰 보던 나에게 옆자리 선배가 고맙게도 말을 걸어주셨다. “손 과장님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으실 거예요. 우선 신문이나 보고 계세요” 맞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입사 이례 쭉~ 측량만 하던 내가 할 수 있는 홍보 업무라고는 신문을 읽는 것뿐이었다.(이것도 홍보 업무가 맞나?) 풀이 죽어 그날 홍보처로 배달되어온 신문 15개를 정독했다. 며칠간 출근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신문 보는 것뿐이었다. 태어나서 신문을 그렇게 정독해 본 건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나를 따돌리는 줄 알았지만, 나중에 나에게 보도자료 작성을 시키기 위해 트레이닝한 것이라고 선배는 말해주었다.) 뭐 ‘이렇게 편해도 되나?’싶을 정도로 몸은 편했지만,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다.



일주일의 길고 긴 신문 정독 시간이 지나니 드디어 나에게도 일거리가 생겼다. 공공기관 홍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보!도!자!료!’ 물론 배포할 보도자료는 아니었지만 천사 같은 선배님은 나에게 서류 한 뭉치를 주면서 보도 자료를 작성해 보라고 말해주었다. 당연히 배포될 보도 자료는 자신이 쓰고 나를 연습시킬 목적으로 기회를 준 것이다. 그 선배는 나와 같은 측량직으로 시작했지만 지역본부에서부터 언론홍보를 10년 이상 해온 베테랑 언론홍보 전문가였다. 자신이 이제 나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후배를 물색하던 중에 측량 직렬에서 드물게 홍보 업무를 하고 싶다며 ‘희망부서 1순위’를 홍보처로 지원을 한 나를 추천했다고 한다.(나는 그 선배와 함께 지역본부를 잠깐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었고, 그때 내가 쓴 연구논문을 윤문 해준 적이 있으셨다. 이 책을 빌려 감사드린다. 정해룡 팀장님 사랑합니다.)



선배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3일을 보도자료에 매달렸다. 안 되는 글 솜씨로 쓰고 고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일주일간 반복해서 읽어왔던 기사들을 흉내 내면서 겨우겨우 보도자료 초안을 들고 선배에게 드렸다. 천사 선배님은 친절하게도 내 보도자료를 구석구석 첨삭 해 주었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한 문장도 빨간 펜이 안 들어간 곳이 없었다. 주어와 목적어가 매칭이 안 되고, 필요 없는 수식어는 너무 많았으며, 문법에 안 맞는 문장들이 수두룩했다. 아주아주 창피했지만, 나는 계속 부딪혔다. 나는 꼼꼼함은 없었지만 잘못된 것을 빨리 수정하고 계속 부딪히는 강점이 있었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이어온 나의 필살기가 바로 ‘빨리하고, 혼나고, 다시 빨리한다’였다.



신입사원 시절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좀 꼼꼼하게 봐라. 왜 이렇게 덜렁거리냐?”였다. 꼼꼼하지 못해서 도면 작성에 매번 실수를 했었다. LX한국국토정보공사의 업무 중 하나는 ‘지적도’라는 토지관리에 매우 중요한 도면을 작성하는 일이다. LX에서 작성한 도면은 국민 토지소유권 보호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신입사원 시절 내가 작성한 도면은 관련 법 규정에 안 맞는 글자 크기, 색상 등을 이유로 매번 지적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 잘 안다. 죽치고 앉아서 도면을 들여다보고 천천히 작성한다고 해서 한 번에 도면을 완벽하게 그리지 못한 걸라는 것도 잘 알았다. 나는 꼼꼼함은 어차피 내가 극복할 수 있는 단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빨리 도면을 만들고 더 많이 검토받아서 단점에 대한 얘기가 더 이상 안 나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홍보주니어로서 나도 나의 단점을 인정하고 나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보도 자료라는 홍보 업무의 첫 단추도 그렇게 채워 갔다. 천사 선배가 귀찮아할 정도로(실제로 귀찮다고 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루에도 몇 번을 컨펌해달라고 내가 작성한 보도자료를 들이밀었다. 첨삭에 첨삭을 받을수록 내가 작성한 보도자료는 너덜너덜 해졌지만 그것이 일주일, 이 주일이 지나면서 내가 작성한 보도자료는 점점 완성되어 갔다. 나중에는 천사 선배님으로부터 글이 나날이 좋아진다는 칭찬까지 받을 수 있었다. 역시 단점을 극복하기보다는 강점을 키우는 게 내가 생각하는 최상의 전략이다.



