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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xxsxoxun Jul 10. 2021

싱글맨

톰 포드가 톰 포드한, 콜린 퍼스를 위한 영화


미를 탐하는, 탐미하는 과정이 보여주는 민낯
개봉 2009년 12월 11일 (토론토) | 감독 톰 포드 | 원작 싱글맨 | 출연 콜린 퍼스, 줄리앤 무어, 매튜 구드, 니콜라스 홀트


톰 포드가 '톰 포드' 한 영화, 그렇다. 우리가 아는 패션 브랜드 톰 포드의 톰 포드다. <싱글맨>은 그의 첫 영화감독 데뷔작으로 감각의 극치를 볼 수 있다. 원작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소설 <싱글맨>이다. 영화 <싱글맨>은 적절한 OST와 디테일한 구도, 그리고 예쁘지 않으면 엑스트라여도 스쳐 지나갈 수 없는 강박적인 '멋'이 장면 내내 녹아있다.



각본, 배우, 미술, 연출, 음악, 구도 등 모든 각도에서 절제미를 느낄 수 있다. 덕분에 끝내주게 내 취향을 타격했다. 하다못해 주인공이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장면도 감각적이다. 아직도 주기적으로 돌려보는 영화고, 버릴 장면이 하나도 없어 보는데도 항상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장면이나 대사를 곱씹어 볼 수밖에 없고 장면을 통한 톤 앤 매너(tone&manner)로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기 때문에 허투루 넘길 수 없다. 분명 99분짜리지만 그 이상을 소비한다.


주옥같은 대사도 대사지만, 본업에서 나오는 역량을 담아낸 영상미가 압권이다. 풍경이 뛰어난 어느 광활한 배경도 아니다. LA를 배경으로 한다. 그렇기에 미쟝셴을 사랑하는 나에게 선물과도 같은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배우진도 각본을 끌어올리는 비주얼로 뽑았다. 싱글맨 제목 그대로를 갖다 밖은 듯한 콜린 퍼스와 그 나이대에 맞는 자신감과 젊음을 가진 니콜라스 홀트. 또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름다운 줄리앤 무어까지. 무엇보다 팔코너 교수(콜린 퍼스역)의 사별한 남자친구인 짐(매튜 구드)의 캐릭터와 그를 잇는 케니 포터 군(니콜라스 홀트 역)의 관계성도 완벽하다. 조지는 짐에게 말한다.




사실 그게 너에 대한 내 첫인상이었어. 자신에 대한 확실함.

조지 팔코너(콜린 퍼스 역)



케니는 팔코너 교수에게 확실함을 가지고 자기 생각을 말한다. 애인의 죽음을 듣고 괴로웠던 지난 8개월을 지낸 '싱글맨'인 그에게 케니는 수준이 안된다는 조그마한 학교에서 유난히도 눈에 띄는 영특한 학생이다.


사실 니콜라스를 캐스팅한 것부터 그냥 스쳐 지나갈 것 같은 인물이 아닌 셈인데, 팔코너 교수의 수업 시간부터, 담배 연기를 나부끼는 로이스와 앉아, 껄렁한 태도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을 마주한 팔코너는 때마침 큰 결심을 했었다. 3주전, 영문학 교수인 팔코너는 올더스 헉슬리(1894.07.26 ~ 1963.11.22,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의 <여러 해 여름이 지난 뒤 백조들 죽다> 에 대해서 과제를 주었다. 원래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주던 그가 그날따라 단호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리고 조지 팔코너는 '두려움'에 대해서 말한다. 이날은 그가 계획된 자살을 위해 리볼버를 챙긴 날이었다.



완벽한 하루를 위해 교수는 아주 깔끔하게 정리를 했고, 집안일을 도와주는 가정부에게 친절한 인사를 하였으며, 대학교 사무직 직원에게 향수를 칭찬했다. (아르페쥬 향수, 정말 아름다워요. 향수를 맡는 클로즈업과 그녀의 목언저리를 보여주는 연출도 예쁘다.) 오랜 친구 찰리와 저녁 약속도 잡았다. 그는 다수에게 박해받는 소수에 대해 말했다.



두려움이야말로 결국 우리의 진짜 적이니까,
두려움이 우리 세계를 잠식하고 있다.
두려움은 우리 사회를 통제하는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조지 팔코너(콜린 퍼스 역)의 영문학 시간 중



과거는 신경 쓰지 않고 현재는 그저 지나가길 바라는 케니가 눈을 반짝 뜨게 된 계기다. 또 이 계기는 조지 팔코너 교수에게 말 한 번 더 걸어보게 된 시발점이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연인인 짐(전쟁에서도 살아 돌아온)을 교통사고로 잃고 상실감에 절어 지내는 팔코너가 일상을 정리하고 짐을 따라가려 계획한 시간의 과정을 보여준다. 콜린 퍼스를 처음 보았을 때가 하필 맘마미아 1이었고 그때 스타일링이 문제였던 건지 완벽한 비주얼과 연기에도 불구하고 영 시선이 가지 않았는데, 톰 포드 색을 입힌 콜린 퍼스는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의 남성 그대로였다. 정돈된 차림이지만 어딘가 처연한 그는 시선이 가게 한다.





팔코너는 정리에 강박증세가 있어 보일 만큼 완벽하다. 그리고 우리를 안정시켜준다. 본인 스스로 극 초반에 이야기한다. 살짝 딱딱해 보이지만 이로써 조지가 완성된다고,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면서도 심히 감정적이다. 극적인 감정 기복을 가지고 있지만 절대 티 내지 않는 예민함을 가졌다. 옆집 꼬맹이들에게 뼈있는 말을 날릴 때면 유리구슬 같은 팔코너의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탐미하는 그의 시선도 만만치 않다. 감독의 시선을 대신 하는 것 같다. 어떻게보면 그의 신분이 이를 가려주는 것 같지만, 관객을 알 수 있다. 굉장히 노골적으로 가리지 않고 미를 탐한다는 것을. 그의 가치관은 영화 초반 알 수 있다. 소련이 미사일을 쏘는 것을 걱정하는 동료 교수(리 페이스역)에게 한 마디한다.



감상도 용납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아니군.

조지 팔코너(콜린 퍼스 역)



무엇보다 팔코너 교수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은 상실감을 분위기로 두르고 나에게 깨달음과 진한 인상을 남겨준다.


경험은 우리에게 발생한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처하는 우리의 행동을 의미한다.
순간을 즐기며 사니, 그게 날 현재로 되돌려 놓았다.
두려움이 소수를 괴롭히는 거다. 모든 일엔 이유가 있다. 
공포심이고 소수도 그저 사람이야.

조지 팔코너(콜린 퍼스 역)





조연으로 출연한 카를로스(존 코타자레나 역)도 대사가 버릴 게 없다



끔찍한 것들도 자신만의 아름다움이 있어요.

카를로스(존 코타자레나 역)



이후 카를로스는 나오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인물을 담은 클로즈업이 여러 번 있다. 스모그로 생겨난 석양을 보며 담는 조지와 카를로스의 대화는 짧은 찰나지만 깊은 감정을 교류한다.





찰리(줄리앤 무어 역)와의 관계도 놓칠 수 없다. 가끔 너무 친해 짐이 질투한다던 그들의 사이는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하필 한국 포스터는 무슨 바람이라도 난 것 같이 영화와 어울리진 않아 아쉽지만, 찰리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로 나온다. 고향 영국에서 젊고 자신감이 넘쳤지만, 미국에서 그녀는 남편을 잃었고, 딸은 다 자라 자신을 찾지 않는 외로운 사람이 됐다. 그렇게 자신에게 남은 절친한 친구이자 또 옛사랑인 것 같은 조지에게 다시 희망을 걸어본다.


아마 조지를 사랑했기에 다시는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누구와도 그런 사랑조차 해본 적이 없다는 그녀는 동성애자인 조지를 원망하면서도 놓지 못한다. 네가 호모 자식만 아니었다면 우리 둘은 행복할 수 있었다는 찰리의 말은 오랫동안 조지를 기다려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조지는 찰리의 애원에도 짐을 놓지 못했고 조지는 찰리를 위로한다. 오랜 친구인 그들은 평소와 같이 가볍게 헤어진다.





조지는 찰리를 위로하며 지난 짐과의 첫 만남을 회상한다. 그리고 다시 그를 만났던 해변가의 펍으로 달려간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단정하던 그의 차림새가 그와의 첫 만남처럼 풀어져 있다. 금방이라도 매장 위의 마네킹처럼 옷을 걸치고 있을 것 같은 그에게서 생기가 잠시 엿보였다. 그리고 때마침 오늘 아침, 팔코너 교수의 집 주소를 물어봤다던 학생인. 케니 포터 군이 펍으로 들어선다. 추억이 담긴 럭키 스트라이크와 맥주 한잔을 하려던 조지는 포터와 스카치 한잔을 하며 자리에 앉는다. 조지의 계획에 없던 돌발적인 상황이다.


케니와 대화는 흥미로웠다. 조지가 예측할 수 없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계획을 실행하려 했던 조지에게 찾아온 케니는 새로운 출발을 알릴 기회라 생각됐다. 찰리는 조지에게 지금 상황에서는 네가 좋은 게 아니라 너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야 해라고 이야기 했으며(사실 그게 본인이라는 걸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때마침 그때의 상황이 왔고 조지 또한 생각을 마쳤다. 그리고 그의 계획을 눈치챈 듯 케니는 조지의 리볼버를 끌어안고 잠들었다. 조지의 독백은 새로운 시작을 암시한다.