내가 만들 보도 자료를 배포까지 하는 데는 대략 두 달이 걸렸던 것 같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쓴 글이 기사화되어 신문에 찍히는 모습을 보니 뭔가 내가 공사 전체에 도움이 된 것 같아 성취감이 들었다. 하지만 홍보 업무에서 보도 자료가 차지하는 부분은 아주 미미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홍보 업무는 방대했고 손이 많이 가는 업무 투성이었다. 보도 자료의 첫 걸음마를 떼고서부터 홍보 업무 전체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갔다. 어느새 내 사수가 된 천사 선배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홍보처 업무를 빨리 파악할 수 있을까요?” “야 인마 넌 벌써 두 달이 됐는데 그걸 이제 물어보면 어떡하냐” .... 혼났다. 그렇다. 나는 보도 자료를 작성한다는 기쁨에 취해 홍보 업무 전체를 알려고 하는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이다. 아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햇병아리여~



하지만 천사 선배님은 친절하게도 홍보 업무를 가장 빨리 파악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5년 치 문서 싹 훑어봐” 공공기관은 모든 업무가 문서로 시작해서 문서로 끝난다. 문서는 업무를 추진하는 근거고 되고 기록이 된다. 측량업무의 경우 ‘측량결과도’ 한 장의 도면만 작성하면 되었지만, 본사는 모든 일이 문서화되어야 하고 홍보 업무도 예외는 아니다. 추진계획, 중간보고, 결과 보고, 효과분석, 용역 추진, 원페이퍼, 주간 보고, 월간 보고 등등 페이퍼 웍(Paper Work)이 어마어마했다. 10명이 근무하는 홍보처에서도 1년에 생산하는 문서의 수가 무려 4,443개나 됐다.(기관에서는 생성하는 문서마다 순서대로 문서번호가 붙기 때문에 전체 문서 생산량을 바로 파악할 수 있다) 5년이면 벌써 2만 개가 훌쩍 넘는다. 물론 타 부서에서 홍보처로 보내온 문서까지 포함한 개수지만 어마어마한 문서 양이었다.




홍보 전체 업무를 파악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전자결재에 등록된 5년 치 문서를 싹 다 훑어보기로 했다. (이건 홍보 업무 1년 차에 내가 한 일중 가장 잘 한일이다. 공공부문 홍보주니어들에게 이 방법을 강력 추천한다.) 물론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리는 일이었다. 간단한 1~2페이지 짜지 문서도 있었지만 사장님 결재까지 가는 문서들은 평균 10페이지가 넘었다. 하루에 1,000개씩 본다는 생각으로 틈만 나면 문서를 열고 읽고 닫고를 반복했다. 어느 정도 읽다 보니 홍보처의 업무의 1년 루틴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나만 알아볼 수 있게 기록하고 도표화했다. 1년 업무처리 시기와 내용들을 담은 것이었다. 이것은 그 당시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몇 년 뒤에 내가 부서 총괄 기획을 맡았을 때 홍보 업무 전체 전략을 짜고 연간 홍보계획을 수립할 때 가장 큰 도움이 된 자료였다.



홍보처에서 근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즐거웠다. 사람들은 상냥했고, 부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으며, 부서장은 유연하고 의사결정이 빨랐다. 이런 환경에서 홍보 업무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행운이었던 것 같다. 입사 10년 만에 힘들지만 웃으면서 근무할 수 있었던 1년이었다. 물론 나와 같은 환경에서 홍보 업무를 시작하는 홍보주니어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공공의 특성상 자신의 원하는 부서에서 근무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고, 또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이 전부 마음에 들 수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만약 어려운 여건 속에 원하지 않는 홍보를 시작했더라고, 어쩌겠는가?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면 어차피 할 거 즐겁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지금 모시는 홍보처장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맞고 하는 것보다 그냥 하는 게 낫다” 이왕 할 홍보 업무라면 남들보다 빠르게 파악하고 내 역할을 정확히 찾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 타의로 시작했던, 자의로 시작했던 홍보주니어가 되었다면 마음가짐을 다시 잡자.



“1년 안에 홍보부서 내가 씹어 먹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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