살면서 완전히 명료한 순간을 아주 잠깐씩 경험해 보았다.
그 짧은 몇 초간 고요가 소음을 잠재운다.
그리고 난 느낀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은 아주 예리하고세상은 너무 신선해 보인다.
이제 막 시작한 것처럼.

조지 팔코너(콜린 퍼스 역)



그는 아침 일찍 정리했던 집안의 마지막을 불태운다. 

케니의 품속에서 리볼버를 빼 왔고 자신의 침실에 앉아 독백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을 지속시키기는 버겁다.
그 순간에 집착하지만 다른 모든 것들처럼 사라져간다.
그러한 순간들 속에 내 삶은 살아왔다.
그것들이 날 현재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모든 것은 완벽하게
정대진 대로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정해진 그대로
그것은 온다.

조지 팔코너(콜린 퍼스 역)



독백과 심장을 부여잡고 침실 카펫 위로 쓰러진 조지에게 검은 양복을 입은 짐이 찾아온다. 장례식 참석도 그의 가족에게 거부당한 조지에게 마지막 짐의 모습과 짧은 키스로 조지의 계획은 완료된다. 동시에 영화도 끝이 난다.





소수의 정의, 탐미란 무엇인가, 시대를 아우르는 감각이란
내가 생각하는 <싱글맨> 의 주제




사실 멋에 취하지 않았다면 굉장히 허무하고 지루한 감상평이 떠오를 수도 있다. 단순히 퀴어 영화일 수도 있다. 물론 감독이 간단하게 동성애자의 사랑을 전달하고자 만들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다시 한번 올더스 헉슬리를 다룬 팔코너의 수업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상상하자, 강의실 테이블 위에 완벽한 정장과 안경을 쓰고 비스듬히 걸쳐 앉아 있는 팔코너 교수를.



소수란, 다수에게 어떤 위협이 가해질 때 생기는 개념이지.
A minortiy is only thought of as one when it constitutes some kind of threat to the majority

조지 팔코너(콜린 퍼스 역)의 영문학 시간 중



하지만 누구와 즐기며 보기 어려운 시도일 수도 있다. 즐겁진 않다. 하지만, 위의 메세지 외에도 우리에게 또 말하고 픈 것이 있다. 바로 미를 탐하는 방법. 카메라의 시선은 조지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물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의 시선이 도착한 곳을 힐끔거리다가도 꾸준히 훔쳐본다. 그리고 관객에게 표현한다. 일차원적인 즐거움 외에 또 다른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영화 <싱글맨>은 가치를 증명하듯, 콜린 퍼스에게 남우주연상을 주었으며 2009년 66회 베니스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99분의 영상은 단순히 영화로 평가하기 어렵다. 톰 포드의 감각은 영화 자체를 화보로 만들어뒀다.





개연성과 흐름을 중요시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난해한 구조일 수도 있다. 의미 없는 탐미적인 영상 구간도 존재했고(감정 흐름으로 관련된) 더군다나 국내에서도 인지도 높은 두 배우를 주연으로 세웠기 때문에 영화 자체보단 배우들을 탐미하기 위해 회자했다.


혹여 한번 보고 말았던 사람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한번 꼭 볼 수 있도록 권유한다.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처음에 이해 못 한 조지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감정과 짐의 사고를 전화로 알게 된 조지가 어째서 사고 현장의 짐에게 입을 맞추는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서 있던 남자가 어떻게 다시 새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는지, 오로지 인물의 심리에 맞춘 채도와, 영상미를 느껴볼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내가 생각한 영화 <싱글맨> 의 진정한 가치는 감각이다. 개인적으로, 남들에게 전달하기 어려운 나의 취향을 이 영화로 대변할 수 있다. 정적이고 단순하지만, 절제를 통해 추구하는 미학을 전달한다. 감각적인 구성으로 감정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단조로운 조지 팔코너의 독백은 완벽한 감각을 구축한다. <싱글맨>을 다시 감상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콜린 퍼스는 올해 5월 12일에 개봉하는 <슈퍼노바>에서 스탠리 투치와 호흡을 맞췄다. <45년 후><캐롤> 제작진과 함께하는 이 영화는 두 남자의 사랑을 다룬다. 아름다운 잉글랜드 북부를 담은 배경과 데이비드 보위의 <Heroes> , 그리고 톰 웨이츠의 <Little Trip to Heavens> 을 OST로 담은 이 영화는 슈퍼노바(Supernova) :가장 밝은 빛을 내고 사라지는 별의 마지막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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